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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3(2019)년 12월 08일 일요일
여래칼럼: 종단사태, 결국 불교외면하게 만든다!
여래칼럼: 종단사태, 결국 불교외면하게 만든다!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9.07.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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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원룸 총무원 접어라!

불교가 왕권이나 국가 권력으로부터 탄압이나 박해를 받은 사건을 법난(法難)이라 한다. 위정자나 이교도로부터 수난을 당하는 것도 법난이다. 불교의 가치를 무시하고 불..승 삼보를 비방하며 모독을 가하는 것도 법난에 해당된다.

과거 왕조시대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아 왕권으로 인해 발생한 법난사태가 많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도에서도 몇 차례의 법난이 있었다. 호법 왕으로 알려진 아소카왕도 처음 불교를 신봉하기 전에는 불교를 탄압한 적도 있었다. 또 동인도 금이국(金耳國)의 설상가왕도 승단을 박해하고 불탑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부처님께서 성도한 자리에 있던 보리수를 베어버리기도 하였다. 그 후 마우리아 왕조를 무너뜨리고 슝가왕조를 세운 퓨사미트 라는 불교를 탄압하고 힌두교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정책을 펴 수많은 불탑을 파괴하고 불교승려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만행도 저질렀다.

현장의 <대당서역기>에는 부서지고 황폐화 된 탑과 사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다. 11세기에 들어와 이슬람의 침공으로 인도 전역의 불교 사원은 대대적인 피해를 입었다. 유명한 석굴사원 아잔타 동굴도 이때 피해를 막기 위해 땅속에 파묻혀지기도 했다. 중국에서도 법난은 여러 차례 있었다. 이른바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난이라는 법난사태가 있었다.

북위(北魏)의 무제(武帝)북주(北周)무제(武帝)그리고 당()의 무종(武宗)과 후주(後周)의 세종(世宗)이 중국 역사상 가장 혹심하게 불교를 탄압했다. 물론 양()무제(武帝)와 같은 불심천자라 부린 호법 왕도 있어 불교를 크게 장려한 예도 있었지만 법난의 시대는 불교가 크게 위축되었다.

우리나라 조선조에서도 배불숭유(排佛崇儒)의 국시로 인해 불교는 많은 어려움이 겪었다. 그중에서도 태종 때와 연산군 때가 법난의 고통이 가장 심한 때였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현대 에 와서도 법난이 있었다. 조계종단의 경우 1980년에 치욕의 법난을 당했다.10.27 법난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불교계를정화 한다는 명목으로 전국사찰에 계엄군이 들어와 일제 수색을 하고 스님들을 연행하였다. 조계종단의 지도자급 스님들과 일부 신자들이 구금되어 취조를 받는 사태까지 일어났었다. 그때의 후유증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하겠다.

종교는 세상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존재하는 정신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가 인류의 역사 속에 세계 여러 곳의 지정학적 배경과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서양종교와 동양종교 신 본위 종교와 인 본위 종교 등 신앙정서가 다르고 교리가 다른 여러 종교가 발생하여 현대에 와서는 종교도 다원화 문화현상 에 의해 공생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더욱이 민주주의 사회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누구나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할 수 있고 이 자유를 국가는 보장하여 특정 종교를 핍박하거나 옹호할 수가 없다. 따라서 권력으로 인한 종교적 편향주의가 일어나거나 배타주의가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종교 때문에 사회 갈등이 일어나고 대립과 투쟁이 심해진다면 종교가 사회불안을 자초하는 결과가 되어 종교의 역기능으로 사회적 악해가 되기 때문이다.

작금의 종단사태로 인해 세간으로 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아 결국은 불교가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말 것이다. 불심이 떠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서글퍼지는 심정을 어이할꼬.

법장<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