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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3(2019)년 07월 24일 수요일
여래칼럼: 무상한 중 감투
여래칼럼: 무상한 중 감투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9.07.07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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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 총무원 한심하다!
서울 삼각산 도선사 전경
서울 삼각산 도선사 전경
법장스님
법장스님

빈도가 삼각산 도선사로 출가하여 10.27 법난을 피해 태고종단에 몸담은 세월이 어언 사십 성상이 되어 작금의 종단사태를 겪고 보니 무상(無常)한 세월의 강물에 자신을 비춰보며 고뇌(苦惱)로 지속되는 시절 인연이 허허롭기 이를 데 없다. 고려 말 삼은(三隱) 가운데 한분인 길재(1353~1419)는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落鄕하여 이런 시조를 남겼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 (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依舊) 한데(옛날과 같은데)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아마도 선생은 인생무상 함을 글로써 表現 한 듯 싶다.

공자는 논어(論語)에서 군자(君子)는 대체로 소인과 대비되어 논해지고 있다. 군자와 소인은 우선 두 맥락에서 나뉜다. 첫째. 정치 사회 계급적 의미에서 군자는 통치자(귀인)이고 소인은 피 통치자(천인)이다. 둘째. 도덕적 의미에서 군자는 국가 사회의 이익에 우선 관심을 갖는 도덕적인 인물을 지칭하고 소인 은 자기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 갖는 부도덕한 사람을 지칭한다. 공자는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잇속에 밝다고 하였다. 이 말을 정명론의 문맥에서 보면 어떤 개인이 명목상 군자의 위치에 있더라도 의리를 돌아보지 않고 잇속만 추구하면 군자가 아닌 소인배에 불과 하고,어떤 개인이 명목상 소인의 위치에 있더라도 잇속만 추구하지 않고 의리를 생각 한다면 소인이 아닌 군자에 가깝다 는 뜻이 된다.

따라서 군자에 대한 공자의 논의는 위에서 두 번째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다시 말해 공자는 군자란 세습적 신분 질서에 의한 규정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이익보다 국가 사회의 이익에 우선적 관심을 가지는 도덕적 인물이라고 재정의한다.

종단의 안정을 생각하여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의리를 지키고 대의명분을 따른 것이고 자신의 잇속을 채우고 상대와 대립각을 세우고자 한다면 그것이 곧 해종행위 이며 훼불인 것이다. 무상은 번개와 같아 나를 돌아볼 시간도 부족할진데 세간 사람들 아무도 알아주지도 관심도 없는 중 감투 빼앗는 놀이에 빠져 도끼자루 썩는 줄 왜 모르는가?

법장<총무원 문화부장 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