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불교 바단트 우파굽타 마하테로 사무총장스님이 아잔타 석굴 전경사진을총무원장 편백운스님께 선물로 증정하고 금년 11월 23일 100만 불자 대법회에초청, 편백운 총무원장스님께서 방문할 예정이다.
인도불교 바단트 우파굽타 마하테로 사무총장스님이 아잔타 석굴 전경사진을총무원장 편백운스님께 선물로 증정하고 금년 11월 23일 100만 불자 대법회에초청, 편백운 총무원장스님께서 방문할 예정이다.
인도 아잔타 석굴 담마찰 불교대표단이 총무원을 방문하고 부장스님들을 100만불자 대법회에 초청하고, 기념촬영.
인도 아잔타 석굴 담마찰 불교대표단이 총무원을 방문하고 부장스님들을 100만불자 대법회에 초청하고, 기념촬영.
29개의 석굴로 만들어진 인도 아잔타 불교 동굴 사원전경. 기원전 1세기경부터 약 1세기 동안 지어진 전기 동굴과 5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지어진 후기동굴이 있다.
29개의 석굴로 만들어진 인도 아잔타 불교 동굴 사원전경. 기원전 1세기경부터 약 1세기 동안 지어진 전기 동굴과 5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지어진 후기동굴이 있다.

인도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특히 불교도인 우리에게 인도는 항상 가보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것은 불교가 탄생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고향이 인도이기에 우리는 항상 인도라고 하면, 무조건적인 환상과 신비감에 휩싸여서 인도라고 하는 이상향의 불국토를 상상하곤 한다. 인도는 불교의 나라라고 하는 환상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불교가 우리의 뇌리 속에 깊숙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불교가 공인되어 수용된 이래 2천년이 지났고 한반도에 전파된 성상이 어언 1천 7백년여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불교는 우리의 종교가 되다시피 했고 민족문화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70%가 불교문화재이다. 전국의 명산에 자리 잡은 명찰(名刹)들을 보면, 불교는 인도에서 생겨났지만, 이미 우리의 종교로 자리 잡았다고 하겠다.

불교가 이미 우리의 종교로 자리 잡았지만, 우리 불자들은 불교의 고향 인도에 가서 직접 불적지를 순례하는 것도 큰 경험이 되고 불심을 기르는데 큰 공덕이 된다. 우리가 인도에 가서 부처님께서 직접 생활했던 유적지를 체험한다는 것은 불자로서 너무나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부처님은 어떤 분이며 우리는 왜 성지순례를 가는가 하는 의의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자.

인도불교는 싯다르타 고오타마의 큰 깨달음으로부터 시작됐다. 여기서 큰 깨달음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깨달음의 내용은 잠시 접어두고 큰 깨달음을 성취한 싯다르타 고오타마에 대해서 잠깐 일별해 보자. 싯다르타 고오타마(Siddhārtha Gautama 기원전 563〜483)는 지금의 네팔 땅인 룸비니 정원에서 탄생했다.

당시 인도의 풍습에 따라서 마야부인(싯다르타 고오타마의 어머니)이 친정으로 출산하러 가던 중에 탄생했다. 싯다르타 고오타마는 석가 족으로서 석가 국의 태자로서, 29세 때 까지 이 나라 수도인 카필라와스투(Kapilavastu)에서 성장했다. 이 당시 중북부 인도에는 16개 정도의 나라가 있었는데 석가 족의 나라는 공국(公國) 정도의 수준이었다.

19세까지 왕궁에서 私 교육을 받고 결혼하여 10년 정도 가정생활을 하였으며, 29세 무렵에 출가하게 되는데 이때 부인이 아들을 낳았다.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한숨을 쉬면서 ‘라훌라(Rāhula 534 BCE)’라고 외쳤다고 한다. 라훌라란 말은 ‘장애물(障礙物)’이란 뜻을 갖는다. 상상하건데 아마도 출가를 결심하고 성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던 중에 아들이 탄생된 것 같다. 부인이었던 야소다라(Yaśodharā)와 라훌라에게는 불행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인간의 운명이란 이렇게 상대적이다. 한 인간의 행은 다른 인간에게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관용과 포용 그리고 평화가 필요하며 희생이라는 봉사가 요청되는데 이런 역할을 종교가 하는 것이다.

한때 불교가 국교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던 불교는 지금도 인도에서 그런 위치에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모든 종교는 성쇠가 있기 마련이다. 교세가 확장되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한다.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했고, 인도의 종교라고 할지라도 영원할 수는 없다. 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한국 불자들은 이런 인도 불교사를 인도에 가기 전에 어느 정도  예비지식을 갖고 간다면 큰 충격을 받지 않고 고대인도불교의 영광과 불적지를 신심으로 순례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갖게 된다.

인도는 정말 우리에게 불국정토로 그대로 남아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결코 아니다. 실제로 인도에 가보면 몇몇 불교성지를 제외하고는 불교의 흔적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 인도인과 불교는 정말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고 있다. 성지순례를 오는 세계의 불자들은 달러나 루피를 떨어뜨려 주는 관광객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불교는 인도인들에게 먼 옛날의 종교였을 뿐이다.

지금은 인도인들에게 힌두교가 주류 종교이다. 무슬림도 만만치 않은 제2의 종교교세를 갖고 공격적인 신앙을 과시하고 있다. 인도에서 생긴 자이나교와 시크교도 있다. 기독교도 제법 된다. 불교는 이방인의 종교인양, 소수 종교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800년간 불교는 인도 땅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겨우 불교 성지를 중심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인도불교는 실론과 동남아시아에 인도의 원형불교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북방으로 전해진 대승불교는 동아시아인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에 살아있고, 후기 대승불교는 티베트에 그대로 전승되어 있다.

인도 공화국의 인구는 12억 7천만 명이라고 한다. 거의 13억 명이다. 중국과 거의 맞먹는 인구수를 갖고 있는 인구 대국이다. 언어가 많다보니 국어(國語)는 없지만, 공용어는 힌디어와 영어이고, 주 별로 공용어가 지정되어 있다. 인도 아 대륙에는 무려 3천3백 개의 언어가 존재하며, 1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만도 2백여 개가 넘을 정도로 다언어 국가이다.

인도 공화국 헌법이 인정한 지정언어만도 18개 언어이다. 힌디어 벵골어 텔루구어 마라티어 타밀어 우르두어 구자라트어 칸나다어 말라얄람어 오리야어 펀자브어 아삼어 신디어 네팔어 콘칸어 마니푸르어 카슈미르어 산스크리트어가 실제로 살아 있는 언어로서 사용되고 있다.

외국인들은 인도하면 힌디어가 국어나 유일한 공용어로 알기 쉽지만, 힌디어는 영어와 함께 국가 공용어로서 인구의 3분의 1이 사용하는 인도 중앙 정부가 정한 공용어 일뿐이다. 타 주와의 교류언어는 영어가 공용어로서의 기능을 한다. 힌디어 공용어 정책을 반대하는 주에서는 힌디어 사용률은 극히 저조할 뿐이다. 힌디어 하나만 놓고 보면, 세계 인구의 4.7%가 사용하는 세계 4위의 언어이다.

힌디어는 인도-유럽어족의 인도아리안 어군에 속하며, 데바나가리 문자를 사용한다. 인도의 언어는 인도유럽어족인 인도아리아어와 인도 원주민의 언어인 드라비다 언어로 대별된다. 인도 남부의 타밀나두의 타밀어, 텔루구어 칸나다어 말라얄람어 등이 드라비다 언어 군에 속한다. 특히 타밀어는 인도의 타밀나두 주의 언어이자, 싱가포르, 스리랑카의 공용어이다.

인도의 5번째 언어이며, 세계 인구의 약 1%가 쓴다. 타밀인의 민족 언어이며, 드라비다어족에 속하며, 타밀 문자를 사용한다. 싱가포르인구의 약 10%가 사용하며, 스리랑카 인구의 약 20%가 사용한다. 타밀인들이 힌디어 공용어 정책에 반대하여, 공용어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는 등, 인도 내에서의 언어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것이다.

실제로 남인도를 여행하다보면, 이런 언어문제가 현실로 다가 온다. 힌디어도 사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영어마저도 사용하지 않으려는 베타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인도에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인도의 주류 종교는 단연 힌두교이다. 힌두교는 인도인의 다수가 신앙하는 종교다.

제2의 종교 세력은 이슬람교이며 기독교 또한 만만치 않은 교세를 갖고 있다. 펀자브 주에서는 시크교가 주류를 이루며 극히 소수 종교인 조로아스터 교가 있고, 기타 토착 종교가 있으며, 불교도 존재한다. 힌두교 80% 이슬람 15% 기독교 2.3% 시크교 1.7% 등이다. 하위카스트들은 카스트나 종교적 차별이 없는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로 집단적으로 개종하는 종교적 현상도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 필자가 이번 인도기행에서 피부로 느낀 것은 힌두교의 생활화이다.

힌두교는 인도인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들의 종교로서 인도인들의 정신적 귀의처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불교적 관점에서 우리는 힌두교를 무조건 폄하하고 배척하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도외시할 일이 아니고 왜 힌두교는 인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힌두교를 진지하게 연구해 보아야 불교가 더 부각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우리불자들이 대개 인도를 가는 것은 성지순례가 목적이다. 우리가 인도를 찾는 것은 단순히 불교성지 순례란 차원을 넘어서 뭔가 구법(求法)의 의미를 갖고 인도를 찾는다. 사실, 지금의 인도에서 불교란, 불교성지 주변에 가야 불교를 만날 수 있고, 극히 제한 된 곳에서만이 불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도란 땅이 워낙 넓은 곳이고 亞 대륙인지라, 인도 내에서 이곳저곳 다닌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여정은 아니다. 인도에서 단순히 여행을 목적으로 하든지 아니면 성지순례를 하든지 비즈니스를 하든지 간에 가장 중요한 자세는 견딘다는 인욕이 필요하다. 인도로 가기 전에 동경했던 인도에 대한 환상은 인도 땅에 도착하자마자 송두리째 무너지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환경문제이다.

대도시는 물론이지만, 중소도시 등에 가면 우선 거리가 먼지투성이에다가 불결하기가 그지없다. 불교성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소똥이다. 소가 거리를 배회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고, 심지어 기차 역사 안까지 서성거리는 것을 보면, 여기가 인도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인도에서 소가 대접받는 이유가 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소는 인도인들에게 매우 유용한 동물이다. 우선 농사일에서 소는 쟁기질을 하는 상머슴이다. 또한 인간에게 우유를 제공해 주고, 소똥은 연료를 제공해 준다. 소는 인도인들에게 코끼리 보다 더 실용적인 동물이다.

인도에서 코끼리는 전투용이나 운송용으로 유용한 동물이었고, 코끼리 똥 역시 연료로 사용되지만, 현대에 와서 전쟁용으로 쓰이질 않고 운송용으로도 극히 제한 적이지만, 소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우 유용한 동물이기에 인도인들에게 대접 받는 동물이다. 이렇다보니 유용한 동물의 차원을 넘어서 힌두교신앙과 결부되면서 신성시되기에 이르렀다. 대개의 인도인들은 채식주의자들이다. 돼지고기도 안 먹지만 쇠고기는 더더욱 먹지 않는다.

무슬림들은 닭고기를 먹고 소를 신성시 하지 않지만, 힌두교도들은 소를 숭상할 정도이다. 때문에 소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심지어 역사 안까지 서성거려도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 가게 앞에 똥을 누면 어떤 행운을 가져 온다는 생각까지 하는 듯했다. 시골 농촌에서 소를 키운다는 것은 농사용으로 이해가 되지만, 도시에서 소를 키운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현실은 인도인의 도시 삶에서 소는 필요악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같으면 아니 인도 아닌 다른 나라 같으면, 과감하게 도시에서 소를 추방하겠지만, 인도는 도시의 삶에서 소와의 공존이 인정되고 있었다. 우유와 연료란 실용적인 면을 떠나서 인도의 오랜 문화요 관습으로 이해해야할 것 같다. 인도를 찾는 분들은 우선 소와의 우정부터 쌓아야 한다. 거리에서는 항상 소똥에 주의를 집중해야 밟지 않는다.

인도에서 소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흔히 볼 수 있는 특이한 모습이 힌두 승려들이다. 인도 어디를 가든지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는 힌두 승려들을 만나게 되는데 힌두 승려들의 유형은 다양한 것 같았다. 힌두 승려는 브라만 계급이지만, 가승(사이비)도 있는 듯 했다. 힌두 사원인 아쉬람(ashram)에서 수행하는 정통 힌두 승려가 있는가 하면, 인도전국을 방랑하면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산야사(saṁnyāsa) 승려가 있다. 그런가하면 인도의 힌두교 성지를 주로 순례하면서 방랑하는 힌두 승려들 또한 제법 되는 듯했다.

 

보검<세계불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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