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12-16 16:31 (일)
   |   
불기 2562(2018)년 12월 17일 월요일
[영상] 태고종 ‘조앙사’ 송헌 스님의 ‘진묵조사 연가’
[영상] 태고종 ‘조앙사’ 송헌 스님의 ‘진묵조사 연가’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8.07.26 14: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앙사(祖仰寺) 일주문 활짝 열어놓고
조앙사 전경
大雄殿과 三聖壂

 

대서(大暑)를 보낸 지 이틀이 지났다. 이마에 송송 맺힌 땀을 연신 닦아내며, 녹음을 가득 품고 있는 유양산으로 향했다. 멀리 새만금의 바닷바람과 김제평야의 너른 들 바람이 한곳으로 고여 합을 이루는 그곳, 태고종 ‘조앙사(祖仰寺)’가 일주문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앙사’ 송헌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 무지갯빛을 내뿜는 터널을 열 개도 넘게 건넜다. 그 터널 하나를 건널 때 가슴으로 무언가가 훅 치고 든다. 터널 중간 중간 무지갯빛 조명을 설치한 그 누군가의 배려에 고운 마음씨가 느껴졌을 수도 있었다.

‘조앙사’로 가는 길 모롱이를 돌 때마다 백일동안 피는 배롱나무 꽃이 벌겋게 피어 길을 텄다. 그 붉은 꽃잎 끝에 누군가가 부르는 연가(戀歌)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듯했다.

어찌나 애절한지, 귀 기울임이 깊이 않으면 도무지 들을 수 없었다.

오랜 전설을 품고 있는 ‘조앙사’

그때까지도 무지갯빛 터널에서 느꼈던 감동과 배롱나무 꽃잎에 걸린 연가들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조앙사(祖仰寺)’는 전라북도 지역의 고승이던 진묵조사(震默祖師)가 1562년(명종17)에 태어난 곳이다. 조앙사에는 ‘진묵조사전’이라는 전각을 마련하여 진묵조사를 모실 뿐만 아니라 영전을 세워 진묵조사의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진영까지 모시고 숭앙하고 있다.

또는 진묵 조사 (震默祖師)는 조선 인조 때의 승려(1562~1633). 이름은 일옥(一玉). 석가의 소화신(小化身)으로 추앙받았으며, 곡차를 잘 마시기로 유명하고 신통력으로 많은 이적(異跡)을 행하였다고 한다. 저서에 ‘어록(語錄)’이 있다.’

이 정도의 얄팍한 정보가 ‘조앙사’를 찾아가기 전, 내가 알고 있던 전부였다. 하지만 조앙사 주지 송헌스님을 만나자, 무지갯빛 터널에서 보았던, 배롱나무 붉은 꽃망울에서 뚝뚝 떨어지던 그 연가를 누가 부르고 있는 것인가 알게 되었다.

바로 조앙사 주지 송헌(松憲)스님이 오래도록 부르고 있는 연가(戀歌)였다.

송헌(松憲)스님이 오래도록 부르고 있는 연가(戀歌)

‘조앙사’ 주지스님의 시간 시간은 ‘진묵조사’의 민중사랑 그 숨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진묵조사의 발자취를 알면 알수록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고도 했다. 송헌스님은 진묵조사의 오랜 기록을 발췌하고 그 흔적을 좇아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았다. 그리고는 원광대학교 불교학과 ‘震默信仰의 展開와 變容에 관한 硏究’연구로 박사논문까지 발표했으니 진묵조사를 향한 마음이 어떠한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해가 새만금 둔덕 너머 30도 각도로 누워있을 시간, 서둘러 송헌스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했다. 해가 새만금 둔덕 너머로 사라지기 전 송헌스님의 설명이 담긴 조앙사 가람을 정성스럽게 카메라에 담았다.

조앙사 창건주 강연화 보살은 1915년 ‘진묵조사’를 숭앙하기 위해 절 이름을 ‘조앙사’라고 했다 1925년에 요사를 짓고 1928년에는 칠층석탑을 세웠으며, 1958년 종각을 짓고 이어서 1962년에 삼성전을 새로 지었다. 강연화 보살의 ‘진묵조사’를 숭앙하는 불심 또한 깊었다. 강연화 보살은 송헌스님의 조모라고 하니 깊은 인연들이 대를 이어가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조앙사에는 대웅전과 요사채, 지팡이를 짚고 있는 종각, 진묵조사전, 그리고 1927년에 조성된 조앙사 미륵석탑이 있었다. 그곳을 설명하고 전설을 풀어내는 송헌스님은 마냥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 진묵조사의 모친 조의씨 묘를 참배했다. 진묵조사의 깊은 효심 때문이었는지 수백 년이 흘렀어도 많은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진묵조사’의 효심이 어찌나 깊었는지 어머니 ‘조의씨’를 생각하며 ‘조의씨레’하며 음식을 조금 떼어서 허공에 버렸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고시레’로 변형되었던 것이다. ‘고시레’를 하면 농사가 풍년이 든다는 속설 때문인지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

진묵조사전에는 진묵조사 진영과 어머니 조의씨 진영(聖慈母調意氏眞影), 그리고 진묵조사의 누이동생 대조사소매 진영(大祖師小妹眞影)이 봉안되어 있었다.

“이곳 조앙사는 진묵조사의 탄생지입니다. 저 또한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처님께 올린 마지를 먹고 유년을 보냈지요. 그래서 진묵조사님의 모든 숨결을 찾고 그 뜻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게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라 확신합니다.”

‘조앙사’는 진묵조사의 탄생지

‘조앙사’는 진묵조사의 탄생지였다는 기록이 분명 있었다.

전라도 김제 만경북방 10리 북면 불거촌 일대, 그런데 그 주소는 현재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 3길 63-12 ‘조앙사’ 주소와 일치한다.

‘조앙사’그 터전에서 1562년 음력 4월 초파일 어머니 조의씨가 여의주 구슬 하나가 무지개를 그리듯 휙 떨어져 굴러 들어오는 것을 보고, 치마폭으로 주워 한입에 꿀꺽 삼키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열 달 후, 일옥이 태어났다. 7세에 출가한 일옥은 수행 정진하였고, 세월이 흘러 석가모니의 응신(應身) 임을 밝히게 되는 ‘진묵조사’가 된다. 그 후 '진묵조사'는 전라도 진묵신앙으로 널리 퍼져 민중들을 포교하였으며, 동학은 물론 일제 강점기 때에도 많은 서민들의 가슴에 살아남아 많은 민중의 정신세계를 올곧게 했다.

그 설화를 듣고 나니 무지개터널 안에서 가슴으로 훅 들어온 것이 혹여 여의주 구슬이 아니었을까? '진묵조사'를 염모하는 민중의 기운들이 조앙사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무지갯빛 도는 여의주 하나를 던져주고 가는 것은 아닌지.... 잠시 '진묵조사' 영정 앞에 멈추고 서서 인연법을 생각한다.

어둠이 서서히 내리고 여름매미의 울음소리만 가득해진 도량, 서둘러 송헌스님과의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24시간 항상 누구든지 도량에서 기도할 수 있게 일주문을 열어둔다는 ‘조앙사’....

그곳을 지키는 것을 평생 사명으로 삼겠다는 송헌스님의 모습에서 ‘진묵조사’의 민중사랑을 엿보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