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회에서 선암사의 주인은 선암사에 살고 있는 재적승려들이라는 관점에서 사자상승과 법류상속에 의한 선암사의 역대 큰스님들 가운데 한 분인 경운원기(擎雲元奇) 대선사를 조명해 봤다.

이른바 경운원기 대선사는 ‘화엄종주(華嚴宗主)’로 칭송 받는 고승이다. 그럼에도 근대한국불교에서 그의 공간은 너무나 협소하고, 전연 연구되지 않은 전인미답의 영역이다. 법손들의 분발과 대오각성이 요청된다 할 것이다. 물론 선암사의 당면문제가 소유권 문제로 인한 소송 등에 휘말려서 가람수호와 운영, 역사적 조명 등의 활동에 장애를 받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추동력을 갖고 분발할 필요가 있고, 태고종 총무원과 연계하여 협력하면서 총본사로서의 위상 찾기에 서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본다.

근대 한국불교 역사에서 경운원기 대선사의 위상은 너무나 좁혀져 있다. 단적인 예로 일제 강점기 30본산 연합 포교당이었던 각황사(현 조계사)에 조선불교 선교양종 종무원 교정 자격으로 주석하셨다. 경운 노사는 조선불교임제종 관장(종정에 해당)이기도 했으며, 조선불교선교양종 시대에는 교정(敎正=종정)으로 각황사에서 주석하면서 조선불교의 정신적 지주로서 상징 역할을 했다. 근 · 현대 한국불교의 대석학들이며 선교겸수의 선장(禪匠)들인 박한영, 진진응, 한용운, 최남선, 김경봉 스님 등이 다 경운 노사의 지도를 받았던 제자들이었다. 조선불교의 기라성같은 거승들이 다 경운 노사의 훈도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운 노사의 위상이 제자리를 찾아야 함을 염원하면서, 경운 노사의 주석처였던 조계산 선암사와 관련하여 종권수호대회와 정부 및 조계종 측과의 대화에 대한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추적해 보자.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총무원 부장스님들과 함께 지난 2월 28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으로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을 취임축하 인사차 예방했다. 한국불교신문 자료사진.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총무원 부장스님들과 함께 지난 2월 28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으로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을 취임축하 인사차 예방했다. 한국불교신문 자료사진.

‘한국불교태고종’이라는 간판으로 닻을 올리기 전에 한국불교조계종 시기인 1969년 3월 26일 한국불교교도회 주관으로 ‘종권수호 전국불교도대회’를 서울 시민회관에서 5백만 신도를 대표해서 3천여 대표와 4백여 대의원들이 결집하여 역사적인 대회를 가진 바 있다. 《불교계》 <통권 제 20호> 1969년 3월 30일 자에 의하면,

“지난 3월 26일 한국불교조계종 산하의 한국불교도회 중앙총본부에서는 대의원 443명과 일반 교도대표 25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제8차 전국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이규범 불교청년회 사무총장의 사회로 삼귀의례 국민의례 대의원 점명이 있은 다음, 전 회장 정두석 박사의 임기만료로 본회 총무부장 박승룡씨가 개회사를 대신하였고, <중략>, 교도회 조직 강화에 관한 건 등을 결의한 뒤 기타사항으로 김원경 의원의 불교종단이 유린되고 있는 현실을 폭로하여 재건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고, 이어 양정묵 의원이 그동안 관권에 짓밟힌 울분과 비구집단의 비위를 열거해 앞날의 종권수호를 제의하자 종권수호대회에 일임키로 하고 사홍서원”

이어서 종권수호대회가 본격적으로 개최됐다.

“종권수호 전국불교도대회의 개회를 선언하자 단상에는 괘불을 모시고 향촉을 밝힌 뒤에 종권수호에 대한 기원법요를 안덕암 종정사서의 인례로 증사단이 입장하고 인도법사들이 입장하여 장엄정중하게 집행하였으며 개회사에 이어 종권수호 선언이 있었고 그 실천방안 등을 채택한 뒤 종권수호위원을 선정하고 전국적으로 투쟁할 것을 다짐한 뒤 다시...”라고 종권수호대회의 시말을 기사로 소개하고 있다.

한국불교교도회 총재이면서 한국불교조계종 종정 국성우(묵담) 종정예하는 ‘총재 선시’를 통해서 “오늘의 한국불교는 일부 몰지각한 소승 외도배들의 작란과 이를 조장 비호하는 전근대적인 관권으로 말미암아 유례없는 혼란을 거듭하고... 장엄무비하던 당우가람은 퇴락하고 수다한 국보 문화재와 방대한 삼보정재는 분실 탕진되었을 뿐 아니라 교권은 실추되고 교우들은 흩어지고... 우리들에게는 안으로는 대승보살정신에 대한 신념이 굳건하고 밖으로는 5백만의 교우들이... 어떠한 관권의 농간이나 악랄한 난동이 있다 하드라도 종권은 한결같이 단결해... 우리는 하나의 사원이나 한 점의 문화재가 파순의 무리들에 의하여 점탈 · 유실되었고, 수십억대의 삼보정재가 탕진되는 것을 비분하게 ....”

라고 종권수호의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문화재 점탈유실과 삼보정재의 탕진이다. 얼마나 많던 문화재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또 삼보정재는 얼마나 탕진되었는가. 돌이켜보고 반성해야할 뼈아픈 지적이다.

이 대회의 종권수호 선언문을 살펴보자.

“우리 전국 5백만 불교도는 지혜의 힘을 모아 대한민국의 떳떳한 국민으로서의 우리의 기본권인 신앙의 자유를 구속하고 억제하는 일체의 관권의 간섭을 배제하고 종권을 수호하여 일부의 불순분자를 제거하여 교단을 정비하고 교세를 확장하여 조국의 발전과 세계의 평화에 기여할 것을 선언한다.

1. 불교의 현대화를 저해하는 위헌악법 <불교재산관리법>의 폐기를 촉구한다.

2. 행정 당국의 부당한 간섭과 우리 종단에 대한 말살정책을 결사반대한다.

3. 비구 집단의 부정을 도려내고 그들의 음모와 흉계를 분쇄한다.”

이렇게 종권수호대회를 개최하게 된 취지는; 종권을 되찾고 교단의 기강과 위신을 바로 잡아 불교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며, 불교의 현대화를 저해하는 악법인 ‘불교재산관리법’을 폐기하라는 촉구, 행정당국의 부당한 간섭과 우리(한국불교조계종) 종단의 말살정책 결사반대, 비구집단의 부정과 흉계분쇄 등을 주창하고 있다.

총무원장 편백운 스님(사진 오른쪽)이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총무원장 편백운 스님(사진 오른쪽)이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50여 년 전의 이 기록을 통해서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직도 사찰분규로 인하여 한국불교 특히 태고종은 몸살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사찰분규로 인한 혼란이 야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분규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으며 사찰 소유권을 둘러싼 소송전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화해와 대화는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1969년 3월 24일 신문회관에서 범불교적인 단체로 ‘한국불교총연합회’를 결성하게 된다. 관련기사에 의하면 한국불교조계종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법화종 대한불교법화종 원불교 심인불교 원효종 화엄종 불입종 천화불교 영산법화 등이 ‘한국불교총연합회’란 범불교단체를 결성한 것이다. 강령을 보면, 1, 우리 범불교도는 대동단결하여 불교근대화의 기치를 들고 용감히 일어섰다. 2, 우리 범불교도는 노후화된 교풍을 지양하고 불교의 대중화를 위하여 국민의 심전개발에 기여하자. 3, 우리 범불교도는 불교중흥의 역군으로서 홍법도생의 사명을 완수하자.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채택하는 등 전국불교들의 단결로 민족중흥에 앞장서자는 것이 취지인 듯하다. 정작 불교분규 해결에 대한 대안은 없어 보인다.

태고종으로 닻을 올린 이후, 태고종과 조계종은 분규사찰을 두고 첨예한 대립을 벌이게 되고 일촉즉발의 위기사태에까지 직면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그나마 태고종에서 소유하고 있던 사찰을 잃게 되는 상황에까지 직면하게 되고, 선암사도 사찰소유를 둘러싸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게 되었다. 이 무렵 종력을 너무 소진하게 되었고, 이로 인한 긴장감은 전 종도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한국불교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은 불교신자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하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타종교의 교세는 날로 신장하게 되고 원불교도 ‘한국불교총연합회’에서 탈퇴하고 독자노선을 걷게 된다.

태고종은 이런 와중에서도 조계종과의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을 줄곧 해왔다. 덕암 총무원장, 남허 총무원장 재임기간은 물론 박서봉 총무원장 재임 시에도 불교개혁과 분규사찰문제해결을 위한 시도를 한 바 있다.

1994년 4월 13일 종단기관장 회의를 통해서 조계종 개혁종단과의 대화를 시도한다는 결의를 하게 된다. 물론 구체적인 결실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태고종에서는 조계종의 개혁종단과 발맞춰서, 긴급기관장 회의를 개최하고, 양종단간에 연류된 분규사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조계종 측에 제의하기로 한 것이다.

양 종단의 부장스님들이 서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양 종단의 부장스님들이 서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국불교가 하나 되어 단일종단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통괄기구를 구성하자는 의견을 제안키로 한 것이다. 그 구체적인 제안으로서는 개혁종단과 협의체제아래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전망을 갖고, 대화 체제를 준비한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태고종의 제안으로 1995년 1월 17일 태고종 박서봉 총무원장과 조계종 송월주 총무원장은 비공개 회동을 갖고 양측에서 협상대표 7인씩 ‘사찰분규종식위원회’를 구성했다. 1954년부터 지속되어온 분규사의 이념적 청산이라는 명분 아래 사찰분규를 종식한다는 데에 합의하고, 95년 1월 17일 양 종단이 합의해 구성한 ‘사찰분규종식위원회’가 동년 9월 4~ 5일 조계산 선암사에서 열렸다. 사찰분규종식위원회는 더 이상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으나 양 종단이 상당한 의견을 접근을 했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지난 2월 28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으로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을 취임축하 인사차 예방했을 때에, “총무원장 스님하고는 한 문중(수덕사)인데 비슷한 시기에 (태고종과 조계종)총무원장에 취임하니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고 운을 뗀 뒤, “이제는 불교종단들이 화합해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었으면 한다. 설정스님과는 임기도 비슷하니 ‘하나가 되는 불교대화합’ 선언을 서로의 임기 내 이뤄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설정스님도 “‘화엄’의 원융사상으로 회통해야 한다.”면서 “이해관계가 얽히면 아무것도 될 수가 없다. 이해관계보다 사상과 신앙적으로 통합해야 대 화합이 이뤄진다. 일불제자로서 부처님의 근본정신에 투철하면 통합은 어렵지 않다. 과거의 시각에서만 바라볼 게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하고 분명한 것은 불조의 뜻을 철저하게 받들어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덕숭총림 수덕사가 출가본사인 편백운 스님이 2009년 5월 10일 수덕사를 방문해, 은사 동산스님이 만공 대선사로부터 전수받아 편백운 스님에게 내려준 홍 가사를 당시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에게 직접 전달하는 모습.  사진 출처= 석왕사 홈페이지
덕숭총림 수덕사가 출가본사인 편백운 스님이 2009년 5월 10일 수덕사를 방문해, 은사 동산스님이 만공 대선사로부터 전수받아 편백운 스님에게 내려준 홍 가사를 당시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에게 직접 전달하는 모습. 사진 출처= 석왕사 홈페이지

덕숭총림 수덕사가 출가본사인 편백운 총무원장 스님의 은사는 만공 대선사의 손주상좌인 동산스님이다.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지난 2009년 5월 10일 수덕사를 방문해, 은사 동산스님이 만공스님으로부터 전수 받아 편백운 스님에게 내려준 홍 가사를 당시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에게 직접전달 했던 인연도 있다. <한국불교신문 제 674호(2018년 3월 13일자) 1면 기사 참조>.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은 선암사 소유권 소송문제로 태고종과 조계종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앞으로도 뭔가 결실 있는 대화를 기대해 본다.

사찰분규는 고래로 사자상승과 법류상속의 전통과 역사성을 감안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조계종과의 소유권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선암사 문제는 본래 주인인 선암사의 스님들과 태고종에서 전적으로 관리,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원응스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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