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종단정상화의 원년

종단은 지난 몇 년간 내분으로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종세(宗勢)를 약화시키고 종도들의 의지와 사기(士氣)를 저하시켜왔다. 다행하게도 총무원장을 새로 선출하고 호법원을 정상화시켜, 종단의 동력을 추동(推動)할 수 있는 체제를 정비했다. 이에 발맞춰서 한국불교신문사도 종단산하 4천 사암의 활동보도와 논평, 3백만 신도의 전법포교를 담당하는 1만 승니(교임 전법사 포함)의 여론수렴 창구로서의 언론기능을 제대로 가동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보다 활력 있게 신속보도와 공유라는 시대적 소명을 다해야 한다는 각오이다.

종단의 모든 활동에 대한 기록은 그대로가 종단의 사초(史草)로서 종단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종단에서 일어나는 제반사항을 가능하면 다 담아낸다는 의욕을 갖고, 본 신문사의 인터넷신문을 적극 활용키로 방침을 세웠다. 종이신문에서 다 소화하지 못한 기사와 논평 등 다양한 장르의 글 들을 게재함으로써 종도들의 욕구에 부응하고 종단의 동력(動力)을 보다 활성화하여 종단홍보와 종도들의 소통창구로서의 기능을 강화하고자 한다.

한국불교신문은 빠른 시일 내에 지면 증면(增面)과 주 1회 발행을 위한 인원확충과 재정확보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과도기간엔 인터넷 신문을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종단으로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난 몇 년간의 종단 내홍을 극복하고 ‘2018년은 종단정상화의 원년’으로 삼고, 8대 종책을 수립,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본사 논설위원인 원응스님의 ‘태고종:회고와 전망’이라는 논설을 게재하고자 한다. 원응스님은 국내외 불교문제에 정통하고 동서고금을 꿰뚫는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언론감각과 뉴미디어를 지향하는 통찰력과 필력으로 정리한 논설을 3회에 나누어 게재한다.    <편집자 주>

  종단 정체성 확립과 대사회적 역할

태고종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국불교의 적통성이나 전통성만을 구호처럼 주창한다고해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불교의 태고종조법통설만을 주장한다고 해서 태고종의 정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도 결코 아니라고 본다. 한국불교의 통불교적인 선교밀정(禪敎密淨)의 종합성을 도외시하고 정토불교나 염불 범패 재의식(齋儀式)만을 태고종의 전부인양, 우리 스스로 내 세운다는 것도 어딘지 어색하다.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라고 낙인찍혀온 대처문제도 공론화해서 본종이 극복해야할 프레임이다. 태고종은 염불 잘하고 결혼해도 된다는 종단으로 일반에게 알려진 이런 잘못된 선입견의 프레임을 극복해서 우리 스스로 새로운 태고종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막연하게 주장이나 하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소극적인 자세를 지양해야한다. 이런 이론적 논의와 논리적 체계를 정립하여 태고종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종승(宗乘)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한국불교의 종조논쟁이 불붙기 시작할 때 만 해도 태고종조설을 주장하고 옹호했던 분들이 상당했다. 선승들은 압도적으로 태고종조설을 지지했지만, 학자들의 견해는 달랐다. 지금의 한국불교 종조설에 대한 학계분위기는 어떠한가. 기회가 되면 언급이 되겠지만, 태고종조설 못지않게 도의 종조설이나 보조종조설도 만만치 않는 학적 연구와 지지를 받고 있다.

종조논쟁을 하려고 해도 본종으로서는 인적 자원이 없는 실정이다. 태고종이야 당연히 태고종조설을 주창하지만, 과연 한국불교의 모든 승니(僧尼) 가운데 몇 %가 태고종조설을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무관심한지 조차 알 수 없는 것이 종조관에 대한 실상이다. 학자들의 연구 주제만으로서 논의되는 상항에서, 본종의 입장에서는 우선 연구인적 자원과 여건이 불리해서, 심증으로는 태고종조설을 따르지만 현실적으로는 대변인으로 내 세울 선수(학자)마저 없는 상황이다.

대처문제도 태고종이 극복해야할 프레임이다. 본종 종헌종법 어디에도 승니(僧尼)의 결혼을 허용하는 조문이 없다. 지금까지는 불문율(不文律)로서 묵인되어 오고 있지만, 공론화 된 적도 없고 종법은 물론 종단의 그 어떤 공문서에도 명문화된 적이 없다. 원효대사는 파계했지만, 성사(聖師)로 추앙 받는다고 위안을 느끼고 대리만족 내지는 정당화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원효대사는 후대에 그의 저술에 의해서 학적 심오함과 제종의 입장을 일심으로 귀원하여 화쟁론을 정립, 체계화한 고승으로 존숭받아서 성사(聖師)로 추앙되었지만, 당대 승가에서는 과연 여법한 승려였는지 깊이 고려해 봐야 하겠지만, 단순히 파계승만은 아니었지 않는가.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자로서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스님은 《朝鮮佛敎維新論》에서 승려의 결혼문제에서 취처론(娶妻論)을 주장하고 조선총독부에 건백서(建白書)를 제출해서, 공식화하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효대사를 성사로 추앙하는데, 그 분을 단순한 파계승으로만 보고 만해 한용운 스님을 취처론을 주장한 대처승으로만 치부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문제를 공론화해서 논의하면서 우리 종단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하는가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본종은 분규 법난(정화)의 직접적 이유 원인이 된 <비구대처>의 프레임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비구대처란 용어가 꼭 절절한지는 좀 더 연구해야할 여지가 있다고 보는데, 필자의 사적 견해로서는 ‘혁신파 對 보수전통파’로도 규정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문제도 담론을 전개하려면 상당한 지면이 할애 되어야 하겠지만, 이런 문제도 우리 종단에서는 확실하게 입장 정리를 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구족계인 대계(大戒)를 받으면서 대승계(大乘戒)를 받는다고 하지만, 대승계는 대승보살계이지 구족계는 아니지 않는가. 만일 대승보살계를 받는다고 하면, 인도불교 승가의 적통성을 계승하고 있는 법장부파의 <사분율>에 의한 구족계와는 어떻게 되는지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종단에서는 현재 <사분율>에 의한 비구 비구니계인 구족계인 대계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대처승’이라고 규정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이러이러해서 구족계를 받는다는 정당성을 주장해야하고, 구족계를 받고도 비밀리에 처를 두는 은처(隱妻)는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 ‘호적상에만 처자가 없으면 된다.’는 형식주의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호적상에 처자를 올릴 수 있다는 사실주의를 인정할 것인지 태도가 분명해야 한다. 본종은 사실주의를 택하고 있다.

참고로 여기서 길게 논할 수는 없지만, 1950년대 이른바 <비구대처> 분규 때, 대처 측에도 청정비구승들이 많았고, 양측이 다 존경하는 비구 고승들이 많았다. 한국불교조계종으로 등록하려 했지만, 당시 문교부에서 받아 주지 않아서 태고종으로 간판을 내세워 창종했다. 한국불교조계종 종정과 태고종 종정을 역임한 국묵담 스님이나 태고종 종정을 역임한 박대륜 스님, 안덕암 스님 등은 비구승들이었다. 비구측은 실정이 어떠했는지는 여기서 논의하지 않겠다. 여러분께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제 태고종은 이런 <비구대처> 프레임에 의한 일방적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떳떳함이다.

종단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확립해서 대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는 종교단체(종단)로 위상을 찾아야 한다. 4천개의 사암과 1만 승니(교임 전법사포함)라는 종단의 기본사암과 성직자(敎役者)란 구성원을 포용하고 있다면, 세계 어느 종교단체 못지않게 대단한 종세(敎勢)를 갖고 있으면서도 대사회적 역할과 종교 본연의 봉사활동을 못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3백만 신도를 포용한 大 종단의 체통을 세워야 할 시점에 이르렀음을 우리 종도들은 자각하자.

미래를 지향하는 정통종단으로

이제, 본종은 불협화음과 다소의 충돌을 극복하고 종단이 안정되고 정상괘도에 진입했다. 4천 사암과 1만 승니(僧尼)와 3백만 신도를 거느린 대종단이라고 하지만, 종단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본종은 다행하게 편백운 총무원장스님을 종단의 행정수장으로 선출해서, 지도력을 발휘, 취임한지 불과 3개월여 밖에 안 됐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편백운 총무원장 집행부는 ‘2018년은 종단정상화의 원년’이라는 기치아래 8대 종책을 수립하여 실천에 옮겨서 종단을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하려고 야심차게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모든 종도들은 태고종이 한국사회와 국민에게 인정받는 미래를 지향하는 희망과 행복을 주는 종단으로 성장 발전하도록 성원과 격려를 보내고 동참하자.

원응스님.
원응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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