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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2(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지허스님의 '대 선지식 방 거사 고찰' (14)
지허스님의 '대 선지식 방 거사 고찰' (14)
  • 한국불교신문
  • 승인 2017.12.0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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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도 아닌 세속에서 가족과 함께 도를 닦아
도를 성취한 것은 후세 불교에 보인 불멸의 흔적

우리는 부설거사의 생애를 통해 자신의 현재 수행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부설거사는 스물의 나이에 불국사에서 출가하여 강원(講院)에 들어가 경서를 배웠다. 불교의 경전은 간단히 말해 견성오도의 다양한 해설서이다.

견성오도의 길을 배워 알면 응당 실행해야 한다. 실행하지 않는다면 지식에 지나지 않는 죽은 글이 되고 만다. 많이 아는 것과 깨달음은 언제나 별개의 문제이다. 출가의 진정한 목적은 견성성불일 뿐 그 외에는 없으며 그 실행의 길은 오직 자기만이 선택하는 것이다.

부설거사는 불국사에서 배워서 아는 그 길을, 산중의 승가(僧家)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믿는 세속에서 하기로 작정하였다. 절친한 승가의 친구 영희와 영조를 떨치고 범부의 가정생활을 하여 아들과 딸을 두었으면서도 견성성불의 수행은 철저하고도 꾸준하였다.

수행한지 20년 만에 만난 옛 도반 영희·영조에게 거사는 그간 수행의 결과를 보이자고 제안하였다. 농부가 농사를 지었으면 풍작이든 흉작이든 그 농산물이 있을 터이니 이를 보이자는 것인데 수행자들은 이를 송(頌) 혹은 오도송(悟道頌)이라 하기도 하며 법문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인적마저 드문 고요한 산속의 절, 아무도 수행에 장애를 주지 않은 선원에서 오로지 참선만 20년을 닦은 영희, 영조 두 옛 도반에게 그 깨친 내용을 송으로 보여준 법문을 우리는 깊이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빨랫줄에 걸어둔 세 개의 병에 물을 담아 각자 막대기로 때려 병은 깨지고 허공에 물만 남도록 하는 것은 신통이나 요술이 아니다. 부설거사만이 이를 보였으나 이 일은 불가능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어두운 중생에게는 오히려 송으로 이어진 깨달음이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지지 않을 수 없다.

도는 모양으로 나타날 수 없으나 모양 속의 내용으로 나타낼 수 있다. 병이 깨진 것은 모양이고 허공의 물은 내용이다. 그 내용을 송으로 말했다. 부설거사는 첫머리에 ‘신령한 빛’은 우리의 자성(自性)이요 불성(佛性)이며 마음이다. 이 자성이 홀로 노출되어서 티끌의 뿌리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뜻이다. 우리의 마음은 물질과 대상과 이 몸뚱이에 연관되어 잠시도 벗어 날 수가 없다.

우리 중생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우리 자신이라고 믿고 이에 구속되어 살고 있다. 이것이 그저 잠깐의 인연에 의하여 모인 티끌이라서 한 번의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줄 모르고 살고 있다. 이 티끌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해탈이다.

생사(生死) 없는 이 해탈이 극락이요 견성성불의 길이다. 그래서 우리가 죽으면 화장을 하고 화장을 하면 다비(茶毘)라는 염불의 정좌편(正坐篇)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영광독로 적탈근진 체로진상 불구생멸

(靈光獨露 適脫根塵 體露眞常 不拘生滅)’

부설거사의 법문이 만고에 잊어서는 안 될 깨달음의 말씀인지라 몇 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 다비 염불로 남아 모든 영가에게 알려주고 해탈을 권유하고 있다. 해탈하려면 참된 성품이 6근 6식(六根六識)에서 탈피하여야 본질의 자성이 나타남으로써 나고 죽음에 구속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설거사는 이어서 말씀하신다. 덧없는 이 몸뚱이는 환상인데 이 환상은 나고 죽음이 윤회로 옮겨 흘러서 마치 병이 깨지면 부서져 버림과 같다 하셨다.

부설거사가 영조 ·영희 두 도반에게 병에 물을 담아 보인 것은 물 담은 병이 이 몸뚱이요, 물은 우리 마음 혹은 자성이니 몸뚱이가 없어진다고 마음도 따라 흩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행으로 밝혀진 자성은 본래 자체가 변함이 없는 것이기에 병은 깨져도 허공에 있는 물과 같다는 것이다. 허공에 있는 물은 일체 중생 각자 평등하게 갖추어진 자성이니 우주가 생기기 전에 있었고 이 우주가 없어져도 존재하는 엄연한 한 물건이기에 신령한 빛이라는 것이며 그 밝기는 태양을 넘고 크기는 우주를 감싸 안는다 한다.

그대들이 산속 총림(叢林)의 큰스님을 만나 나고 죽는 실상 법문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헛된 환상만 갖고 참된 법의 성품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없어져 흩어진 병속의 물을 미리 조심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라고 경책하였다. 또한 함부로 한 수행으로 편안에 머물지 말기 바란다는 것이 부설거사가 영조, 영희에게 설법한 것이다. 이에 영희, 영조가 산중에서 수행한 수행자라는 헛된 자존심을 내지 않고 속가에서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은 거사의 법문을 듣고 바로 참회했다고 하는 아름다운 실화이다.

수행과 견성성불에는 차별이 없고 분별 또한 없다. 승속이 없으니 어찌 비구나 대처가 있다고 할 것인가. 다른 종교와 달리 아무리 청정하게 계율을 잘 지킬지라도 수행에는 철저함과 나태함이 있고 형태를 쫓아 가식이 있고 진실이 있으며 게으름과 부지런함이 있다.

우리가 수하는 가사는 부처님의 옷이므로 사치나 장식이 아니다. 가사는 부처님의 길가에 떨어진 헝겊을 모아 기운 옷이니 검소와 근면의 표상이다. 발우에 한 술 밥을 먹는 것은 주린 배를 달래서 이 몸이 있을 때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자는 것이고 산 중에 절이 있는 것은 수행자가 수행할 수 있도록 거처를 마련한 것이다. 불상, 탱화, 건물 등은 선 조사 스님들의 문화의 흔적으로 깊은 뜻이 담긴 유훈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한 이후 돈독한 수행으로 고승대덕이 계계승승 출현했으나 속가에서 거사가 일상생활 속에 수행하여 견성 오도한 부설거사의 생존은 한국불교의 격을 크게 높일 뿐 아니라 승속을 망라한 수행의 경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설거사의 수행과 견성오도한 흔적에 대하여 소홀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부설거사는 지금도 전북에 있는 망해사(望海寺)에서 다음과 같은 열반송(涅槃頌)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目無所見無分別(목무소견무분별)

耳聽無聲絶是非(이청무성절시비)

分別是非都放下(분별시비도방하)

但看心佛自歸依(단간심불자귀의)

눈으로 보는 바가 없으니 분별이 없고

귀로 소리를 들어도 들은 것이 없어 옳고 그름이 그친다.

분별과 시비를 모두 내려놓고

다만 마음부처에 스스로 돌아갈 뿐이다.

이외 부설거사의 생활 시(詩)가 몇 편 전하여 오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부설거사는 오도(悟道)의 경지에서 방거사와 같이 선지식과 법을 거래하거나 법제가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에 선종(禪宗)이 따로 정립되지 않은 시대에 승가(僧家)도 아닌 세속에서 가족과 함께 도를 닦아 도를 성취했다는 것은 후세 불교에 보인 불멸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임종에 직면하여 읊은 열반송(涅槃頌)은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한 송구(頌句)가 분명하다 하겠다.

부설거사가 살았던 신라시대는 불교가 한반도에 수용된 이후 점차 국교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시작한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다. 신라시대의 대표적 고승으로는 원효스님을 들 수 있는데 이 두 분의 공통점은 거의 동시대에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사실 이외에 직지인심(直指人心)함으로써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부처님 가르침의 본질을 터득하고 이를 실행한 후에 자리이타(自利利他)하는 원융불교를 개척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원효스님은 늦게(29세) 출가하였고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후에 신라의 대학자가 되는 설총을 낳았으나 일생을 수행에 전념하였다. 원효스님은 <화엄경> <법화경> 등 모든 경전 소 100여종을 저술했다. 그중 <금강삼매경론>은 중국에서 널리 유행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대승기신론>이 강원의 교재로 최근까지도 쓰여졌다.

바다는 모든 물을 사양하지 않는다. 가없는 바다에 고래만 살라는 바다도 없다. 거북이도, 작은 고기도 활발하게 사는 것이 바다이다. 일체 중생이 한결같이 불성이 있어 누구든지 수행만 하면 견성오도하는 것이 불교이고 큰 바다이다.

인도에는 유마거사의 <유마경>이 있고 중국에는 방거사가 있어 <벽암록>과 <선문염송>의 상당한 부분에 견성성불의 내용이 담겨있다. 부설거사는 견성오도를 위하여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였던 수행자였으나 후에 속가의 일상생활 속에서 나무 말이 금사다리를 올라가듯 일여(一如)하게 참구하여 견성오도 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이 출가한 수행자에게는 선지식이 몽둥이로 30방을 내리듯 큰 경책이 될 수 있다.

              지허스님 (순천 금둔사 조실, 원로회의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