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만 쫓는 것도 공부가 아니요, 마음만 찾는 것도 공부가 아니다

형상속에 마음공부 있으나 형상서 형상을 벗어난 마음공부가 참 공부

승려라는 신분으로 별도의 주거지와 일정한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하는 스님들도 있지만 세속에서 정진하는 거사도 많다. 그들 중 중국을 대표하는 거사가 방거사, 인도의 유마거사, 우리나라의 부설거사가 있다. 유마거사는 부처님 당시 부처님의 속가제자였고 저서로는 <유마힐소경(維摩詰所經)> 3권이 있어 구마라습과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번역하였다.

유마거사의 병중에 대지문수보살이 여러 성문 보살들과 문병을 갔을 때 일이었다. 유마거사 집에서 32 보살이 제각기 불이문(不二門)을 말할 때 마지막 문수보살이 “나는 일체 법에 대하여 말로 할 수 없고 보일 수도 없고 안다고 할 수도 없어서 일체의 문답을 떠난 것이 보살이 불이문에 든 것으로 압니다. 무엇이 보살의 불이법문에 드는 것이라 여깁니까?”

이에 유마거사가 묵연(默然)하니 문수보살이 감탄하기를 “언어와 문자까지도 없는 것이 보살이 참으로 불이법문에 드는 것이구나!” 하였다. 보살들은 유마거사의 불가사의한 해탈상을 보았고 무주(無住)의 근본으로부터 일체법이 생겨 삼라만상을 이루었으나 이것이 모두 불이(不二)의 일법(一法)이라 설법을 들었고 최후에 침묵으로 불가언불가설(不可言不可設)을 보았다.

불이문이란 모든 현상이 차별도 없고 분별도 없어야 총체적인 대 진리의 한 테두리에 든다는 것이다. 보살은 ‘각유정(覺有情)’ 또는 ‘대사(大士)’라 번역하고 성불하려 애쓰는 사람을 말한다. 사홍서원과 육바라밀을 수행,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 일체중생을 교화하여 자리이타 행을 구하는 구도자를 뜻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불도 부처되기 전에 호명보살이었으며 보살에는 출가보살과 재가보살이 있어 대승법을 수행한다.

우리나라의 부설(浮雪) 거사는 선덕여왕 조의 인물로서 본래 신라 경주 출신이며 이름은 진광세(陳光世)였다. 20세에 불국사 원정선사에게 출가하여 경서에 집중하니 경학(經學)의 도반이 많았고 영희(靈熙), 영조(靈照)가 친했다. 어느 날 세 사람이 강원도 오대산으로 가는 도중에 전북 김제군 성덕면을 지나다 구씨(仇氏) 집에 머물렀다.

떠나는 날이 되자 구씨의 딸 묘화(妙花)가 아버지를 통해 이 세상에 나서부터 벙어리로 살다가 광세스님과의 삼생연분(三生緣分)을 오늘 만나 이제 말을 하게 되었으니 부녀자로서 도리를 다하겠다 하였다. 이에 영희, 영조 스님은 떠나고 광세 스님은 이름을 ‘부설’이라 하며 가정을 이루어 사내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아 길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영희·영조 두 스님이 부설거사를 찾아왔다.

부설거사가 두 스님에게 그동안 수행한 바를 보여 달라고 하면서 물을 가득 담은 물병 세 개를 빨랫줄에 걸어두었다. 거사는 각자 이 막대로 병을 때려 병이 깨지고 물만 허공에 남게 하자고 하였고 이에 두 스님이 병을 깨뜨렸으나 물은 쏟아지고 말았다. 그러나 부설거사의 병은 깨지고 난 뒤에도 병 모양의 물이 허공에 그대로 남았다.

두 스님의 공부는 그간의 산중공부가 계정혜 삼학으로 담백하고 순조로웠지만 확철대오에 이르지 못하였고 부설거사는 오염된 세속에서 반사된 자기 성찰(自己省察)을 통하여 돈독한 참구를 결행한 결과 일상생활 하나하나가 깨달음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는 산중의 사찰이나 암자는 불법을 보존하는 온실이라 한다면 세속의 공부는 비바람과 눈보라에 노출된 들판의 야생과 같다.

수행의 형상공부가 병이라면 물은 지극한 마음공부이니 형상을 쫓는 것도 공부가 아니요, 마음만 찾는 것도 공부가 아니다. 형상 속에 마음공부가 있으나 형상에서 형상을 벗어난 마음공부가 참 공부이다. 옛 도반 영희·영조 두 스님이 빨랫줄 앞에서 즉시 부설가사에게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예배하고 오도법문(悟道法門)을 청하여 들었다. 부설거사의 법문은 다음과 같다.

靈光獨露 適脫根塵(영광독로 적탈근진)

體露眞常 不拘生滅(체로진상 불구생멸)

신령한 빛 홀로 드러나 안이비설신의 근본을 멀리 벗나니

참된 성품이 본질로 나타났기에 죽고 사는 것에 구속되지 않느니라.

幻身隋生滅遷流者 似擺之破碎(환신수생멸천류자 사파지파쇄)

眞性本靈明常住者 如水之縣空(진성본영명상주자 여수지현공)

덧없는 몸뚱이는 나고 죽음에 따라 옮겨 흘러서 병이 깨져 부서짐과도 같고

참된 성품은 본래 신령스럽게 밝아서 항상 있는 것이니 허공에 매달려 있는 물과 같다.

公等遍參知識 久歷叢林 (공등편참지식 구력총림)

豈不攝生滅爲眞常(기부섭생멸위진상)

空幻化守法性乎(공환화수법성호)

欲驗來業自由不自由(욕험내업자유부자유)

便知常心平等不平等(편지상심평등불평등)

그대들이 두루 선지식 찾아 총림에서 지냈는데

어찌 나고 죽는 참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는가

헛된 환상만 이어지고 법의 성품을 지키지 못했는가

총림에 와서 자유로움과 자유롭지 못함을 경험하였으면

일상의 마음에서 평등과 불평등을 편하게 알아야 한다.

今旣不然 錐日返水之戒(금기불연 추일반수지계)

安在蠻行之誓 辣矣(안재만행지서 랄의)

지금 그렇지 못하다면 다음날 엎어진 물의 잘못을 미리 조심하여

함부로 한 수행이 편안에 머물러 바란다고 되지 않음을 어찌할거나

 

법문을 마치자 영희와 영조가 눈물을 흘리며 그간의 안이한 수행을 참회하고 결연한 서원을 세워 활연대오(豁然大悟) 하기를 재촉하였다.

그 후 묘화부인은 아들과 딸을 모두 입산 출가시켜 지금의 전북 변산에 아들의 수행처 등운암(登雲庵)과 딸의 수행처인 월명암(月明庵)을 지어 수행하게 하였다.

현재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인 월명암은 수행자들이 찾아 드나드는 곳으로 신라 신문왕 11년인 691년에 부설거사가 창건했고 의상대사가 중창하였으며 선조 26년(1592)에 진묵대사(震默大師), 철종 14년(1863)에 성암화상, 1915년에 학명선사(鶴鳴禪師)가 중창을 이어왔다.

 

                             지허스님 (순천 금둔사 조실, 원로회의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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