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회 시작에 앞서 코코넛 오일램프에 불을 밝히는 의식을 하고 있다.

가끔 지인들이 실시간 중계 하듯이 스마트폰으로 보내주는 한국의 사진들과 글들을  보곤 하는데 그걸 보고 있노라면 계절의 변화로 인한 기온의 차이를 마치 내가 한국에 살고 있는 듯이 느낄 때가 있다. 아마도 그건 40여 년 동안 그런 계절의 변화를 겪은 나의 몸이 기억의 창고 어딘가에 그 변화와 관련한 모든 자료들을 남겨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졸업시험 준비가 한창인데 학교 게시판에 공고가 하나 붙었다. 졸업사진 촬영과 티 파티(Tea Party:빵과 우유 등의 간단한 점심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듯함) 그리고 우리나라의 사은회와 유사한 행사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가사와 장삼을 준비해서 학교로 갔다. 사실 일주일 중에 월요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여기저기 공부하러 다녀야 하기 때문에 통학의 편의를 위해서 그리고 교통비와 시간의 절감을 위해서 작은 오토바이를 하나 장만했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 갈 때나 개인적인 수업하러 갈 때는 두루마기나 동방 등을 입지 않은 비교적 간단한 승복차림으로 다니게 되었고 그런 승복을 입은 나를 보고 남방불교 국가의 스님들이나 스리랑카 재가자들은 왜 가사를 수하지 않는지 무척 궁금해 했다. 특히 스리랑카 재가자들은 스님이 가사를 수하지 않고 다니는 이유가 상당히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나랑 조금 친해진 사람들은 거의 다 왜 가사를 수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물어보곤 했으니까.

그때마다 나는 어쭙잖은 영어로 스리랑카 사람들이 보리수를 부처님처럼 생각하며 예배를 올리듯이 우리나라의 경우 가사와 발우를 부처님께 받은 것처럼 소중히 여겨 예불 드리는 시간과 특별한 의식이 있을 경우에만 수한다고 했더니 일부는 그렇게 이해하는 듯 했고, 또 북방불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은 그래도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스리랑카의 불교문화에만 익숙한 이들이라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사진은 여섯 명이 한조가 되어 스리랑카 스님들이 사용하는 부채를 들고 그냥 흰색 벽을 배경으로 찍었으며 그 사진을 합성해서 단체사진처럼 만들어 준다고 하니 그저 실소(失笑)만 나왔다. 내 차례가 되어 가사와 장삼을 꺼내 수하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 되었다. 항상 간소한 승복만 입고 있고 다니던 모습만 보다가 홍가사와 긴 장삼을 수한 나를 보자 어떤 스님은 신기해하면서 만져보기도 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는 스님들도 있어 갑자기 저명인사가 된 기분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사진촬영이 끝나고 스리랑카 특유의 카레냄새가 나는 빵 두 개와 작은 바나나 하나 그리고 우유 한 개를 점심으로 먹고 난 후 대학원에서 강의하는 모든 교수와 강사를 모시고 사은회를 개최했다.

스리랑카에서는 거의 모든 의례절차의 시작을 사람 키 높이 정도의 코코넛오일램프에 불을 밝히는 의식으로 시작한다. 이 램프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절에서 사용하며 상단에는 8정도의 문양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상단에 스리랑카의 국조인 멧닭(Sri Lanka Jungle fowl:야생닭으로 우리나라 닭보다 덩치가 조금 작으며 생김새는  거의 흡사함)이 장식된 램프인데 절 이외의 장소에서 사용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가본 스리랑카 현지인 집에는 대부분 이 램프가 있었던 것으로 봐서 일반 가정에서도 이 램프를 사용하는 의례가 가끔 있는 모양이다.

학교의 공식적인 행사로는 마지막으로 졸업사진 촬영을 끝내고 다시 MA졸업시험 공부를 했다.
요즘 내 생활에 있어서 영어가 거의 전부가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12월 초부터 중순까지의 시험기간 중 총 7과목의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한 과목당 8문제가 제출되며 그중에서 내가 자신 있는 4문제를 선택하여 답안지를 작성해야 한다.

답안지 작성은 한 문제당 500자 내외로 해야 되는데 A4용지 약 3장 분량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한 과목당 A4용지 12장 가량, 7과목을 작성하면 약 84장 정도의 답안지를 작성해야 한다. 당연히 영어로 쓰고 간간히 빨리어도 섞여야 한다.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나의 영어에 대한 이해와 글쓰기 수준을 고려해 볼 때 약 100장의 예상문제 답안지를 죽자고 덤벼들어 외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시기가 나의 유학기간 중에 넘어야 할 몇 개의 큰 난관 중에 하나가 될 것 같다.

물론 한글로 된 논문이나 서적을 읽는 방법도 있지만 빨리어 경전과 상좌부불교의 전통계승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 나라 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자칫하면 오답을 작성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그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나보다 앞서 공부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래도 그 시험을 치고 나면 초기불교와 상좌부불교 그리고 아비담마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교리적으로 한층 성숙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영어실력 또한 향상이 있을 거라고 하니 그 말을 믿고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듯이 조금 더 힘을 내보고자 한다.
그리고 나에게 조용히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 넣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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