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종단의 해외별원 스님들도 종단 차원서 교육 기회 제공받아


 일본에서는 주지의 부인을 ‘보모리(坊守)’라 부르는데 정말 ‘1인 다(多)역’의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젊을 때는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고 중년이 되어 남편이 대를 이어 주지가 된 후에는 주지 밑에 소임을 보는 스님이 있든 없든 ‘보모리’는 여러 역할을 해 내야 한다. 아침예불 참석은 말할 것도 없고, 법회가 있을 경우 스님으로서 북이나 목탁 치기, 외부에서 오는 전화 받기, 찾아오는 신도들 맞이, 납골당 관리, 절 및 집안 청소 등 하는 일이 많아 사찰의 규모가 클수록 매우 바쁘다. 주지스님 외 다른 스님이 없는 절인 경우 더욱 바쁘게 생활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일본에서는 주지의 부인을 ‘보모리(坊守)’ 라 부르는데 정말 ‘1인 다(多)역’ 의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사진은 정토진종 소속 소라꾸지의 주지 부부의 예불 모습. 부인은 득도하고 주지 자격까지 취득, 남편인 주지스님과 함께 아침 예불부터 절의 모든 일을 같이 하고 있었다.

일본 북해도의 거의 전체 사찰에 주지스님 가족들이 생활하는 건물이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지의 부인과 아들이 득도(得道, 스님의 자격을 받는 절차)를 하여 사찰의 큰 법회 등 주요 행사에 가족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내가 요간지(陽願寺)에 도착한 것이 지난 3월 18일이다. 이틀 후인 20일부터 23일까지 연속으로 큰 규모의 춘계법회(가을에는 추계법회가 있음)가 열려서 나는 한국스님 자격으로 가사를 수하고 4일간의 법회에 전부 참석했는데 이 법회에 주지스님의 장남인 대학생은 물론 중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까지 승복을 입고 참석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같은 정토진종 소속의 소라꾸지(正樂寺)는 오는 2016년 창건 120주년을 맞이하는 고찰(古刹)이지만 시내에서 50여km 떨어진 농촌에 위치하는 관계로 신도수가 적어 재정이 여유롭지 못하다. 주지 호우쥬(朋允) 스님은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지만 장남임으로 늦은 나이에 부친으로부터 주지직을 승계 받았다. 소라꾸지가 농촌에 소재해 재정적 어려움이 있어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주지 호우쥬 스님은 다른 사찰의 초빙을 받아 법문이나 강의를 나가는 일이 많아 절을 비우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래서인지 부인이 득도하고 주지 자격까지 취득하여 남편인 주지스님과 함께 아침 예불부터 절의 모든 일을 같이 하고 있었다.

소라꾸지의 본존부처님 및 대법당의 배치나 기타 예불 내용 등은 다른 정토진종 사찰과 비슷했지만 아침예불 시간은 다른 사찰보다 1시간 빠른 오전 7시부터 시작되었다. 주지스님의 부친도 80이 넘은 고령이지만 절의 업무를 열심히 돕고 있었다.

일본사찰의 스님들은 주지를 제외하고 전부 자기 집에서 출 퇴근(?) 한다. 물론 아직 독신인 스님의 경우 주지스님의 가족과 함께 절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다.
츄오젠인(中央禪院)에는 총 6명의 법무원이 있는데 이중 3명은 기혼자이고 3명은 독신이다. 모두 아침 6시에 절에 출근(?)해서 오후 3~5시쯤 퇴근(?)하고 있었다. 퇴근하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두발 음식 등 기타 모든 면에서 일반인과 조금도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이런 전통은 아마 현재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정토진종의 개창자인 친란(親鸞, 1173~1262) 스님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친란스님은 처음부터 절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주지 외 법무원이 있는 사찰에서는 매월 1~3회 정기휴일이 있다. 일정기간(10년)을 법무원(法務員, 2년 이상 승려의 교육을 마치고 사찰에 근무하는 스님을 지칭함)으로 근속한 후 퇴직하면 평소 자기 봉급에서 일정액(본인부담 50%+사찰부담 50%)을 적립해 둔 것으로부터 퇴직금도 받는다. 또 4대 보험을 절에서 들어주고 보험료도 부담해 준다.

츄오젠인(中央禪院)은 조동종 산하 절이다. 조동종의 개조(開祖) 도겐(道元, 1200~1253)스님은 명문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여덟 살 때 어머니를 잃어 어린 나이지만 무상(無常)을 느껴 13세 때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천태좌주를 스승으로 삼고 출가했다. 23세때 중국 송나라로 유학하여 고승인 장옹여정(長翁如淨)스님을 만나 선(禪)을 배웠고 4년 후 귀국하여 1227년 교토(京都)에서 조동종을 열고 포교를 시작하였다.

도겐스님은 오직 좌선을 하면 ‘지관타좌(只管打坐, 화두를 깨우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남)’에 의해서 여래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고 또한 끊임없이 좌선을 함으로써 몸의 고통이나 정신적인 번뇌에서 벗어나 ‘싱싱다츠라꾸(心身脫落, 몸과 마음에서 초월된 상태)’의 경지에 오른다는 것을 주장했다. 조동종의 본존은 석가여래이고 소의경전은 도겐스님이 저술한 <정법안장(正法眼藏)>이며 총본산은 에이헤이지(永平寺)이다.

 정토종의 시소우지(慈照寺)가 외관적으로 일본의 여타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입구에 사천왕이 서 있고 우측에 큰 종이 설치돼 있으며 목탁 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볼 때 한국 절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했는데 츄오젠인(中央禪院, 주지 기항義範)에서는 한국의 사찰과 더 많은 유사점을 볼 수 있었다.

우선 아침예불 때 사용하는 에이헤이지의 <일과경대전(日課經大全, 조석 예불 때 읽는 책)>의 첫 시작이 우리 <천수경>과 같이 개경게(開經偈)부터 시작하며 반야심경 다음으로 봉청삼보(奉請三寶)라는 제목으로 ‘나무시방불 나무시방법 나무시방승’을 하고, 마지막으로 낭독하는 사리예불만이 우리와 다른 내용이다. 대법당의 본존은 석가여래부처님이고 달마대사와 대현보살(중국)이 본존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츄오젠인의 아침예불 장면을 재구성해 보면 주지스님은 본존 중앙 하단에서 총 주관하고 오른쪽의 스님은 큰 종을, 왼쪽에 계신 스님은 큰 목탁을 치면서 경전을 17분간 낭독한 후 스님 전체가 좌측으로 이동해 깅삐라(金毘羅, 약사12신장중 하나이고 불법을 수호하는 神)앞에서 10여분 간 <대반야리취분경>을 우측으로 3번 좌측으로 3번, 상하로 1번씩 넓게 흔들면서 주문(呪文)을 낭독한다.

이렇게 <대반야리취분경> 책을 8번 흔드는 뜻은 이 책의 분량이 600권으로 전부 낭독할 수 없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흔들어 독송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 후 전원이 1층으로 자리를 옮겨 이다뎅(韋태天, 북방천왕의 아들이며 불교 가람의 수호신) 앞에서 약 5분간 주문을 외운 뒤 아침 예불을 끝낸다. 

일본에서는 주지의 부인을 ‘보모리(坊守)’ 라 부르는데 정말 ‘1인 다(多)역’ 의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젊을 때는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고 중년이 되어 남편이 대를 이어 주지가 된 후에는, 주지 밑에 소임을 보는 스님이 있든 없든 ‘보모리’는 여러 역할을 해 내야 한다.

아침예불 참석은 말할 것도 없고, 법회가 있을 경우 스님으로서 북이나 목탁 치기, 외부에서 오는 전화 받기, 찾아오는 신도들 맞이, 납골당 관리, 절 및 집안 청소 등 하는 일이 많아 사찰의 규모가 클수록 매우 바쁘다. 주지스님 외 다른 스님이 없는 절인 경우 더욱 바쁘게 생활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원래 일본사람들이 부지런하기도 하지만 내가 머물렀던 사찰의 주지 부인들을 평가할 때 그 많은 일을 하면서도 항상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밝은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놀라웠다. 일본인들 특유의 혼네(本心/진심)와 다데마에(建前/진심이 아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늘 미소를 띠고 절에 관련한 많은 일을 잘 해 내는 것을 보면 정말 ‘보살’ 이라는 칭호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한국스님으로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일본 스님들이 아침예불 후 법당에서 상의를 벗고 체조를 할 때였다. 평일에는 예불을 끝내고 30여 분간 주지 이하 스님들이 경전 공부를 하는데 매주 수요일은 공부 대신 약 20여 동작의 체조(스트레칭)를 하면서 일주일간의 피로를 푼다. 매일 자택에서 아침 8시에 절로 출근(?) 해서 오후 4~5시 퇴근(?) 하는 생활인데 체조를 하려면 각자 집에서 하면 되지, 굳이 법당 부처님 앞에서 옷을 벗고 체조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 처음에는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한번 생각해보니 종교는 인간이 만들었고 스님도 건강해야 절 일을 잘 할 것이라고 할 때 ‘아! 이것이 일본불교가 생활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융합하는, 그래서 절 속에 집이 있고 집 안에 절이 있는 사가불교(寺家佛敎)’ 라는 결론을 얻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내가 태국의 왓보원 사원에 있을 때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에서 태국불교를 알기 위해 대학과 대학원에 공부(박사과정도 있었음)하러 온 스님들이 많았다.
물론 우리 한국 스님들도 미얀마 등 남방불교 국가에서 많이 수행정진하고 있으나 개인적인 수행이지 종단 차원의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일본의 경우 각 종단에 평균 1개 이상의 대학(정토진종, 진언종, 정토종은 각각 3개의 직할대학이 있음)과 많은 전문학교가 있고 이들 학교에서 스님과 주지들을 꾸준히 교육, 양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종단(정토진종, 일련종, 조동종 등)의 해외 별원(別院, 해외 분원 성격)에  있는 스님들에게도 종단 차원에서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의 조계종이나 태고종과 같은 큰 종단의 해외 사찰이 어디에 얼마나 있으며 그 해외사찰들의 주지나 스님들을 한국 종단의 직할대학이나 전문학교에서 정규적인 교육을 시키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지 궁금하다.

요간지(陽願寺) 불자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는 법열스님.
 
이미 세계는 지구촌의 시대가 된지 오래다. 한국불교계도 시야를 전 세계로 넓혀서 우리 교포가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의 불자들을 위한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교육과 수행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북해도 정토종의 시소우지(慈照寺)의 외관이나 절 분위기가 한국사찰과 유사점이 많기 때문에 신자 수나 납골당 이용객의 약 10% 이상이 한국교포이다. 한국교포들은 비록 일본에 살지만 죽을 때는 뼈라도 고국에 묻히고 싶다고 늘 이야기한다. 그러나 돌아가지 못하고 고향의 절과 비슷한 시소우지를 이용한다는 주지스님의 말을 들었을 때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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