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제작된 석조보살상은 특이하게 반가좌하고 있어

지장시왕도와 신중도는 각각 1941년과 1943년에 청암스님이 조성
수월관음도, 독성도, 범종과 ‘관음전’현판·‘老山老水’글씨 등도 ‘눈길’


울주 보덕사

지장시왕도내 지장보살(부분). 1941년 청암스님이 제작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 가지산(迦智山) 기슭에 위치한 보덕사(報德寺, 주지 법선스님)는 석남사 동인암(東仁菴)을 계승한 사찰이다. 동인암의 연혁은 문헌기록으로 전하지 않지만, 신라 신문왕(神文王)의 딸 경순공주(敬順公主)가 불공을 드려 병을 고친 곳이라 왕명으로 암자를 창건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이 암자는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기간 중에 소실되었다가 전쟁이 끝나고 칠성각과 요사(寮舍)가 재건(再建)되었다고 한다. 1807년에 석봉(石峯)대사가 중수(重修)한 후, 비구니 법순의 상좌(上佐)인 송덕스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929년에 정전(正殿)을 재건하고, 1930년에 칠성각을 중수(重修), 1934년에는 요사, 1935년에 관음전을 새로 건립하였다.

1954년부터 1962년까지 전개된 불교법난 과정에서 석남사와 23년간의 소유권 분쟁을 겪다가 1980년에 석남사에 패소한 후 현 위치에 대지 500여 평을 마련해 사찰을 옮기고 대웅전과 요사를 새로 건립하면서 지금의 명칭인 ‘보덕사’로 바꾸었다.
그 뒤 자행스님이 3,000평을 매입하여 설법전, 대웅전, 종각 불사를 추진했고, 1989년 관음전과 칠성각, 송덕스님 사리부도 등을 동인암에서 옮겨와 복원하였다. 2005년 10월 5일 태고종 최초의 비구니 강원(講院)을 개설하고, 삼성각과 설법전 하층을 증축하면서 신오스님 부도를 건립하였다. 지난해 법선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울주 지역의 포교 활동에 힘쓰고 있다.


불교조각
 
    석조보살반가상
 
관음전 수미단 내 목조감실에 봉안된 석조보살상은 조선후기 제작됐다.
관음전 수미단 내 목조감실에 봉안된 석조보살상(石造菩薩像)은 높이가 51.7㎝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중소형 보살상이다. 이 보살상은 특이하게 바위에 앉아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은 반가좌를 하고 있다.

보살상은 신체에 비하여 머리가 큰 편이고, 머리를 앞으로 약간 내밀고 있다. 머리에는 꽃무늬[花文]가 빽빽하게 조각된 높은 보관을 쓰고, 귀를 따라 수직으로 내려온 한 갈래 머리카락이 귀 중간을 지나서 귀 뒤쪽에 늘어진 머리카락과 자연스럽게 꼬여 어깨 위에서 원을 그리며 세 가닥이 늘어져 있다.

타원형 얼굴에 가늘게 뜬 긴 눈, 곧게 뻗은 뾰족한 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을 표현하였다. 불상의 재료가 돌이라서 양 손은 무릎 위에 손가락을 편 상태로 붙이고 있다.

양 어깨에 걸친 천의는 어깨에서 펼쳐져 팔뚝 중간까지 늘어지고, 그 밑으로 흘러내린 천의자락이 팔과 반가좌한 다리 사이로 흘러내렸다.
보살상의 가슴에는 승각기를 대각선으로 접고 끈으로 묶어 명치부분에 매듭이 보이고, 그 밑으로 두 가닥의 끈이 늘어져 있다. 하반신에 입은 치마 자락은 반가좌한 다리 위에 흘러내렸다.

이 석조보살좌상은 경북 경주지역에서 산출되는 경주석이라는 불석(佛石)을 사용해 만든 작품이다. 반가좌한 자세와 착의법이 1738년에 중수된 밀양 표충사 유물관 소장 석조지장보살좌상과 유사하여 17세기 후반 승호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 불교회화
(1) 지장시왕도
대웅전에 봉안된 범종은 일본종(日本鐘) 형태를 하고 있다.
진영각에 걸려있는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는 132㎝×160㎝ 크기로, 화면 중앙에 높은 연화대좌 위에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그려져 있다, 다섯 명의 대왕이 서로 이야기 하듯이 중앙으로 약간 비스듬히 서 있어 양쪽에 도열한 느낌이다. 그 위로 판관, 사자, 동자 등의 명부 권속이 배치되어 있다. 

지장보살은 원형의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두르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오른손을 들어 엄지와 중지를 손바닥 쪽으로 구부리고, 왼손에 둥근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 얼굴형은 이마 부분이 다소 넓고 턱 아래로 좁아지는 형태이다. 머리는 성문비구형으로 머리카락을 파랑색으로 칠하여 제작 시기의 추정이 가능하다. 지장보살의 신체는 어깨선이 완만한 편이고, 대의자락이 오른쪽 어깨에 완만하게 걸친 후,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있다.

대의 안쪽에 편삼을 걸쳐 배 부분에서 대의자락과 겹쳐 있다. 가슴 아래 깃에 꽃무늬가 그려진 승각기를 입고 붉은 색의 띠를 묶었다. 지장보살의 신광 하단에 궤를 든 무독귀왕과 석장을 든 도명존자가 지장보살을 향하여 비스듬히 서있다.

시왕상 위에는 경책을 든 판관, 과일을 공양하는 동자 등이 좌우로 대칭하여 서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듯이 얼굴을 돌려 마주보고 있어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동일한 형태의 착의와 달리 다양한 관모를 쓰고 있다. 전체적으로 설채법은 적색(赤色)과 청색(靑色)을 주로 쓰고, 녹색과 백색을 부분적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색의 사용은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불화에서 볼 수 있지만, 과도한 원색과 단순한 문양을 사용하여 2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화면 하단 중앙 적지란(赤地欄)에 쓰여 있는 화기(畵記)는 “佛紀二千九百六十八年」月日」蔚山郡上北面石南寺東仁庵」地藏幀畵 一軸奉安于」證明比丘 寶明堂」持殿比丘 影松堂」誦呪 東根」茶角比丘 信悟」供司比丘 月松」金魚比丘 淸庵堂」化主比丘 頌德」施主」淸信士 盧炳轍”이라 적혀있어 1941년 울산군 상북면 석남사 동인암에 봉안하기 위하여 청암(淸庵)이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청암은 운조(雲照, 1894~1943)스님의 호(號)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불화승이다. 그가 제작에 참여한 불화는 1894년 수화승 보암긍법과 강원 평창 상원사 중대 영산회상도를 비롯하여 1918년에 수화승 벽월창오 등과 전남 순천 선암사 응진당 십육나한도 등이 남아 있다.

(2) 신중도
보응당(普應堂) 문성스님이 제작한 독성도.
대웅전 신중단에 봉안돼 있는 신중도는 120㎝×135㎝의 크기로, 중앙에 위태천(韋태天)을 중심으로 좌우 3단으로 나누어 존상들을 배치하였다. 상단에는 위태천 두광 좌우에 생황(笙篁)과 횡적(橫笛)을 연주하는 동자를, 중단에는 제석천과 범천 및 일월천자(日月天子)를, 하단에는 좌우에 2구의 신장상을 그렸다. 신중도는 존상의 크기에 차이가 나서 위계(位階)를 반영하였다.

날개깃이 붙어있는 투구를 쓴 위태천은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코에 비해 눈과 입이 작고, 전신에 갑옷을 입고 양손으로 무기를 쥐고 있다. 다양한 투구를 쓴 4구의 신장 얼굴에는 약간의 음영(陰影)이 들어가 있고, 신체비례와 이목구비의 형태 등에서 20세기 중반에 제작된 불화 표현기법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설채법은 적색을 위주로 청색과 녹색을 부분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인물의 배치와 자세, 옷주름 처리, 공간 처리 등은 조선말기 신중도보다 간략화돼 단순화 되었다.

화면 하단 중앙 적지란(赤地欄)에 쓰여 있는 화기(畵記)는 “蔚山郡伽智山石南寺東仁庵」神將幀畵一軸奉安于」會主比丘 寶月」證明比丘 友雲」持殿比丘 影松」誦呪比丘 信悟」茶角比丘 斗祚」供司比丘 漢大」金魚比丘 淸庵」化主比丘 尼頌德」施主」東萊郡龜浦面龜浦里」淸信女洪長順」佛紀二千九百七十年元月日」釜山市東大新洞」鄭肯模”이라 적혀 있어 1943년 석남사 동인암에 조성하기 위해 불화승 청암스님이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3) 수월관음도
대웅전 신중단에 봉안돼 있는 신중도.
관음전 후불벽화로 걸려 있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119㎝×130㎝의 크기다. 화면 중앙에 커다란 원형을 배경으로 내부 중앙에 관음보살이 앉아있고, 좌우에 정병과 소나무를, 후면에 중첩되어 있는 산을 배치하였다. 관음보살의 좌우에는 용왕(龍王)과 선재동자(善財童子)를 큼지막하게 그렸고, 모서리에는 뭉게구름을 빽빽하게 그려 넣었다. 

관음보살은 원형의 녹색 두광(頭光)을 두르고, 정면을 향하여 자연스러운 자세로 연화좌위에 앉아 있다. 보관에는 화불(化佛)을 중심으로 화려한 장식을 배치하였고, 얼굴 표정은 근엄하다. 머리부터 하반신까지 하얀 옷[白衣]를 걸치고, 가슴에 꽃무늬 장식이 매달린 목걸이와 승각기를 묶은 붉은 색 끈이 늘어져 있다. 양쪽 어깨에 자연스럽게 걸친 백의자락은 복부에서 겹쳐져 앉아있는 하반신을 덮고 있다. 백의 안쪽에는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져 있는 치마를 입고 있다. 보살상의 뒤에는 주전자 형태의 정병(淨甁)이 있고, 병에는 한 그루의 버드나무가 꽂혀 있다. 향우측에 대나무를 대신하여 소나무를 그려 넣은 것이 특징이다.

화면 하단 중앙 적지란(赤地欄)에 쓰여 있는 화기(畵記)는 “緣化秩」證明 鏡峰靖錫」住持 寶月正律」持殿 惺月漢祚」誦呪 友月孟道」供司 信悟」金魚 月洲德文」化主 頌德 …… 佛紀二九八一年甲午」六月十四日」觀音菩薩幀畵」一軸」奉安于」蔚山郡伽智山」石南寺東仁庵”으로 적혀있어 1954년 석남사 동인암에 봉안하기 위해 월주덕문 스님이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월주덕문 스님은 조선후기 불화승의 맥을 이은 작가로, 경상도 지역 불화의 맥을 계승한 인물이다.
 
요사에 걸려있는 취산(鷲山)이 쓴 글씨‘老山老水’

(4) 독성도
칠성각에 봉안된 독성도는 90㎝×64㎝ 크기로, 화면의 중앙에는 바위 모서리 뒤에 앉아 양손을 바위에 얹은 자세의 독성(獨聖)이 묘사돼 있다. 독성은 짧은 수염이 난 노인으로, 얼굴은 역삼각형이고 녹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쳤다.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맞대고, 왼손에 목이 긴 병을 살포시 쥐고 있다. 그 주변에 커다란 소나무와 폭포 등을 표현하여 독성이 거주하는 천태산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전체적인 색감은 황토색이 주류를 이루고, 청색과 적색 등이 부분적으로 사용하였다.

화면(畵面) 아래 좌우에 마련된 적지란(赤地欄) 가운데 향우측에 화기(畵記)가 “七星幀佛事時同」爲造成奉安于同處」緣化所名啣已著」于七星山王兩幀故煩」不再記然出草則」比丘 文性」化主 比丘尼 義永」施主秩”로 적혀 있어 조성 시기와 봉안 사찰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문성스님이 독성도의 초안을 그렸고 칠성도와 같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화를 그린 문성(文性) 스님은 호가 ‘보응당(普應堂)’으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에 활동한 대표적인 불화승이다. 스님이 그린 대표적인 불화는 1901년에 고창 선운사 아미타후불도, 1905년에 부산 범어사 팔상전과 나한전 영산회상도, 1917년 충북 보은 법주사 대웅보전 비로자나후불도 등이다.

◆ 불교공예품
    범종
대웅전에 봉안된 높이 59㎝의 범종은 용뉴가 쌍룡(雙龍)이고, 종신 상단 유곽 내 100여개 이상의 유두가 돌출되어 있으며, 종신에 구획선이 십자형으로 있다. 이 범종은 한국종(韓國鐘)과 달리 일본종(日本鐘)의 형태를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일본 교토와 동경 등에서 대량 생산된 값싼 범종이 국내로 유입되다가 1930년대에는 국내에서도 동일한 형태의 범종을 만드는 공장이 운영되었다. 종신에 새겨진 명문은 음각 글씨를 작은 정으로 쪼아 새긴 조탁(彫琢) 방법으로 적혀 있는데, 그 내용은 “統營邑貞梁里」癸巳生 林徹圭」壬寅生 朴氏優曇華」戊寅生 林鍾生」安靜寺」獅子庵”이라 통영 안정사 사자암에 봉안하였던 범종임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관음전에 걸린 현판, 요사에 취산(鷲山)이 비단에 쓴 글씨‘노산노수(老山老水)’, 사찰 입구에 1968년에 제작된 가지산동인암사적비문(迦智山東仁菴寺蹟碑文) 등의 성보물이 남아있다.


(문학박사,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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