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방일정진의 발원을 하다
(不放逸精進)


스리랑카 최대 축제인 ‘웨삭포야데이(Wesak Full Moon Poya Day)’를 맞아 콜롬보에 있는 ‘사해사’라는 한국 절에서 간단한 봉축법요식을 봉행했다.

우리나라의 음력 4월 보름에 해당하는 웨삭포야데이는 부처님의 탄신과 성도, 그리고 열반을 의미하는 스리랑카 최대의 축제일이다.

이때는 약 열흘 전부터 거리 곳곳마다 등(燈)을 판매하는 곳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등을 사서 집에 걸기도 하고 절에 가져가기도 한다. 또한 이 축제기간에는 불기(佛旗)가 좁은 골목부터 큰 도로까지 장식 되어 축제 분위기를 한껏 북돋운다.

축제행사는 각 사찰에서 자체적으로 봉행하며 콜롬보를 대표하는 사찰중의 하나인 ‘강가라마’사원 주위가 최고의 명소로 꼽힌다. ‘강가라마’사원 옆엔 호수가 있고, 호수 안에 부처님을 모신 작고 아름다운 전각(sima :‘시마’라고 읽으며 한역(漢譯)으로 결계(結界), 계단(戒壇)을 의미)이 있어 늘 관광객들로 붐빈다.

강가라마 사원과 콜롬보 시내는 축제를 보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호수 주변 뿐 아니라 콜롬보 시내의 주요 건물과 나무들은 색색의 예쁜 전구로 장식되며 각 개인이나 단체에서 직접 제작한 화려한 등(燈)과 조형물들도 여기저기 전시되어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호수 주위를 비롯한 콜롬보 시내는 이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하여 스리랑카 전역에서 몰려 든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 그리고 약 3일 정도 거리 곳곳에는 무료로 밥과 아이스크림 그리고 음료수 등을 제공하는데 이 곳 또한 장사진을 이룬다.

이렇게 한국보다 일주일 정도 늦은 부처님의 탄신축제를 보며 부처님의 태어나심과 성불하심, 당신께서 한평생 하셨던 포교에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바치는 것이다. 부처님을 닮아가는 게으르지 않은 수행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주법계의 만 중생들이 참으로 행복하길 발원해 본다.

사실 게으르지 않기를 발원한 것은 최근에 팔리어 문법과 <맛지마니까야(Majjhima Nikaya)>수업을 하면서 나 자신이 도태 된 듯한 느낌과 더불어 적잖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앙승가대학교 역경학과 재학 시절에 범어와 팔리어 수업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강했다. 사실 범어나 팔리어가 생소한 외국어 영역이다 보니 처음엔 호기심으로 덤벼들었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학인스님들이 부지기수였다.

어떤 학기는 수업을 위한 기본 인원이 모자라 수업이 폐강 위기에 몰린 적도 있었으며, 어떻게든 수업을 하고자 하는 욕심에 억지로 인원을 섭외하여 폐강을 막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학부 4년을 범어, 팔리어 공부를 했고 어떤 날은 단어 하나가 해석이 되지 않아 밤을 새며 그 단어와 씨름한 날도 있었다.

그 결과 나는 학과 수석을 거의 놓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이때 나의 마음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팔리어 문법과 <맛지마니까야> 수업을 하다 보니 내가 가진 팔리어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이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조족지혈(鳥足之血)’이 지금 내 상황을 표현하는 꼭 맞는 말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보다 조금 더 분발하고자 ‘불방일정진(不放逸精進)’의 발원을 하게 되었다.
팔리어 문법과 <맛지마니까야> 개인교습은 나에게 중요한 수업이었다. 수업에 동참하는 나와 몇 명의 스님은 보디스님의 <맛지마니까> 영역본(英譯本)을 번역하고 팔리어 원전(原典)과 대조하는 작업을 거쳐 초기불교의 사상적인 면과 논리적인 면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경전의 아름다운 문장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우리를 지도하는 선생님이 팔리어와 영어를 비교 해 주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도 나의 몫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여기서 팔리어 문법과 <맛지마니까야>를 가르치는 선생님 소개를 잠시 하자면, 거의 20년 정도 스리랑카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한국인 여성으로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켈라니야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스리랑카의 여러 대학에서 팔리어 강의를 했다.

지금은 페라데니야대학교에서 팔리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스리랑카식의 팔리어 문법은 물론이고 단어 하나하나를 세밀히 분석하는 미얀마식의 문법까지 꿰고 있어 웬만한 팔리어 경전은 사전 없이 그 자리에서 해석을 하는 실력의 소유자이다.

얼핏 생각하면 별로 대단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지만 팔리어의 고장이라고 자부하는 이곳 스리랑카에서 동진출가 한 스리랑카스님이나 기본적으로 팔리어에 익숙한 여러 남방불교 국가의 스님들을 대상으로 팔리어 강의를 영어로 하면서 모두가 인정하는 강사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팔리어 선생님을 만난 것은 초기불교를 지도해 주는 사나트선생님과 마찬가지로 나에겐 큰 행운이다. 이런 선생님들과 공부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알 수 있고 또 그분들의 도움으로 부족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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