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타법 제 20조는 종종판매계(種種販賣戒)이다. 이는 비구가 소지하고 있는 물건을 매매하거나 교환하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계율 제정의 인연담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의 제자 중 우빠난다 장로는 손재주가 뛰어나 낡은 헝겊으로도 보기 좋은 겉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하루는 값비싼 옷을 걸치고 있던 한 유행자가 우빠난다 장로의 겉옷을 보고 자신의 옷과 교환할 것을 제시하였고 우빠난다 장로는 이에 응해 서로 옷을 바꾸어 입었다. 그러나 나중에 우빠난다 장로의 옷이 누더기 헝겊으로 지어진 것을 안 유행자는 다시 옷을 교환하려 했지만 우빠난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시골집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독대 위에 정화수 한 그릇 올려놓고 시골집 어머니들은 정성을 다해 빌고 빌었다. 그 정화수 그릇이 불교식으로 말하면 불상이다. 우리 산뿐만 아니라 명산 꼭대기 인근 바위에는 알터가 있다. 바위에 구멍을 내서 그곳에 물 또는 동물의 피를 제물로 올리고 기도를 했다. 불교 포교 이전의 흔적들이다. 그곳에 불상이 들어선 곳이 지금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이다. 기원전 5세기와 기원후 5세기 천년 동안 이 지역은 로마, 그리스, 인도, 중국을 소통시키는 요충지대였다. 때문
반면 청허와 동시대 인물로 동문수학한 부휴선수(浮休善修, 1543∼1615)는 청매인오가 꼽은 5대성사(벽계정심, 벽송지엄, 부용영관, 청허휴정, 부휴선수)의 반열에 나란히 하고 있는 것도 당시의 그의 법 지위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부휴는 우수어린 이별풍의 선시를 잘 쓰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임종게는 득도회향의 시간을 맞아 별리(別離)가 애초 있을 수 없는 경지로서, 담담한 한 폭의 선화처럼 펼쳐지고 있다.일흔 세 해 허깨비 바다에서 노닐다가오늘 아침 껍질벗고 처음으로 돌아가네본성은 확연하여 걸릴 것이 없나니여기 어찌 깨달음과
곱게 늙은 절집은 애인 같다.선암사가 그렇다.보고 또 봐도 다시 보고 싶은 절.무우전 돌담 사이 겨울앓이를 하고마른가지에 꽃을 피운선암사 연분홍빛 매화들고매(古梅)의 고매한 향이세상만리 퍼져나간다.곱게 늙은 절집 풍경소리에원통전 담장을 지키는관세음보살님의 매향도세상 가득 퍼져나간다.정호승 시인은 말했다.“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고.그래, 나도 오늘 선암사에 간다.선암사에 가 매화꽃과 매화향에오체를 흠뻑 적셔본다.-전 문화재청 헤리티지 사진기자
두 가지 진참회란, 삼귀의와 오계를 지키겠다는 맹세입니다. 오계를 지킨다는 것은 악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오계를 잘 지켜야만 삼귀의를 잘 실천할 수 있습니다. 삼귀의라는 실천은 선처에 태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삼매와 통찰지를 체험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마타 명상을 하여 삼매 체험을 하는 것이고, 삼매의 힘을 바탕으로 위빳사나를 함으로써 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계정혜(戒定慧)라고 합니다.계(戒)를 지키지 않고는 삼매〔定〕에 드는 것이 아예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초선 정도의 삼매력
어느 도편수의 밝은 눈썰미인가그 먼 옛날 목공의 대팻날 끝에서내 젊은 날의 각질이대팻밥처럼 벗겨지고 있었네내 젊은 날의 눈물이허물을 벗고 있었네.국화였네연꽃이었네모란이었네.꽃이 되기엔 너무 끓는 젊음이었지만너무 단단한 각질이었지만그것은 분명 고색창연한내 젊은 날의 푸름이었네눈물이었네.내 젊은 날의푸른 각질들이 입적하면서 남기고 간흔적, 흔적, 흔적들,꽃살 흔적빗꽃살 흔적솟을빗꽃살 흔적.어긋남과 비틀림과 꼬임과 음양의그 아름다운 법칙들문양(紋樣)의 그 깊은 고전(古典)들이용마루를 타고하늘로 치솟고 있었네새로,새[鳥]로, 날아오르고 있
앞의 시는, 시제처럼 김윤식이 경운의 환갑(1912년) 기념시에 차운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적어도 1912년 뒤인 김윤식이 만년에 지은 것이다. 한편, 시적 문맥과 경운의 생애로 보아 그가 1915년 이후 7년간 서울 각황사에서 주석하던 시기 김윤식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시기의 어느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는 환갑에 이른 경운의 고승다운 면모를 표현한 시라고 하겠다. 제 1연은 그의 고승으로서의 탈속적 면모를 우의하여 표현한 것이다. 지방의 기관이나 명사임을 빙자하여 산문에 드나드는 세속인들이 오게 되면 실질
간다라 지역과 간다라 불교는 오늘날 한국불교의 시원과 같은 곳이다. 절에 가면 우리가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불상과 불경이 간다라 지역에서 처음 전래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유래한 그 불상들이 시대에 따라, 사부대중의 발원에 따라 유구한 불교사에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면서 한국 불교사에 한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불교사에 불상의 진원지인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인 소위 간다라 지역의 역사와 불교 유래를 되돌아보고 어떤 경로를 통해 한국불교에 전파됐는지가 궁금증으로 남는다. 이를 알아보는 것 또한 미래 불상을 발원하는
사타법 제 18조와 제 19조는 금, 은, 금전 등과 연관되어 제정된 조항이다. 예나 지금이나, 출가자나 재가자나 할 것 없이 화폐적인 가치가 부여되는 것들에 대한 욕망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세속적 욕망을 멀리하고자 하는 수행자들도 있지만…. 오늘 소개하는 이 조항들은 부처님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시고 나서 약 100년 후 불교 교단의 근본분열을 야기시키는 핵심 쟁점이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뉘는 근본분열은 제 2결집(혹은 700결집)에서 비롯되었다. 아난다 존자의 제자였던 ‘야사’라는
-청허휴정의 임종게선가의 전형적인 임종게를 남긴 이는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이다. 휴정은 평남 안주 출신으로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으므로 서산대사(西山大師)로 불렸다. 그는 40대 후반에서 60대 후반에 이르는 동안 묘향산을 중심으로 제자들을 지도했는데, 1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73세 되던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하자 전국의 승려들에게 총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보내 승군(僧軍)을 모집했다. 임진왜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그는 제자 유정과 처영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
성스러운 곳에마음의 솟대를 세워본다.계급장처럼 뻗어있는 나뭇가지의 삶.한마디 말도 없이 하늘 끝에 앉아아버지의 꿈도,어머니의 꿈도,내 반쪽의 꿈도,내 아이들의 꿈도,솟대 위로 솟아 올라하늘 높이 날고 싶어 한다.날고 싶어도 날지 못해아직도 사바에 머물고 있는내 꿈의 파편들을 내려놓으면부처님처럼 나도 빈 마음이 될까.강화도 전등사 자락에 머물고 있는솟대의 춤을 따라나도 힘차게 날갯짓해 본다.-전 문화재청 헤리티지 사진기자
반면에 훈계의 잘못된 자세로 제시된 것은 첫째, ‘모욕을 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남의 잘못만 찾는 것은 금해야 한다는 점, 둘째, ‘이 사람은, 나에게 양칫물 등을 마련하여, 나에게 시중을 든다. 내가 그의 잘못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는 나를 돕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나에게 손해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부당함과 실책을 보더라도 그냥 넘어간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바로잡으며 훈계하는 사람’이 아니고, 수행자 모임에 ‘쓰레기를 뿌리는’ 사람이라고 지적하십니다.이것과 관련한 부처님의 고
멀리서도 우리가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그것이 직선이 아니라곡선이기 때문이다미소처럼 둥근 곡선의 앞소리가허공에 먼저 길을 내고 오면뒷소리가 금방 달려와둥글게앞소리를 슬쩍 밀어주고그 힘을 받은 앞소리가다시 허공에자꾸곡선의 둥근 소리 길을만들기 때문이다새롭게새롭게무상(無相)의 길을 만들기 때문이다세상이 항상밝고 넓고 환한 것은그 곡선이 있기 때문이다세상이 항상따스하고 부드럽고 깊은 것은그 무아(無我)의 그늘이 있기 때문이다그분의, 미소처럼,오늘도 새벽 예불시간을 알리는 범종소리가불갑사 도량을 열고 있다몽매(蒙昧)의 잠을 깨우고 있다미
출가 이후 불승으로서 살아온 백용성의 이력을 들어 수연을 축하하는 시다. 백용성의 불사, 곧 계율을 엄정하게 지키며 대장경 번역, 선학원에서의 선수행, 대각사에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도심포교 등의 불사를 하다가 이제 귀밑머리가 허옇게 된 ‘백용성스님’을 형상화한 시다. 백용성은 화자보다 나이가 적어도 이렇게 많은 불사를 이루어냈기에 노인과 청년들이 모두 그를 송축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구는 자신을 꾀꼬리새끼와 제비새끼에 비겼으니 화자의 겸사라 할 수 있다. 생일을 맞이한 이를 위해 축수시를 지었는데 오래 살게 된 것을 축하함 보
부처님께서 비구니 승가의 조직을 미루게 된 것은 당시 인도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위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승가는 재가자의 보시에 의해 유지되며 그 보시자의 대부분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경시하는 바라문 전통에 물들어 있었다. 인도에서 불교가 번성하던 시대에 여성을 죽인 살인죄에 대한 보상금은 그 신분에 따라 각각 가죽 자루, 활, 염소, 양을 주었던 점을 감안하면 여성을 정신적인 종교 지도자로 받아들이고 예경하는 것은 쉽게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고 여성의 출가는 남성 중심의 사회기반을 흔드는 일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런
금강경은 부처와 수보리의 일상대화이다. 경전의 내용은 늘 부처와 제자간 일상의 대화이고 믿음에 기반한 감정의 소통으로 지식 너머의 지혜가 오고가는 자리이다.하지만 오늘 이와 같은 가르침을 듣는 것은 2천여 년 전의 수보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이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에 보다 귀 기울여 경청하면서 대화 속에 담긴 지혜의 흐름을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그 흐름이 어디서부터 어디로 어떻게 흐르는지 그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부처님께서 금강경을 강의한 목적은 우리 모두를 구제하고 보살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금강경의 가르침은 우리들을 피안으
-허응보우의 임종게조선시대의 허응보우(虛應普雨 1515∼1565)는 그의 일생을 광대놀이에 비유하는 임종게를 남겨 눈길을 끈다.1530년 금강산 마하연암에 들어가 수도하다가, 명종의 어머니로 불심(佛心)이 깊은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신임을 얻어 서울에 살았던 보우는 1548년 봉은사 주지가 되었다. 보우는 선종과 교종을 부활시키는데 진력했다. 또한 승과를 부활시켰으며 도첩제를 다시 실시하는 등, 숭유억불 정책으로 탄압받던 불교의 부흥에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불교부흥은 문정왕후의 죽음으로 일시에 그치고 말았다. 보우 또한 유림의
보고픔이 사무쳤습니다.그리움이 사무쳤습니다.봄의 소리를 눈 속에서 들려주니얼굴에 홍기(紅氣)가 도는봄날살아가면서 느끼게 됩니다.말하지 않았는데도저리 곱게 피어나는꽃을 보면역시,빈 마음이 좋다는 걸.설중매(雪中梅)의 얼굴에빈 마음…그것은 어쩌면내 삶의완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형정숙(전 문화재청 헤리티지 사진기자)
겨울 운주사(雲住寺)에 갔었네 눈보라, 눈보라에 막혀 대웅전은 보이지 않고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한 돌미륵들만 벌판에 앉아 무념무상에 젖어 있었네강한 눈보라, 눈보라가 나의 뺨을 후려쳤지 얼어 죽지 않으려면 잠들지 말라고 눈사람이 된 돌미륵들 부시 같은 눈망울과 우레 같은 목소리로 염불을 외고 있었네얼마나 서 있었을까 눈을 떴을 때 밤하늘엔 별이 걸리고 돌미륵들 경(經) 읽는 소리 그때까지도 들리고 아직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내 심불(心佛)들 하얘진 벌판을 법당 삼아 야단법석(野壇法席)을 펼치고 있었네내가 선 자리에도 연등(燃燈) 같
수다원은 범부를 벗어난 성자입니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알아차림의 힘이 있고, 정견(正見, 바른 관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바른 생각은 정어(正語, 바른 말)로 이어집니다. 바른 말이란 거짓말을 절제하고, 중상모략을 절제하고, 욕설을 절제하고, 잡담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어(正語)는 아라한처럼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사악도에 떨어지지 않는 정도를 말합니다.수다원은 이미 사성제를 체험했기에 바른 관점이 섰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은 그러한 체험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사성제와 관련된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