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지팡이가
두드리기 전에는

등뼈처럼 길게
이어진
점자에 지나지 않았다.

지팡이가

 톡

 토

 톡


두드리자

점자는 마침내
길이 되었다.

안내견 없이도
갈 수 있는…….


【당선 소감】

이승애
이승애

 

내가 마음속에 기르는 것들
길가의 은행나무가 추위 속에 발을 동동거립니다

제가 경영하는 조은술세종(주) 양조장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툭, 하고 심장이 멈추는듯한 이 기쁨

시를 쓰면서도 동시에 목말라서 조금씩 다가서다 보니

내 마음속에는 꽃과 나무 하늘과 길들이 조금씩 자리를 차지하고, 사물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내 마음에 아이가 자리 잡아 태동을 시작하는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이의 눈으로 사물을 구별하는 법을 알았습니다

나무가 왜 겨울 내내 침묵하는지, 얼음 속에서 꽃눈을 감추고 애쓰는 풀꽃들의 이름을 조금씩 알게 되었지요

미진한 첫걸음에 선뜻 손 잡아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나무처럼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가족들과, 동시 지도를 해주시는 김규학선생님, 충북동시문학회 문우들과 선생님, 이 기쁨을 함께 합니다

이제 꽁꽁 언 은행나무의 발등에 낙엽이라도 덮어주고 와야겠습니다

아울러 한국불교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경상북도지사상 수기 대상
- 충북 도민백일장 장원
- 제14회 충북여성문학상 수상
- 제16회 동서문학상 동시부문수상
- 시집 《둥근방》

【동시 ‧ 동화 부문 심사평】

 

동심에 대한 치열한 인식이 작품의 개성과 깊이로 나타난다. 신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참신함이다. 이 또한 남다른 동심의 파악에서 비롯됨은 물론이다. 안일한 동심관이 안일한 작품을 생산한다.

<파도문 기와>는 사유의 깊이는 있지만 이를 언어화하는 과정에서 자꾸 어린이를 놓친다. “저 춤의 경전”과 같은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무거움이 아이의 발등 위로 가뿐 옮겨지길 바란다. 아무리 깊고 아름다운 의미를 품은 언어일지라도 그것이 먼저 어린이의 말(?)에 닿아 있지 않으면 작품으로부터 소외되는 건 정작 어린이 독자이기 때문이다.

<백설>은 자연현상에 대한 궁금증을 아이의 시선으로 잘 포착했다. 하지만 표현 방식이 전체적으로 설명에 너무 치우친 점은 아쉬웠다. 언어의 응축이 시적 긴장감으로 이어진다. 동시도 시의 한 갈래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작은 흠일지도 모르겠지만 제목 <백설>도 ‘눈’이나 ‘하얀 눈’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특히 아동문학에서 무분별한 한자어 사용은 경계해야 한다.

<점자블록>은 다른 응모작들에 비해 신선한 발상과 간결한 언어구사가 돋보였다. 시각장애인은 뒤로 숨기고 지팡이와 점자만을 전면에 내세워 존재의 관계성에 주목한 점이 특별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존재의 힘이 점자처럼 작품에 내재되어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는 지점이다. 다만 시의 전개가 단조로운 이미지에 의해 운용되고 있는 점은 시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었다.

끝으로 다음에 응모할 분들을 위해 한 가지 당부 드린다. 불교신문이라고 해서 원고에 꼭 불교적 내용을 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많은 분이 이점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부득이 이 말을 덧붙인다.

-유강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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