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강에 얼음이 얼 때
얼음은 일사불란하게 얼지 않는다
얼었다가 다시 무수한 조각으로 부서지길
몇 차례 반복한 다음에야
평평하고 두껍게 언다
단단한 것들은 경전(經典)의 고리처럼
파륵 파륵 넘겨지다가 다시 한 권으로 뭉친다
티베트 승려들의 논쟁엔 손뼉을 치는 주장이 있어
셀 수 없는 의견으로 나눠지고
다시 이어 붙는 합의
그런 일들의 끝에 큰 강은
하나의 얼음판으로 얼어붙는다
얇은 추위에 몇 겹의 추위가 달라붙고
쩡쩡 얼음 조각들의 합의가 밤을 울린 다음에야
흐름이 멈춰 서듯 얼어붙는다
그런 물도 추우면 저희끼리
쩡쩡 뭉치지만
분분한 의견의 투합이 겨울을 건너와
지탱했던 제 몸을 다시 풀면 봄이다
그러니 녹는 순서는 그저 얼음 밑
흐르는 속도에 맡겨두면 되는 일이다
햇살이 조각나는 일을 두고
나뭇가지들은 저의 일직(日直)인양 분분하지만
지상의 결빙이 풀려야 비로소
햇볕도 해동한다

【당선 소감】

 

윤계순
윤계순

 

당선 통보 전화기에 귀를 대고 화분에 물을 주었습니다. 오후 2시 햇살이 창문을 넘으려다 반짝 멈춰 섭니다. 유리창 온도가 피워 낸 동백 한 송이가 마치 장미꽃 한 다발 같았습니다. 겨울 다음엔 봄이라지만 나의 좌절과 설렘은 늘 겨울에 있었습니다. 봄은 그 고배의 여파를 받아내느라 힘겨웠습니다. 시는 마치 한여름 나무 그늘 같았습니다만 늦게 출발한 시 쓰기는 치열했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졸음과 자책 사이에서 시는 늘 겉돌았지만, 그동안 몇 번의 최종심 탈락은 오히려 당선의 기쁨을 연습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여름, 어머니를 찾아 미로 정원을 헤매시던 아버지가 어머니 곁으로 거처를 옮기셨습니다. 이제 양친은 부모님이라는 호칭으로만 남았습니다. 많이 보고 싶습니다. 기쁘게 내려다 보고 계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시를 핑계 삼아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제 시를 읽어주시고 소중한 기회를 주신 안도현, 손택수 선생님 감사합니다. 한국불교신문사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별다른 표현 없이도 힘이 되어주는 내 가족들, 양성규씨, 종화, 종원, 박홍희, 준우, 선우 고맙고 사랑해! 작은아들 종원아, 너는 행운아야, 그동안 고생했어. 오래도록 같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일을 함께 헤쳐온 나의 형제자매들,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돈독히 뭉쳐보자.

끝으로 같이 기뻐해 주는 문우들, 친구들, ‘사랑하나 시 한 줄’ 동인, 맨 처음 출발 시점이었던 대전시민대학‘시삶’의 안현심 선생님과 동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성은주 시인, 대전 문학관 수강 동기들 모두 고맙습니다.

-충남 청양군 장평 출생
-대전대학교 대학원(사회복지학 석사)
-2021년 공직문학상 수상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수상

【시 심사평】

 

안도현 시인(왼쪽)과 손택수 시인.
안도현 시인(왼쪽)과 손택수 시인.

 

불교신문이라고 해서 불교 소재나 공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강박을 과감히 떨쳐버려야 한다. 두 해째를 맞은 한국불교신춘문예 시부문의 첫인상을 공유하면서 심사위원들은 200여 명의 1,100편이 넘는 작품 중 예심을 통과한 김동임의 ‘꽃’ 외 4편, 조현미의 시조 ‘분꽃, 누이’ 외 4편, 윤계순의 시 ‘결빙’ 외 4편을 중심으로 최종 심의에 들어갔다.

우선 ‘꽃’은 상징계의 제도 언어에 대한 부정의 어법이 소박한 가운데도 신선하게 다가오는 소품이었으나 동봉한 단형 시편들의 편차가 극심하여 안정감을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시조 ‘분꽃, 누이’는 방직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식물적 상상력으로 옮겨오면서도 은유의 동일화 욕망을 저만치 여의면서 리듬과 형상과 뜻이 하나의 트라이앵글을 이룬 가편이었다. 형상과 뜻이 경직되지 않도록 시조의 리듬을 조직화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당선권을 다툴 만하였으나 역시 함께 읽은 ‘어떤 곡예’ 같은 작품의 기시감을 쉬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이미 기성의 시조들과 경쟁을 하고 있으리라 예측되는 이 시인이 돌파해나갈 세계의 기꺼운 파열을 기대하는 것으로 미련을 달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당선작 ‘결빙’은 불교 소재의 선입견을 극복하면서 재배치를 통해 오리려 낯설게 만드는 인식의 렌즈가 돋보였다. 결빙의 물리적 현상에서 손뼉 치는 논쟁과 합의의 동시성을 읽는 눈은 결빙과 해빙의 이분법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손쉬운 진술이나 설명이 아니라 제시된 이미지에 의해 역설적 사유의 공간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집중적인 관찰력과 성실한 묘사력, 뜻의 과잉 전달과 일방통행을 유연하게 만드는 시적 이미지의 힘이 크다고 하겠다.

당선자와 참여해준 모든 분들의 정진을 바란다. 아울러 한국불교신문의 지극한 노고와 보람이 보다 드넓은 지평 위에서 지속할 수 있도록 문학장 안팎의 관심 또한 증폭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심사위원 안도현ㆍ손택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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