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유철의 문학산책, 그리고 사회 엿보기】한국을 떠나는 사람들

2025-11-17     천유철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해외로 이주하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국적 상실 또는 해외이주 인구는 약 14만 명으로 집계된다. 이는 연평균 약 2만 8천 명이 한국을 떠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탈(脫)한국’ 현상은 특정 계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과학자, 이공계 석·박사급 인력부터 더 나은 사업 환경을 모색하는 자산가 및 사업가, 합당한 임금과 전문직 취업을 원하는 청년층 등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부채 회피나 병역 기피와 같은 부정적 동기를 제외하면, 이주자 대다수의 선택 기저에는 ‘더 잘 살고 싶다’는 열망이 자리한다. 그들은 평등한 교육 환경, 전문직 취업 기회, 사업 확장, 연봉 확대 등 현 사회 시스템이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성공과 성장의 기회를 해외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집단적 이탈 움직임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불평등과 결함을 드러낸다. 개개인의 성공 열망과 성장의 기대가 현 사회 시스템 내에서 충족되지 못하자 터전을 등지는 선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비극적 현실은 조선 후기 가사 ‘갑민가(甲民歌)’의 상황을 소환한다. 함경도 갑산 사람이 지은 이 작품은 척박한 땅에서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가혹한 수탈과 학정을 폭로한다. 여기에는 양반 가문이었음에도 도망간 친척의 군역을 남은 친족에게 물리는 족징(族徵)과 같은 부정부패를 감당하지 못해 온 가족이 고향을 떠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어져어져 저기 가는 저 사람아/ 네 행색 보아하니 군사 도망 네로고나/ 허리 위로 볼작시면 베적삼이 깃만 남고/ 허리 아래 굽어보니 헌 잠방이 노닥노닥/ 곱장할미 앞에 가고 전태발이 뒤에 간다/ 십 리 길을 하루 가니 몇 리 가서 엎쳐지리/ 내 고을 양반 사람 타도타관 옮겨 살면/ 천히 되기 예사거든 본토 군정 싫다 하고/ 자네 또한 도망하면 한 나라의 한 인심에/ 근본 숨겨 살려 한들 어데 간들 면할손가 … 이내 또한 갑민이라/ 이 땅에서 생장하니 이때 일을 모를 소냐/ 우리 조상 남중 양반 진사 급제 계속하여/ 금장 옥패 빗기 차고 시종신을 다니다가/ 남의 시기 참소 입어 전가사변 한 후에/ 극변방인 이 땅에서 칠팔 대를 살아오니/ 조상 덕에 하는 일이 읍중 구실 첫째로다/ 들어가면 좌수별감 나가서는 풍헌감관/ 유사장에 그치면 체면 보와 사양터니/ 애슬프다 내 시절의 원수인의 모해로서/ 군사 강졍 되단 말가 내 한 몸이 허러 나니/ 좌우전후 일가친척 차차충군 되거고야/ 누대봉사 이내 몸은 할일업시 매와 잇고/ 시름업슨 친족들은 자취업시 도망하고/ 여러 사람 모든 신역 내 한 몸의 모두 무니/ 한 몸 신역 삼냥오전 돈피 두 장 의법이라/ 열두 사람 업는 구실 합쳐 보면 사십육냥/ 해마다 맞춰 무니 석숭인들 당할소냐 … 북청 부사 뉘실런고 성명은 잠깐 잊었네/ 많은 군정 안보하고 백골 도망 원통함 풀고/ 각대 초관 여러 신역 대소민호 나눠 걷으니/ 많으면 닷 돈 푼수 적으면 서 돈이라/ 인읍 백성 이 말 듣고 남부여대 모여드니/ 군정 허오 없어지고 민호 점점 늘어 간다  - ‘갑민가’ 부분.

갑산 백성들의 이주는 생존을 위한 ‘도피’였다. 사회 시스템이 생존을 보장하지 못하자 백성들은 고향을 버리고 ‘화외민(化外民)’이 될지언정 살 길을 찾아 나섰다. 그들이 향한 북청은 군역의 원통함이 풀리고, 신역을 공평하게 나누어 걷게 하는 선정(善政)의 공간이었다.

오늘날 한국인의 해외 이주는 높은 교육 수준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삶의 질’과 ‘성장 기회’를 찾아 나선 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의 ‘도망’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헬조선’, ‘N포 세대’와 같은 신조어에서 엿볼 수 있듯, 성장 기회의 부재와 사회시스템에 대한 좌절감이 자리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즉, 이들의 터전 이탈은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이 낳은 비극적 결과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을 떠나는 이들에게 막연한 애국심만을 호소할 수는 없다. 대신, 우리 사회가 개인에게 공정한 기회, 안정적인 삶,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공하는 ‘선정’의 터전이 되고 있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