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락의 목탁소리】 ‘법화경 약초유품’과 ‘오이디푸스왕’

2025-11-17     김용락

 

세속적인 인연이나 관계 가운데 아무래도 고등학교 동창만큼 친밀하고 현실적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관계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마 10대 후반 한창 감수성이 맑고 예민하며 또 자의식과 사회의식에 막 눈을 뜨면서 이 세상의 주체인 나와 세계의 관계를 인식하고 확정하는 시기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자기 정체성에 눈을 뜰 때 가장 가까이 있는 대상이나 풍경, 타자의 세계관을 담지하고 있는 존재가 바로 고교 시절 옆 짝이나 같은 반 급우들과 같은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이때는 학교성적 등으로 친구 간에 약간의 경쟁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보다는 같은 공간의 동료로서 우정이나 연대감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우애나 배려, 사랑 같은 인격도야의 윤리적 덕목을 더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도 성장한 후 고교동창이라는 특별한 끈을 만들어 주는 한 정신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다닌 모교는 1978년 2월에 5백여 명이 졸업했는데 그 가운데 현재 110여 명 남짓한 동기들이 단톡방을 만들어 친교를 이어가고 있다. 다들 나이가 나이인지라 간혹 자식들의 혼사나 부모님의 부고가 단톡방에 공유되기도 하고, ‘좋은글’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선(善)한 내용의 문장들이 소통되기도 한다.
그제 고교동기 단톡방에 들어갔더니 한 친구가 ‘매일 받는 선물’이라는 글을 올렸다. 대충의 내용은 우리는 매일 하루 분량의 시간과 달란트와 건강을 선물 받는데 어떤 이는 잘 관리하여 꽃을 피우는 반면 어떤 이는 시들어 말려버리면서 불만과 원망만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본 한 친구가 그 글 밑에 딱 한 줄 “묘법연화경 약초유품 보삼”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불교 공부를 많이 한 고수(高手)의 일획이었다.

그 문자를 보고 나는 책장에서 《법화경》을 찾아 언젠가 읽었던 그 부분을 다시 읽어봤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약초유품’ 편에는 어리석은 중생의 비유인 선천적 장님과 큰 의사인 여래가 등장한다. 장님은 아름답고 추한 모습을 볼 수 없고, 태양도 달도 별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그에게는 이런 것들의 존재조차 없다. 그러나 눈 뜬 사람은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또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 장님은 명의의 도움으로 히말라야산에서 나는 네 가지 약초를 먹고 눈을 뜨게 된다. 그러나 곧 교만하여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러자 선인으로 변한 보살이 그의 자만을 꾸짖어 부처님의 정법으로 인도한다는 내용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수십 년 전 대학생 때 읽은 그리스 극작가 소포클레스(BC 497~406)의 비극 ‘오이디푸스왕’을 떠올렸다. 아버지를 살해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가 이웃나라 왕을 자신의 친부인 줄 모르고 죽이고 왕비를 아내로 삼는다. 말하자면 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것이다. 왕비는 ‘남편에게서 남편을, 자식에게서 자식이라는 이중 출산을 경험한’ 자신을 운명을 한탄하면서 목을 매 죽는다. 극 중간 부분에 오이디푸스가 어머니를 아내로 삼자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산천초목이 말라가고 염소의 젖에서 우유 대신 고름이 나오는 등 괴변이 이어진다. 이에 오이디푸스가 전국의 유명한 예언자들을 불러 모아 그 까닭을 묻는데, 한 장님 점쟁이가 오이디푸스를 향해 당신이 바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차지한 천하의 패륜아이기 때문에 나라가 이런 재앙에 처했다고 말한다. 분노한 오이디푸스는 눈먼 장님이 헛소리한다고 그를 쫓아버린다. 이때 그 장님 예언자는 ‘나는 비록 눈을 감고 있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당신은 눈을 뜨고 있지만 진실을 모른다’고 말하면서 사라진다.

‘약초유품’과 ‘오이디푸스왕’에 등장하는 장님은 둘 다 비유이다. 우리는 비록 두 눈을 뜨고는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리)를 알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약초유품에서 눈 뜬 사람도 자만을 버리고 부처님의 지혜를 얻어야 비로소 진리에 가 닿게 된다. ‘약초유품’과 같이 큰 명의를 만나거나, ‘오이디푸스왕’처럼 자기 눈을 바늘로 찌르고 죽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진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몸부림치는 오이디푸스의 운명과 비극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시인ㆍ전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