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의 이해와 감상】고행자의 진중한 모습 드러내
20. 양해의 출산석가도(出山釋迦圖)
‘깨달음’을 이룬 석가모니 부처님이 천천히 산속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우견편단의 붉은 가사에 합장하고 발은 맨발이지만, 눈빛은 단호하고 표정은 평온해 보인다. 산안개가 짙게 깔려 습윤한 기운이 감돌고 절벽 위에 을씨년스럽게 뻗어난 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떨고 있는 듯, 발아래 가시덤불은 얽히고설켜 날카롭고 억센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런 정경은 대각선으로 가파르게 드리워진 기암절벽 그리고 발밑에 불쑥 솟아오른 밋밋한 바위들과 조화를 이루며 화면에 생기를 불러오고 있다.
작가는 정교한 필치로 황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오랜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석가모니 부처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사를 표현한 의문선(衣紋線)은 힘이 넘치고 붓놀림이 아주 세련되어 있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눈은 살짝 내리떴으며, 얼굴은 야위고, 머리는 숱이 더부룩하고 길게 늘어졌다. 몸은 피골이 상접 할 정도로 아주 수척해 있지만, 풍성한 수염이 고행자의 진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떨고 있는 기색 없이 오히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처럼 맑고 고요한 자태는 오랜 고행 끝에 이제는 최상승의 경지에 이르러 아무 거리낌이 없음을 외부로 표출해 보는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표현은 이 그림의 작가 양해가 선승으로서의 ‘깨달음’의 경지를 체득하고 화가로서의 ‘예술적 창의성‘을 발현하여 이루어낸 결과이다. 이것이 바로 ’선과 예술의 결합‘이며, ’화선일치(畵禪一致)’의 경지이다.
양해는 이 그림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고행승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당시 성행한 선종 내부의 어떤 인물들에 대한 특정적 이미지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으나 거기에 양해의 예술적 상상력이 더해져 이처럼 의미깊고 전달력이 뛰어난 명작으로 출현하게 된 것이다. 필치와 구도의 특징으로 미루어 보아, 이 그림은 양해의 화풍이 이미 형성되고 난 후인 중년 말기에서 만년 초기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의문선(衣紋線)에 사용된 절로묘(折蘆描; 갈댓잎이 꺾인 듯한 성의 표현) 기법이 이미 형성되었으며. 나무의 윤곽 표현에서 정두서미(釘頭鼠尾; 선의 시작은 못 머리처럼 뭉쳐있고 끝은 쥐꼬리 모양으로 가늘고 몽당하게 그리는) 묘법의 특징을 띠고 있다. 필세(筆勢)가 강렬하고 날카로워 중년 화가의 에너지와 강인함으로 가득하다. 붓놀림이 간략하게 정돈되고 느슨하며 진솔한 표현은 만년의 용필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양해가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의 연령대를 어느 정도 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림 왼쪽 바위 면에 "어전도화양해(御前圖畫梁楷; 임금 앞에서 양해가 그리다)"라는 여섯 글자가 쓰여 있어 당시 궁중에서 그려진 그림임을 알 수 있다.
-동국대 명예교수ㆍ수묵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