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유철의 문학산책, 그리고 사회 엿보기】분단 80년, 다시 생각하는 통일
1945년 8월, 북위 38도선이 한반도를 관통하며 남북의 지리적 경계를 갈랐다. 그것은 해방의 기쁨을 반으로 쪼개고, 민족의 운명을 가른 ‘비극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분단의 80년 역사 속에서 38선을 경계로 한 이산가족들의 절규, 동족상잔의 상흔, 반세기 넘게 이어진 체제 대결의 불안감은 엄중한 대가로 새겨져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분단의 무게는 역설적으로 가벼워지고 있다. 최근 통일연구원이 발표한 ‘KINU 통일의식조사 2025’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성인 51%가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의 강화’, ‘남북 관계의 장기적 단절’, ‘국내 정치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자 분단 경험이 없는 젊은 세대에게 통일이 현실과 무관한 낡은 주제가 되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염원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산가족 문제마저 시간의 흐름에 의해 자연히 해결될 것으로 여기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분단의 아픔은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다. 가장 명백한 사례는 탈북민 문제이다. 고향을 떠나 남으로 왔지만, 남한 사회 정착 과정에서 언어, 문화, 정체성의 벽에 부딪히며 또다시 가족 및 뿌리와 단절되는 ‘현대판 이산’의 아픔에 직면한 것이다. 38선을 넘었을지라도 남북 간 이질감이라는 장벽은 그들 앞에 또 다른 ‘심리적 분계선’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현재진행형인 분단의 고통스러운 대가는 탈북 시인들의 절절한 고백 속에 담겨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오늘은/ 3월 12일/ 내 아버지 생신// 술잔을 붙들고/ 나는 흐느껴 운다/ 3월은 여기 있는데/ 12일은 북에 있어. - 장진성, ‘3월 12일’ 전문.
널 마지막으로 만난 곳은/ 부둣가의 어느 작은 전봇대의 아래/ 곧 탈북할 거라는 말을 꺼낼 수 없어/ 난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지// 그날따라 바람은 왜 그리고 차가운지/ 차라리 떠나는 대신/ 너와 함께 그대로 사라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지// 내일이면 여기 없을 거라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을 때에도/ 너무나 사랑하는 네 앞에서/ 태연하게 숨을 쉬는 일은/ 그야말로 가혹했어/ 영원히 함께하자던 청춘의 약속은/ 무심한 석양 아래서 오열하고/ 여전히 애틋한 너의 앞에서/ 나는 갈 길을 잃어버렸어. - 봉순이, ‘첫사랑’ 전문.
장진성의 시가 아버지의 생일마저 갈려 온전히 기릴 수 없는 ‘전통적 이산’의 서러움을 담는다면, 봉순이의 시는 사랑하는 이에게 이별을 고하지 못한 채 떠나야 했던 젊은 탈북민의 잔혹한 ‘현대적 이별’을 고발한다. 두 시는 분단의 아픔이 지리적 단절에 그치지 않고, 개인적이고 사랑스러운 관계마저 파괴하는 현대적인 대가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분단의 아픔이 이처럼 현재진행형의 대가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통일은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자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현실이 되었다.
이제 통일은 ‘민족’ 염원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현실적으로 실용적인 국가 전략이 되어야 한다. 통일은 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이 지급해야 할 분단 비용을 상쇄하고 경제적 시너지를 창출하는 투자가 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 급감 상황에서 북한의 젊은 인력과 미개발 자원은 한국 경제를 다시 뛰게 할 ‘마지막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또한, 통일은 북한의 핵 위협과 체제 대결로 만성화된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안보 비용’을 해소하고, 지정학적 불안정성을 제거하는 해법이기도 하다. 즉, 통일은 평화비용을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결정적 기회’이다.
분단 80주년. 우리는 분단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안일함에서 벗어나, 미래를 설계하는 능동적인 자세로 통일 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역사적 책임 앞에 서 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