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태고】대각 이뤄 대중을 안심입명에 이르게 하길 바랄 뿐
32회-소요산에서 백운암가를 읊다
풍문에는 동산 양개 스님의 모친이 아들을 그리워하다가 눈이 멀어서 정작 아들이 찾아왔을 때는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동산 양개 스님과 그 모친이 주고받은 편지를 읽고서 보우 스님은 부모님부터 안심입명(安心立命)에 이르게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고향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두 눈을 감고 걸어도 집에 찾아갈 수 있을 만큼 낯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떠나온 그 길 그대로였다. 보우 스님은 노란 씀바귀꽃이 귀향길을 반겨주는 것만 같았다.
집 앞에 도착하니 부는 바람에 끼익 끼익, 사립문이 흔들렸다. 아버지는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고, 어머니 혼자 방안에 두 눈을 감고 앉아서 염주를 굴리고 계셨다. 열린 문틈으로 어머니의 모습이 비쳤다. 인기척 소리에 놀란 듯 어머니가 일어서서 방문을 열었다.
“뉘시오?”
“접니다.”
어머니는 파르라니 삭발하고 승복을 입은 아들을 몰라봤다. 침침한 두 눈을 크게 뜨고서야 출가한 아들이 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어머니는 마당으로 뛰어나와 스님이 된 아들에게 삼배를 올렸다. 보우 스님도 어머니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맞절을 했다. 삼배를 마친 뒤 보우 스님은 어머니에게 다가가 어머니의 주름진 손을 어루만졌다. 소나무껍질처럼 갈라지고 옹이가 박힌 어머니의 손을 보자 보우 스님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머니, 제가 그간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머니는 보우 스님의 승복바지에 묻은 흙을 떨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이 어미는 이미 오래전에 아들을 잊었습니다. 그저 스님께서 대도를 이루시기만 기도했답니다. 이제 스님은 제 아들이 아니라 인천의 스승이십니다. 잠시만 방안에서 쉬고 계십시오. 제가 얼른 저녁상을 차려 드리겠습니다.”보우 스님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방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땅거미가 지면서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머지않아서 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보우 스님은 얼른 마당으로 뛰어나가 아버지에게 삼배를 올렸다. 아버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우두커니 마당에 서 있었다. 보우 스님이 만져보니 아버지의 손바닥은 어머니의 손바닥보다 더 거칠었다. 한 발치 앞에서 얼굴을 보고서야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봤다.
개다리소반에는 된장찌개와 조밥만이 올랐지만 보우 스님에게는 그 공양이 어떤 공양보다도 맛있었다. 어머니는 밥을 먹다가 말고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다. 보우 스님은 밥을 먹고 마당에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수많은 별이 모여서 은하수를 이루고 있었다. 하나의 물방울들이 모여서 대하(大河)를 이루는 것 같았다.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니 어머니가 이부자리를 깔고 있었다.
“먼 길 오느라 피곤하실 텐데 주무십시오.”
어머니는 계속해서 아들에게 경어를 썼다. 불자로서 갖추는 삼보에 대한 예경일 텐데도 보우 스님은 그런 어머니가 낯설기만 했다. 하지만 보우 스님은 말씀을 낮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마따나 이제 자신은 이 집의 아들이 아니라 고려의 승려, 나아가서는 달마대사의 선맥(禪脈)을 이어받을 법기(法機)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랜만에 본 아들에게 여러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출가자의 부모로서 아들이 대각(大覺)을 이뤄서 대중을 안심입명에 이르게 하길 바랄 뿐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보우 스님이 보란 듯이 관세음보살을 염호하는 염불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보우 스님은 부모님이 독실한 불자로서 살고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염불을 마친 뒤 부모님은 말없이 이부자리에 누우셨다.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았던 터라 보우 스님이 잠이 오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머니가 손바닥으로 보우 스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두 눈을 감고 누워 있어서 아들이 자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보우 스님은 자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보우 스님의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어머니가 흘리는 비원(悲願)의 눈물이었다.
이튿날 아침, 보우 스님은 부모님과 함께 공양을 든 뒤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올렸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아들이 다시 떠난다고 하니 말을 아꼈던 어머니가 아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어디로 가시렵니까?”
보우 스님은 맑게 웃은 뒤 대답했다.
“한동안은 부모님 사시는 곳에 가까이 있을 예정입니다. 멀지 않은 곳에 사나사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보우 스님의 대답을 듣고서 부모님은 한결 평온해진 표정이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떠나는 아들에게 말없이 합장 반배했다. 보우 스님이 보기에 그 무언(無言)의 작별인사야말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말후구(末後句)라고 할 수 있었다.
보우 스님은 사나사에서 부처님께서 마하 가섭 존자에게 전한 삼처전심(三處傳心)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나아가서는 1,700 공안의 참뜻이 무엇인지 참구(參究)했다. 심안(心眼)으로 보니 1,700 공안은 공통점이 있었다. 보우 스님이 보기에 모든 공안은 일종의 덫이었다. 유무(有無), 진망(眞妄), 선악(善惡), 미추(美醜) 등 양변에 빠져서는 그 덫을 풀 수 없었다. 그 덫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무애(無㝵)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었다.
보우 스님은 수행처를 옮기기 위해서 소요산(逍遙山)으로 향했다. 소요산은 비록 높지 않으나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자취가 깃들어 있는 명산이었다. 보우 스님은 소요산에서 그야말로 소요자족(逍遙自足)하며 지내며 몇 편의 게송을 남겼다.
소요산 위에 흰 구름은 뭉게뭉게
달을 벗 삼는구나.
때로는 맑은 바람이 지나가며
다른 산도 좋다고 일러주네.
흰 구름은 무심히 하늘에 가득 찼다가
화로 위 눈송이처럼 사라지네.
사방에 비 내리면 모두 젖듯이
세상의 모든 것이 기뻐하네.
찰나에 흰 구름이 산으로 돌아오니
산빛 변하고 물은 흐느끼네.
태고암은 예전처럼 안개 속에 있지 않고
구름 낀 험한 길에 이끼 끼어 미끄럽네.
이리 뒤뚱 저리 뒤뚱 섰다가 다시 가니
누가 내 시자이랴, 오직 지팡이뿐,
길이 다한 암자 문은 동쪽으로 열려 있고
주인과 나그네가 함께 모여 말 한마디 없네.
산은 말이 없고 물은 잔잔하니
석녀(石女)는 시끌벅적하고 목인(木人)은 혀를 차네.
서둘러 서쪽에서 오신 달마대사
육조에게 법을 전하니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하네.
가소롭구나, 고금 천하의 사람들이여
눈썹을 아끼지 않고 방할을 하는구나.
나는 어쩌다 요즘 사람이 되었을까?
춘하추동 호시절이어서
더우면 시냇가로, 추우면 불 찾아가고
한가히 흰 구름 끊고 한밤중에 좌선하네.
피곤하면 백운대에 한가로이 누우니
솔바람 쓸쓸하고 물소리 졸졸대네.
그대는 여기서 여생을 살면서
배고프면 나물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게나.
- 백운암가(白雲庵歌)
구름이 더 좋은 산이 많다고 알려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보우 스님은 소요산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았다. 그래서 보우 스님은 손님이 찾아와도 시비분별 없이 태평할 수 있었다. 보우 스님에게는 눕는 자리가 곧 누각이고, 나물 반찬이 곧 산해진미(山海珍味)였다. 이런 보우 스님이기에 임제선사의 할(喝)도, 덕산 선사의 방(捧)도 공부의 방편일 뿐 궁극적인 진리가 아님을 꼬집을 수 있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