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태고】전단원 토굴에서 정진한 후 마침내 활연대오

태고 30회 -의정 끝에 마지막 철문을 깨부수다

2025-09-29     유응오

보우 스님이 불각사에 읊은 오도송에서 고요함(靜)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를 의미했다. 보우 스님은 《원각경》을 통해 일체가 모두 멸하는 부동(不動)의 경계를 깨달았다. 여기서 움직임(動)이란 우주법계의 모든 현상을 뜻하지만, 현상의 이면에 내재된 진리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부동의 자세로 고요하게 있었다.
보우 스님은 게송에서 번뇌 망상이 사라진 경계를 서리에 의해 잡초들이 사라진 자리로, 초월적 세계의 실상이 드러난 경계를 활짝 핀 국화로 비유했다. 게송에 무(無) 자가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평소 무자화두를 참구하고 있음을 넌지시 알렸다.

보우 스님의 소문을 들은 채홍철이 불각사를 찾아왔다.
채홍철은 당대의 권세가로서 자호를 중암(中庵) 거사로 지을 만큼 불심이 깊었다. 그는 자신의 자택 북쪽에 전단원(栴檀園)을 지어서 선승들을 모셨다. 전단원의 별칭이 활인당(活人堂)인 이유는 채홍철이 시시때때로 전단원에 주석하는 스님들에게 약을 지어서 바쳤기 때문이었다.
보우 스님이 오솔길을 따라서 포행(匍行)을 하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주지스님이 낯선 처사와 함께 걸어왔다. 솔숲에 난 호젓한 길이어서 바닥에는 솔잎과 솔방울들이 널려 있었다. 채홍철은 보우 스님을 보자마자 삼배를 올렸다. 보우 스님은 삼배를 마치고 일어서서 합장 반배하는 채홍철에게 물었다.
“처사님은 이 빈승을 아시오?”
채홍철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알다마다요. 개성의 사람들이 스님의 법호를 염불처럼 외고 있습니다.”
“듣던 중 해괴한 소리요. 그러는 거사님은 누구요?”
“저는 채홍철이라고 합니다.”
보우 스님은 소문을 들어서 채홍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납승들의 수행처인 활인당을 지었다는 중암 거사로군요. 고려 전역의 사찰마다 거사님의 공덕을 찬탄한다고 들었소. 그건 그렇고 날 찾아온 이유가 뭐요?”
“스님께서 전단원으로 주석처를 옮기시면 어떨까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보우 스님은 가타부타 말없이 발길을 돌려서 요사채로 향했다. 영문도 모른 채 주지스님과 채홍철이 그 뒤를 따랐다. 며칠 전 보우 스님은 불각사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불각사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고이면 썩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운수는 구름처럼 물처럼 떠돌아야 했다. 요사채에 들어가 미리 싸뒀던 바랑을 짊어지고 나오자 주지 스님과 채홍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우 스님은 주지스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간 먹여주고 재워줘서 고맙소. 앞으로 주지스님은 사찰의 불각이 아닌 자신의 불각을 이루십시오.”
보우 스님은 사찰 살림에 매몰되어 자신의 깨달음을 등한시하는 주지스님을 에둘러 힐난했다. 이런 속내를 읽었는지 주지스님의 얼굴이 붉어졌다. 보우 스님은 시선을 채홍철에게 돌린 뒤 말을 이었다.
“전단원으로 떠나기 전에 중암 거사님께 약조 받을 게 있소.”
채홍철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무엇이든지 말씀하십시오. 스님.”
보우 스님은 손을 들어서 자신이 머물렀던 허름한 요사채를 가리켰다.
“이 빈도는 빈한한 팔자여서 이 요사채처럼 옹색한 곳이 좋습니다. 전단원에도 이 빈도에게 맞는 빈처(貧處)가 있습니까?”
전단원에는 허름한 요사채가 없었던 터라 채홍철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눈빛을 반짝였다.
“전단원 북쪽에 토굴이 하나 있습니다. 오래전 어느 고승께서 수행하셨던 곳이라고 합니다. 간신히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굴이어서 사람의 출입이 끊긴 지 오래입니다. 스님께서 공적(空寂)한 수행처를 원하시니 그 토굴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우 스님은 말없이 바랑을 짊어지고 걸음을 뗐다. 전단원은 불각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채홍철의 안내를 받으며 둘러보니 전단원은 사찰이라기보다는 궁궐에 가까웠다. 당우들은 물론이고 스님들의 요사채들도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웅전에 들어가 삼존불에 3배를 올린 뒤 보우 스님은 채홍철에게 토굴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바위 아래 있는 토굴은 한 사람이 간신히 누울 수 있을 만큼 작았다. 승냥이 떼가 머물다 간 듯 토굴 안에는 지린내가 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우 스님은 토굴 안으로 들어가 바랑을 한쪽에 놓은 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보우 스님은 토굴에서 하루 한 끼만 먹고 정진하여서 잠을 자거나 깨어 있거나 한결같은 경지에 이를 수는 있었으나, 여전히 무자 화두의 의정(疑情)만은 깨뜨릴 수는 없었다. 의정은 수행자가 자신의 본분을 알 때까지 의문을 놓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삽화=유영수 화백.

 

간화선의 의정은 깨달음에 이르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어떻게 그 철문을 열 것인가 의심하고 의심한 끝에 보우 스님은 38세 되던 해 정월 7일 새벽 오경에 드디어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
토굴을 나오자 햇빛이 부셔서 보우 스님은 차마 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은 채 보우 스님은 오도송을 읊었다.

趙州古佛老 坐斷千聖路
吹毛覿面提 通身無孔窺
狐兎絶潛踪 翻身師子露
打破牢關後 淸風吹太古

조주의 늙은이가 앉아서 천성의 길을 끊었다.
취모검을 얼굴에 들이댔으나 온몸에 빈틈이 없다.
여우와 토끼가 자취를 감추더니 몸을 바꾸어 사자가 뛰쳐나오고
철벽같은 관문 쳐부수니 맑은 바람이 태고에 불고 있다.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정진하다 죽겠다고 결심한 지 25년 만에 보우 스님은 취모검으로 모든 분별 망상을 끊어내고 무자 화두의 진의를 깨달았다. 보우 스님의 오도송에 조주 선사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자화두가 조주 선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조주 선사는 80세 때부터 조주성 동쪽 관음원에 주석했다. 평생 검약한 생활을 하여서 고불(古佛)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오도송에 등장하는 취모검은 《벽암록》의 파릉 선사의 문답에서 유래한다.
한 스님이 파릉 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취모검입니까?”
파릉 선사가 대답했다.
“산호의 가지 끝마다 달이 달려 있구나.”

취모검은 칼날 위에 올려놓은 털을 입김을 불어서 자를 수 있는 날카로운 칼을 일컫는다. 어떤 것이 취모검이냐는 질문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느냐는 의미이다. 파릉 선사의 대답은 그야말로 우문현답이라고 할 수 있다. 산호는 소중한 보배이다. 산호 가지마다 달이 달려 있다는 것은 만물에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바종(提婆宗)의 종지를 묻는 제자에게 파릉 선사는 “은 쟁반에 흰 눈을 가득 담았다.”고 대답했다. 은이나 흰 눈이나 희기는 마찬가지이다. 만물이 본래 자성으로 비롯된 것이니 법계의 두두물물(頭頭物物)은 본래 자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개에게 불성이 있냐는 질문에 조주 선사는 있다고 대답하기도 했고 없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유무라는 분별심을 여읜 자리에 불성(佛性)은 있었다. 모든 중생은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지만, 그 불성을 알고자 하면 먼저 마음의 실체를 알아야 했다. 마음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의정해야 했다.

환희심의 노래를 부른 뒤 보우 스님은 감았던 두 눈을 떴다. 여우와 토끼가 자취를 감추니 사자의 위엄은 절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불조(佛祖)의 세계를 지키는 철벽같은 관문을 쳐부수고 나니 맑은 바람이 태고(太古)에 불어오고 있었다. 태고는 아득히 먼 태초의 시간인 동시에 무량한 유전(流傳) 끝에 지금에 이른 시간이기도 했다.
햇빛이 쏟아지는 곳에 서서 보우 스님은 두 팔을 벌렸다. 태양의 기운을 온몸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보우 스님은 시공을 초월한 경계 속에 있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