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831호】공직자의 종교편향 근절돼야

2025-09-15     한국불교신문

최근 독립기념관 김형석 관장이 기관 내에서 특정 종교의 예배를 주도하고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민족정신을 기리고 순국선열들의 뜻을 기념하는 국가적 상징기관이다. 그곳에서 기관장이 특정 종교의식을 행하는 것은 공직자의 종교중립 의무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불교태고종은 이와 관련 성명을 내고 김형석 관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대변인 성천 스님 명의로 발표된 이 성명은 “광복 80주년인 지금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국가적 기념시설인 독립기념관을 특정 종교의 예배와 사적 모임 장소로 전용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깊은 분노를 표한다”며 “이는 독립선열들의 희생정신을 모욕하고, 국민의 성금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을 종교 편향의 장으로 전락시킨 중대한 일탈 행위다”고 지적했다.

우리 헌법은 국민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함과 동시에 국가 기관과 공직자는 종교로부터 중립적 지위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종교편향은 개인의 신앙문제를 넘어 국가의 공공성, 나아가 국민통합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직사회의 종교편향 행위는 과거부터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어 왔다. 특정 종교행사에 공직자가 공식적으로 참여하거나, 공공기관 내 예배와 기도회가 열리는 사례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공직자의 종교편향은 단순히 개인의 신앙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뒷받침을 등에 업은 종교의 영향력 행사이며, 종교간 형평성을 무너뜨리는 특권 부여로 이어진다. 특히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기관에서 특정 종교의식이 행해진다는 것은 종교를 갖지 않은 국민이나 다른 종교를 믿는 국민을 철저히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국가기관은 국민 전체의 기관이지, 특정종교의 전용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독립기념관은 항일 독립운동을 기리는 숭고한 역사 현장이다. 종교와 관계없이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선열들의 뜻을 기념하는 장소에서 특정 종교의 색채가 드리워진다면 이는 순국선열의 숭고한 뜻을 왜곡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한 투쟁은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그 정신은 종교를 초월한 민족 전체의 유산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 없으며, 정부와 관계 당국은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울러 이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우선 공직자의 종교중립 의무를 강화하는 법적 규정을 명확히 하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분명히 해야 한다. 기관장 인사 검증에서도 종교편향 행위 여부를 엄격히 따져야 할 것이다.

교육과 공직자 연수를 통해 종교중립의 원칙을 분명히 인식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국가기관이 종교적으로 중립을 지킬 때 비로소 국민 누구나 공정하게 대우받는다는 신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각자의 신앙 영역에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의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 종교의 자유는 다른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억압으로 변질된다. 공직자의 종교편향을 근절하는 것은 특정종교를 배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종교가 공평하게 존중받는 다원사회의 기초를 확립하는 길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국가와 공직자는 특정 종교의 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 자유의 본질이자, 국민통합의 출발점이다.

정부는 공지사회 전반에 만연한 종교편향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근본적인 제도적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국민 모두의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국가로서의 헌법 가치를 지켜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