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의 이해와 감상】흑백의 조화가 생기 더해

16. 목계의 송수팔가도(松樹八哥圖)

2025-09-15     김대열
목계, 송수팔가도, 지본, 수묵 78.5×39cm,일본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팔가조 한 마리가 노송의 굵은 줄기 위에 서서 머리를 가슴에 묻고 휴식하고 있는 장면이다. 머리와 등, 깃털, 꼬리 부분은 짙은 먹, 가슴과 배 부분은 옅은 먹으로 처리함으로써 먹색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지고 있다, 짙은 먹색의 머리는 깊이 숙여 옅은 먹색의 가슴에 반쯤 파묻혀 있으며 그사이 살짝 드러낸 흰 공백의 눈빛이 더욱 선명하다.

활달한 붓놀림의 비백(飛白) 효과로 자연스럽게 그려진 흰 깃털은 흑백의 조화를 이루며 생기를 더해 주고 있다. 노송의 줄기는 옅은 먹으로 양측 외곽 부분만을 단순하게 표피의 질감을 표현하고 가운데 부분은 공백으로 남겨둠으로써 원통형 줄기의 부피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거기에 이를 휘감고 있는 짙은 먹으로 그려진 넝쿨 한 줄기가 노송의 밋밋함을 환기 시키며 화면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아울러 빠른 붓놀림으로 거칠게 그려진 솔잎과 아래를 향해 매달린 솔방울은 그림 전체 공간구성의 조형 요소로 작용하며 시각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 그림은 어떤 계획이나 구상을 통해 그려진 것이 아니라 순간의 직관으로 얻어진 대상을 전광석화처럼 빠른 붓놀림으로 그려낸 것이다. 아마도 ‘깨달음의 순간’, ‘돈오의 찰라’ 와도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선적 체험을 통해서 만이 가능하다. 다시 말하자면 형상의 표현이 선의 경지에 이르러야 진정한 의미의 선화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선화의 기본 요소는 상대적으로 구상 표현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사의(寫意) 표현이 선화의 경계에 이르는 데는 구상에 의지하게 되지만 이는 다만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지 선의 경계와는 다르다. 목계가 그린 ‘팔가조’는 단순히 팔가조의 생태적, 외형적 특징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의 선열(禪悅) 표출하기 위한 대상으로 불려온 것일 뿐이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목계는 눈으로 볼 수 있게 그림으로 표현해낸 것이다. 선적 체험과 그림을 그리는 체험은 상통한다. 그래서 “선(禪)으로 그림을 그린다(이선유화 以禪喩畵)”. 라고 하는데, 선(禪)과 그림은 다 같이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선에서 말하는 ‘자성(自性)’은 화가는 이를 '예술의지' 라고 말한다. 이처럼 선(禪)과 미술은 모두 자신의 성정(性情)을 표현하는 것이다.

-동국대 명예교수ㆍ수묵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