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삶과 죽음을 잇는 자비의 길
불교의 예수재(豫修齋)는 윤달이라는 특별한 시기에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공덕을 쌓으며 내일의 행복을 기원하는 한국불교의 소중한 전통문화다.
‘예수’란 ‘미리 닦는다’는 뜻으로,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지은 죄업(罪業)을 참회하고, 공덕(功德)을 쌓기 위해 스스로 행하는 자기성찰의 의식이다. 죽은 뒤 남의 빚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산 몸으로 내가 주인이 되어 ‘금생(今生)의 마무리’와 ‘내세(來世)의 준비’를 동시에 이루는 자각적 수행이기도 하다. 불교는 삶과 죽음을 단절된 현상이 아니라 연기(緣起)의 흐름으로 본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업과 인연에 따라 이어지는 또 다른 시작이기에, 예수재는 죽음을 두렵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성찰하고 준비하는 지혜로운 실천이다.
특히, 이 의례가 윤달에 자주 봉행 되는 것은, 윤달을 ‘아무 탈 없는 때로 여긴 한국인의 세시풍습과 맞물려 있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공덕을 쌓는 특별한 계기를 만들어준다.
예수재는 흔히 ‘예수시왕생칠재(豫修十王生七齋)’의 줄임말로, 죽은 뒤 후손이 치르는 사십구재를 산 사람이 직접 미리 지내는 데서 유래한다. 본래는 8세기 말 중국 당나라에서 시작되었으나, 송나라 이후 중국에서는 점차 사라지고 일본에서도 흔적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시왕신앙과 결합하며 뿌리내렸고, 조선 중기 의식집 등장과 함께 체계를 갖췄다. 오늘날 예수재는 한국불교에서만 유일하게 전승되는, 산 자가 사후를 대비하는 소중한 전통이다. 의례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예수재는 단순히 ‘극락왕생’을 비는 행사가 아니라, 참회와 성찰, 계율 실천, 보시와 방생 등 다양한 불교 수행이 결합 된 자발적 실천이다. 경전을 읽고, 법회에 참석하며, 선행을 닦는 일상적 행동이 예수재의 핵심이다. 이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이 오늘도 윤회의 고리를 완성하고 있음을 깨닫고, 부지런히 선업(善業)을 쌓아 악업(惡業)을 녹이는 반복적·지속적 수행의 장이다. 불교는 스스로 쌓은 공덕이, 남이 대신 지어주는 공덕보다 훨씬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예수재는 바로 이런 자기 주도적 실천을 중시한다. 내가 지은 업을 되돌아보고, 참회와 정진, 나눔을 통해 업장을 소멸하는 주체가 바로 나 자신임을 일깨운다. 이 과정에서 불교의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윤회(輪廻) 사상이 체험적으로 내면화된다. 죽음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한 과정임을 받아들이게 하는 지혜이자 자비의 실천이다.
예수재는 개인의 구원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과 이웃, 나아가 모든 중생의 해탈과 안녕을 염원하는 대동(大同)의 마음을 일깨운다. 내가 떠난 뒤 남은 이들에게 고통을 남기지 않으려는 마음, 인연을 미리 정리하고 덕을 남기려는 발심은 바로 보살행(菩薩行), 즉 이타(利他)의 실천과 맞닿아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죽음을 극단적으로 외면하거나 금기시하는 반면, 불교는 죽음을 수행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예수재는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이자, 삶을 더욱 성찰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계기가 된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곧, 삶을 더욱 진실하게 살겠다는 다짐이다.
오늘날처럼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한 번쯤 멈추어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떠나고 싶은가?”그 물음 앞에 선 우리의 마음이, 바로 예수재가 시작되는 자리다.
-대구 기원정사 주지ㆍ불교문예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