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스님의 동화로 읽는 화엄경 이야기】부처님께서 입멸 100년 후 아소까왕 탄생 예언

㊽ 아소까왕과 무승군 장자

2025-07-28     민재 스님

출생성에 도착한 선재 동자와 보리는 무승군 장자를 친견하고 그의 말을 들었다.
“나는 누구도 나를 이길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무승군이라 한다. 한량없는 부처님을 뵈옵고 무진장을 얻었노라. 무진장이란 형상에 걸림이 없는 무진상 해탈을 말한다.”
보리는 삼배하며 엎드려 있다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진상 해탈요?”
무승군 장자가 말했다.

옛날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왕사성 기원정사에서 제자들을 데리고 아침 공양을 하러 성안으로 탁발을 나가셨는데 때마침 자야와 위자야는 소꿉장난하는 데 흙으로 곡식 창고를 만들고, 고무신에 흙을 담아 놀고 있었지. 그때 부처님과 제자들의 금빛 나는 거룩한 모습에 환희심이 생긴 아이들은 신발에 흙을 담아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부처님, 이것은 보릿가루로 만든 미숫가루예요. 물에 타서 맛있게 드세요.”
하면서 키가 작은 자야가 위자야의 목말을 타고, 부처님의 바루에 흙을 넣어 드렸다.
이에 부처님이 제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는 조금 전 그 아이가 기쁘게 보시한 흙을 내 방 한 귀퉁이에 발라라. 그 어린아이는 이 공덕으로 인해 내가 열반한 지 100년이 흐른 뒤에 한 나라의 국왕이 되어 ‘아소까’라는 이름의 왕으로 태어나 정의의 왕, 이상적인 제왕 즉 전륜성왕이 될 것이다. 또 나를 위해 나의 유골을 각지에 모시고, 8만 4천의 탑을 세워 사람들을 이롭게 할 것이다.”

무승군 장자가 말했다.
“이것이 첫 번째 무진상 해탈이야, 부처님께서는 상을 내지 않고 아이와 똑같은 마음으로 흙으로 만든 미숫가루를 기쁘게 공양받으셨으니까….”
보리가 말했다.
“아아, 상을 내지 않는다는 것, 잘난 척 안 하고 겸손한 것이요.”
선재 동자가 물었다.
“그럼 두 번째 무진상 해탈은요?”
그러자 무승군 장자가 눈을 지그시 감고 대답했다.
“두 번째는 조금 길어. 잘 들어보렴.”

아소까왕의 아버지는 빈두사라왕이고 할아버지는 짠드라굽타로 마우리야 왕국을 건설하면서 무자비한 정복 전쟁을 일삼았다. 아소카 역시 잔혹하고 비정한 모습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소까가 대여섯 살 때, 나뭇잎에서 푸르스름한 애벌레를 손으로 잡아 반반한 바위에 놓고 돌멩이로 짓이기거나, 철이 들면서는 새총으로 까마귀를 쏘아 죽이려고 했다. 당시 그의 스승이던 목갈리 스님이 말했다.
“작은 애벌레나 까마귀를 죽이는 일은 살생입니다. 왕자님께서는 새총을 지닌 것만으로 악업이 됩니다. 살생은 인과응보를 일으키기 때문에 부처님도 살생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아소까가 대답했다.
“작은 애벌레들은 나뭇잎을 갉아 먹어서 죽였고, 까마귀들은 노랑할미새나 작은 산비둘기를 깍깍거리면서 쫓아내니까 새총으로 잡는 거지요.”
목갈리 스님은 아소까에게 적잖이 실망하면서 그의 곁을 떠나며 말했다.
“왕자님, 나뭇잎도 애벌레도, 또 노랑할미새도 까마귀도 모두 다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서로 보호받으며 사는 거지요. 하지만 왕자님은 아무리 말해도 참회할 마음이 없으니, 저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입니다. 자비가 없는 사람에겐 더 이상 가르칠 게 없어요.”

삽화=서연진 화백.

 

아버지인 빈두사라왕은, 그의 영토를 데칸 공원과 중앙인도까지 넓혀 인도제국을 만들고, 그를 분할 통치하기 위해 16명의 왕비와 101명의 왕자를 두었다. 아소까는 대왕이 되기 위해 형인 수사마 부왕을 비롯해 99명의 이복 왕자를 죽이고, 4년간의 잔혹한 권력투쟁에서 성공하여 왕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그는 왕궁을 산책할 때마다 정원에 피어있는 붉은 꽃구경하는 것을 좋아했고, 아들 꾸날라가 연주하는 공후 소리도 좋아했으나, 그의 잔인한 성격은 늘 변함이 없었다. 전쟁에서 이겨, 자신이 정복한 다야 강 주변을 신하들과 돌아보던 중, 있는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아소까 대왕이 물었다.
“저 아이는 왜 이른 아침부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오?”
수십 명의 경계병을 지휘하는 경비대장이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저 아이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을 모두 잃고 울부짖는 아이입니다.”
아소까 대왕이 이번에는 히죽히죽 웃으며 돌아다니고 있는 노파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노파는 왜 웃으며 돌아다니는 것이오?”
경비대장이 말했다.
“어제 다야 강 전투에서 아들을 잃고 미쳐버린 노파일 것입니다.”
그때 아소까 대왕은 노파가 허공에다 소리를 지르며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소까! 천하에 나쁜 놈. 누가 너를 신이 내린 아들이라고 했느냐? 피도 눈물도 없는 놈, 히말라야 설산보다 더 차갑고 냉정한 놈. 가슴에 심장이 없는 놈, 내 아들을 죽인 업보로 너도 반드시 칼에 맞아 죽을 거야!”
아소까 대왕은 노파의 저주에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충격을 받았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기쁨도 잠시, 다야 강 주변에 널려있는 10만 병사들의 시신과 피비린내를 맡고 날뛰는 까마귀 떼를 보면서, 적장의 목을 베었던 단검을 다야 강에 던져버리면서 말했다.
“나의 군사들이여, 나는 오늘 애지중지하던 칼을 다야 강에 버렸다. 왜냐하면 전쟁 때문에 미쳐버린 노파와 울부짖는 아이를 보면서 칼은 나에게 기쁨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이후로 칼 대신 부처님 법으로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 백성과 군사들 대신하여 목숨을 바친 깔링가 총사령관이 죽어가면서도 부처님을 받드는 것을 보고 나도 그리할 것이다. 부처님 법의 수레바퀴를 돌릴 것이다, 또한 바퀴는 뒤로 굴러 가지는 않게 할것이다.”

선재 동자와 보리가 숨을 죽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 무승군 장자가 손뼉을 '탁' 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자, 이게 두 번째 무진상이야. 아소카왕이 칼을 버리고 부처님 법으로 세상을 다스리겠다고 하는 것.”
선재 동자와 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승군 장자가 말했다.
“세 번째는 아소까 대왕의 부처님 법에 의한 통치는 깔링가 전쟁이 끝나고 약 2년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 이때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로 8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부처님 법을 설파하고 그 기록을 남겼어. 8만 4천개의 석탑을 세우고, 커다란 돌기둥, 석주를 100개 넘게 세운 뒤 부처님 말씀을 새겨 넣기도 하고, 바위 표면에도 법문을 새겼지. 이러한 명문들은 '아소까 칙령'이라고 해. 아소까의 칙령은 관대하고, 신에 대한 경건함, 자신에 대한 절제, 생명에 대한 존중, 폭력의 배격, 이타적인 사랑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때때로 여행자가 제공받을 수 있는 공공 서비스와 같이 아주 실질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가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경고까지 포함해서 써 놓았어. 또한 아소카 대왕은 인도 전역에 병원을 건립했는데 이때에도 사람을 위한 시설과 동물을 위한 시설을 함께 지었다. 지난날 전쟁에서 많은 가축을 살상한 것에 대한 참회로 그는 동무들이 먹을 약초를 곳곳에 심고 가축들의 살생을 법으로 금지 시켰단다. 모든 생명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문구를 석주에 새겨 인도 전역에 퍼뜨렸어. 근 40년 동안 인도를 통치하면서 그의 모든 것을 불교에 귀의했지. 죽기 전 마지막 식사도 스님들 공양에 나눠드렸단다. 이것이야말로 그 누구도 이길 없는 승리 아니겠니. 부처님 시절에 자야를 무등 태웠던 위자야도 백년 뒤 아소까의 신하, 라따굽타가 되어 평생 아소까를 도왔어. 그 역시도 상을 내지 않는 무진상이라고 할 수 있지.”
이야기를 마친 무승군 장자는 선재 동자와 보리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자 이제 너희들은 법취락에 살고 있는 최적정 바라문을 찾아가서 보살도를 구해보거라.”
선재 동자와 보리는 아소까 대왕의 길이 남을 업적을 가슴에 간직한 채 그의 곁을 떠났다.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