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유철의 문학산책, 그리고 사회 엿보기】결혼하지 않는 시대의 여성들

2025-07-14     천유철

 

2005년 방영된 MBC 수목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은 촌스러운 이름과 통통한 외모를 가진 서른 살 ‘노처녀’ 김삼순이 파티시에로 성장하고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최고 시청률 51.1%를 기록하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여성의 평균 초혼 나이가 27.7세였던 만큼, ‘서른 살 미혼 여성’에게 ‘노처녀’라는 꼬리표가 붙는 설정은 현실을 정교하게 반영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서른은 더 이상 결혼을 서두를 나이가 아니다. 여성의 학력과 경제력이 높아졌고, 가사 노동에 대한 인식과 개인 중심의 가치관 확산과 같은 사회 변화는 결혼의 위상을 바꾸어 놓았다. 결혼은 더 이상 인생의 통과의례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 25~29세 결혼 적령기 여성의 미혼 비율이 59.1%였지만, 2020년엔 82%로 증가했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통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경제적 자립과 독립적인 삶을 선택하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결혼하지 않는 것이 ‘사회적 부적응’이 아닌 ‘주도적인 삶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전환점은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대면 접촉이 제한되고, 경제 불안이 커지면서 결혼을 미루던 이들은 결혼 자체를 선택지에서 제외하는 삶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즉, 팬데믹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도 재구성했다. 여기에는 ‘경제적 불안정성’, ‘사회적 거리 두기’, ‘정서적 재평가’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결합되어 있다.
그렇다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노처녀’라는 말은 공식 언어에서 지워졌지만,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마주하는 묵시적 기대나 설명 불가능한 불편함은 여전하다. 이 점이 조선 후기 가사 〈노처녀가〉가 지금도 현재성을 지니는 이유다.

인간 세상 사람들아 이내 말씀 들어보소/ 인간 만물 생긴 후에 금수 초목 짝이 있다/ 인간에 생긴 남자 부귀 자손 같건마는/ 이내 팔자 험궂을손 나 같은 이 또 있는가/ 백 년을 다 살아야 삼만 육천 날이로다 … 노망한 우리 부모 날 길러 무엇하리/ 죽도록 날 길러서 잡아 쓸까 구워 쓸까/ 인황씨 적 생긴 남녀 복희씨 적 지은 가취/ 인간 배필 혼취함은 예로부터 있었지만/ 어떤 처녀 팔자 좋아 이십 전에 시집간다/ 남녀 자손 시집 장가 떳떳한 일이건만/ 이내 팔자 기험하야 사십까지 처녀로다  -‘노처녀가’ 부분

〈노처녀가〉는 결혼하지 못한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통념과 그로 인한 자책, 불안을 절절히 묘사한다.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가족과 사회를 위한 책무였고, 이를 이행하지 못한 여성은 존재의 근거마저 의심받았다. 그 시대의 조롱과 죄책감은 지금의 미묘한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은 그로부터 수백 년 뒤 등장했지만, 그녀 역시도 결혼에 대한 압박을 내면화한 인물이었다. 전문직 여성으로서 자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김삼순도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두 작품은 시대는 다를지언정 여성의 삶을 규정짓는 결혼제도의 그림자를 똑같이 비추었다.

오늘날의 변화는 분명하다. 더 이상 결혼은 ‘하지 못해서’가 아닌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선택지가 되었고, 이는 점차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이는 잠시 지나는 유행이 아닌 인간관계와 정체성 나아가 삶의 의미에 대한 재정립을 요구하는 변화다.
이제 결혼은 인생의 필수 코스가 아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중받는 오늘날에 우리가 돌아봐야 할 질문은 우리 사회가 개인의 선택을 얼마나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지다. 결혼을 둘러싼 사회적 압력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