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태고】12대원을 세우고 관세음보살 염불 주력

태고 25-관세음보살 염불 정진을 시작하다

2025-07-14     유응오

문둥이 아낙이 미륵불이 있는 곳으로 보허 스님을 안내했다. 한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않은 데다가 졸도했다가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보허 스님은 쨍한 햇빛에 두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자신도 모르게 휘청거렸는지 문둥이 아낙이 보허 스님을 부축하였다. 보허 스님은 문둥이 아낙의 손가락들이 잘린 손이 조금도 흉측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걷다가 쉬길 반복한 끝에 보허 스님과 문둥이 여인은 미륵불 앞에 당도하였다.
성인 키 두 배만 한 석불은 보개를 쓰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구슬을 들고 있었다. 신체에 비해 머리가 커서 보기에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보허 스님은 이 돌부처님을 조성한 사람들이 누구일까 생각했다. 짐작하건대 미륵이 현세에 강림하기를 바라는 미륵 하생 신앙을 믿는 어느 향도들일 것이다. 보허 스님이 우두커니 서서 미륵불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한 소경이 지팡이로 더듬더듬 땅을 짚으면서 미륵불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인지 문둥이 아낙이 소경에게 아는 척을 했다.
“햇빛이 좋습니다.”
소경이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따사로운 햇빛에 나무들도 녹의(綠衣)로 갈아 입었구려.”
문둥이 아낙이 살포시 웃고 나서 말했다.
“거사님은 심안(心眼)에 점안(點眼)을 하신 모양이오. 앞을 보지 않고도 험한 산길을 걸어서 올라오지 않나, 두 눈을 감고도 봄 햇살에 초목이 신록 돋는 것을 보지 않나.”
아닌 게 아니라 문둥이 아낙의 말을 듣고 나니 보허 스님은 두 눈이 먼 소경이 굳이 볼 수도 없는 미륵불을 찾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소경이 지팡이를 땅에 탁탁, 소리 나게 치더니 말했다.
“눈이 멀어도 보이는 것이 있소. 까막눈이인 나도 살갗이 봄 햇빛을 느끼는데, 초목들이라고 못 느끼겠소. 그건 그렇고 아낙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요?”
보허 스님은 소경에게 합장 반배한 뒤 말했다.
“저는 이 밑에서 수행하고 있는 운수납자입니다. 법명은 보허라고 합니다.”
소경이 지팡이를 든 채 합장했다.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스님. 저는 보다시피 두 눈이 먼 소경입니다. 봉사놈이 볼 수도 없는 돌부처님을 친견하려고 하는 까닭은 돌부처님 앞에서 염불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서입니다.”
보허 스님은 고개를 끄덕인 뒤 물었다.
“거사님께서는 무슨 염불을 합니까?”
소경이 대답했다.
“다른 사람한테 들은 대로 나무아미타불을 칭명합니다. 어떻게 해야 바른 염불입니까? 스님.”
보허 스님은 화엄선에 입시하느라 읽었던 《화엄경》‘보현보살행원품’의 구절이 떠올랐다.

이 사람이 목숨을 마치는 마지막 찰나에는 육신은 모두 다 무너져 흩어지고 모든 친척 권속은 다 버리고 떠나게 되고, 일체의 권세도 잃어져 말과 수레와 보배 창고들이 하나도 따라오지 않지만 오직 이 열 가지 서원은 서로 떠나지 않고 어느 때나 앞길을 인도하여 한 찰나 동안에 곧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함을 얻을 것입니다.
극락에 가서는 곧 아미타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자재보살, 미륵보살들을 친견할 것이며, 이 모든 보살들은 모습이 단정하고 공덕이 구족하여 다 함께 아미타불을 둘러 앉아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제 몸이 절로 연꽃 위에 태어나서 부처님의 수기 받음을 스스로 볼 것입니다. 수기를 받고서 무수한 백천만억 나유타 겁을 지나면서 널리 시방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세계에 지혜의 힘으로써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이롭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보리도량에 앉아 마군(魔軍)을 항복 받고 정각(正覺)을 이룰 것입니다. 다시 미묘한 법륜(法輪)을 굴리어 능히 세계의 아주 작은 먼지 수 세계의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심(菩提心)을 내게 하고, 그들의 근기에 따라 교화하여 성숙시키며 나아가 오는 세월이 다하도록 일체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할 것입니다.

삽화=유영수 화백.

 

보허 스님은 문둥이 아낙과 소경 사내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보허스님은 다시 미륵불을 올려다봤다.
석불의 코는 닳아져 있었다. 필시 아들을 낳기를 바라는 아낙들이 석불의 코를 만지고 심지어 무엇으로 긁어서 떨어진 돌가루를 가져갔을 것이다. 석불의 눈과 귀와 입도 닳은 상태였다. 이는 눈먼 소경들과 말귀 어두운 귀머거리와 말을 못하는 벙어리들의 소행일 것이다. 얼굴은 물론이고 두 손과 두 발까지 닳아서 형체가 흐릿해진 까닭에 보기에 따라서 미륵불이 되기도 했고 아미타불이 되기도 했고, 관세음보살이 되기도 했고, 지장보살이 되기도 했다. 석불은 모든 불보살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기도 했다.
그렇다. 석불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느라 스스로 가장 비천한 모습이 되었다. 애초 저 석불은 한낱 바위이었다. 물결처럼 섬세한 손끝을 지닌 어느 석수에 의해 바위는 석불이 되었다. 그리고 맹인(盲人), 농암(聾暗), 팔다리 불비(不備), 간질병자, 나병환자 등 수렁에 버려진 까닭에 웃음마저도 그늘진 사람들에 의해 석불은 다시 돌이 되어 가는 중이었다. 보허 스님은 부처님이 출가하면서 마음 기댈 데 없는 사형수처럼 삭발하고 분소의(糞掃衣)를 걸쳤던 이유를 곱씹어 생각했다.
보허 스님은 시선을 돌려서 문둥이 아낙을 바라봤다가 다시 소경 사내를 바라봤다. 오직 마음이 정토이리라. 모든 불보살은 우리의 성품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리라. 그러한즉, 청정하고 묘한 법신은 일체중생의 마음속에 두루 있으리라. 그러므로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이 차별이 없으리라.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이니 마음 외에 부처는 없고 부처 외에 마음은 없으리라.

“저 돌부처님은 미륵불이기도 하고 아미타불이기도 합니다. 관세음보살이기도 하고 지장보살이기도 합니다. 어떤 불보살님이든 상관없습니다. 불보살님의 이름을 마음속에 두고 언제나 잊지 않고 간절히 부르십시오. 불보살님의 명호를 입으로 부르면서 불보살님의 명호를 마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면 불보살님의 명호가 자신의 귀에 들릴 것입니다. 거기 그치지 말고 지금 염불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관찰하고, 나아가서 지금 이렇게 관찰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의심해보십시오. 한결같은 마음으로 오래오래 관찰하면 홀연히 어느 때에는 생각이 끊어지고 불보살님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때가 되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부처라고 한 옛말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참구하면 자성미타(自性彌陀)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진실한 염불이란 자신의 마음과 부처의 명호가 한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보허 스님이 말을 마치자 문둥이 아낙과 소경 사내가 합장을 하면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보허 스님이 관세음보살 염불을 시작하자 문둥이 아낙도 따라서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소경 사내는 평소대로 아미타불 염불을 했다. 관세음보살과 아미타불을 간절히 부르는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그날 이후 보허 스님은 12대원을 세우고 관세음보살 염불을 시작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고통에서 구해주는 구세주였다. 정토 염불의 목적이 내생에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것이라면 관세음보살 염불의 목적은 현생에게 겪는 모든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었다. 보허 스님이 세운 12대원의 내용은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안으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밖으로는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것이었다.
보허 스님은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기 전에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마음에 새겼다.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모든 괴로움을 받을 때, 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듣고 일심으로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즉시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을 얻게 합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