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태고】‘만법귀일’ 화두에 죽은 물고기 위해 염불했던 기억 떠올라
태고 23회-보림사를 떠나다
보허 스님이 화엄선에 급제한 뒤 보림사에는 회화나무가 심어졌다. 과거에 급제하거나 관리가 공명을 얻은 뒤 관직에서 물러날 때 심는 나무가 회화나무였다. 회화나무가 학자나무, 출세나무, 행복나무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공(三公)의 위(位)를 괴위(槐位)라고 하는가 하면 대신(大臣)의 별칭을 괴문(槐門)이라고 하였다.
회화나무가 경내에 이식되는 날 보림사 주지는 왕이 내려 보낸 하사품들을 받고 기뻐했다. 사찰 소임자들이 모두 승복을 맞춰 입을 수 있는 비단과 사찰의 모든 대중이 먹고도 남을 약과를 보고서 주지 스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보허 스님은 이식이 끝난 회화나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가지에 돋은 신록의 이파리들이 햇빛을 받아서 반짝였다. 나무는 해마다 나이테가 굵어지면서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자 보허 스님은 자신이 어딘지 모르게 초라하게 느껴졌다.
부처님은 나무 아래 결가부좌를 한 채 명상에 든 수행자를 보고서 출가의 원력을 세웠고, 왕궁을 빠져나와 머리를 자르고 사형수나 입는 남루(襤褸)를 걸치고 금은보화가 장식된 신발을 벗어 던지고 삶의 고통도 없고 죽음의 고통도 없는 해탈의 길을 찾기 위해 출가했으며, 고행주의자와 선정주의자를 두루 만나 본 뒤 중도의 깨달음을 얻었고, 드디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수행하다가 반짝이는 새벽 별을 보고서 대각(大覺)을 이루었다. 부처님이 얻은 깨달음은 나무 아래에 있는 수행자를 보고서 시작돼 자신이 직접 나무 아래 수행함으로써 체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부처님이 설하신 연기법(緣起法)은 나무와 같고, 나무가 어우러진 숲과 같다고 하겠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는 땅에서 얻은 수분을 가지와 이파리에 전한다. 그럼으로써 나무 전체를 살찌우고 아름드리 둥치가 큰 나무가 되어서 이파리를 기어 다니는 벌레들은 물론이고 나뭇가지에 둥지를 튼 새들까지 먹여서 키운다. 나무가 빨아들인 수분은 허공에 내뿜어져 구름이 되고 비가 된다. 그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모든 숨 탄 것들이 상생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세속의 모든 영리를 무명초를 베듯 무참히 버렸다. 그런데 납자(衲子)가 되어서 급제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보허 스님은 이런 생각이 들자 승과 시험을 본 게 잘못한 일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출세간의 길은 세간의 길과 달랐다. 세간의 길은 하나라도 더 얻어서 쌓는 데 목적이 있다면 출세간의 길은 하나라도 더 없애서 비우는 데 목적이 있었다. 비유컨대 출가자는 범종과 같았다. 속을 더 많이 비운 범종일수록 더 크게 더 멀리 우는 법이었다. 웅숭깊은 범종 소리만이 지하세계에서부터 지상세계, 나아가서는 천상세계까지 울릴 수 있었다. 그렇게 소리로써 육도 윤회하는 모든 중생을 위무하는 것이었다.
보허 스님이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대중 스님들이 냇가에서 물을 떠 와서 나무뿌리를 적시느라 분주했다. 보허 스님은 제 키만 한 회화나무를 쳐다보다가 출가자에게 학문과 출세와 행복이 무슨 소용이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지스님이 보허 스님을 대견한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입을 뗐다.
“스님, 주지실에 가서 연잎차나 한 잔 합시다.”
말을 마치고 앞서 걷는 주지스님의 뒤로 시자(侍者)스님들이 하사품들을 들고 따라왔다.
주지실에는 찻상 위에 주전자와 찻잔이 놓여 있었다. 이름 있는 장인이 빚은 듯 다구(茶具)들은 청아한 빛이 났다. 동터 오는 새벽녘의 여명처럼 어슴푸레한 것이 예쁘다거나 곱다는 말로는 부족한 신이한 빛깔이었다. 찻상 뒤 벽면에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가 걸려 있었다. 관음보살님이 물가 암벽 위 에 앉아서 대각선 방향으로 깨우침을 받으러 온 선재동자를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관음보살님의 뒤에는 대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관음보살님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쓰고 있는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얇은 사라(紗羅)가 대번 눈에 들어왔다. 투명한 사라 속에 금칠한 원형 덩굴과 꽃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수월관음도를 그린 사람은 손끝이 물결처럼 섬세한 사람이리라. 매미 날개 같은 사라를 어떻게 저렇게 정교하게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에 보허 스님은 한동안 우두커니 수월관음도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물을 끓이면서 주지스님이 말했다.
“수월관음이야 우리 고려 게 제일이지. 보허 수좌는 화엄선에 합격한 사람이니 《화엄경》 입법계품 내용은 굳이 설명해도 알 것이고.”
보허 스님이 보기에 주지 스님이야말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하고 있었다. 선재동자가 찾아가는 선지식 중에는 관세음보살님도 있었다. 경전 속 관세음보살님은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의 연못가 바위 위에 앉아 선재동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고려의 불교 문화는 화려하다 못해 사치스러울 지경이었다. 꽃이 만개하면 떨어지듯, 달이 차면 기울듯 고려 불교도 그 화려함이 절정에 다다른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주지 스님이 찻잔을 건넸고, 찻잔 안에서 연잎이 부풀어 피어올랐다. 주지 스님은 접시에 송홧가루로 만든 꽃문양의 다식을 담아 건넸다. 차를 들기에 앞서 보허 스님은 다식을 먹었다. 입안 가득 솔 향기가 퍼져나갔다. 이어서 보허 스님은 찻잔을 들어서 연잎차를 입에 머금었다. 머릿속에 바람에 흔들리는 연꽃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두 눈을 현혹하는 것들을 보고, 혀끝을 마비시키는 것을 맛보려니 보허 스님은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이 절간이 아니라 궁전인 것만 같았다. 시선을 돌려서 보니 방안 곳곳에 푸른 빛의 청자들이 놓여 있었다. 청자에는 학들이 비상하는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주지실을 빠져나오면서 보허 스님은 보림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새벽, 먼동이 트기 전에 보허 스님은 바랑을 꾸려 짊어진 뒤 산문을 벗어났다. 멀리서 도량석 소리가 들렸다. 보허 스님은 개울 앞에 멈춰서서 흐르는 냇물을 내려보았다. 개울물은 바위를 만나자 에돌아 내려갔다. 송사리 떼가 노니는 것도 보였다.
보허 스님은 ‘만법귀일 일귀하처’라는 화두가 떠올랐고, 그러자 어릴 적 죽은 물고기를 위해서 염불했던 기억이 스쳐 갔다. 보허 스님은 초발심이라는 세 글자를 가슴에 새기면서 걸음을 뗐다.
정처 없이 구름이 흘러가듯 걸음 닿는 데로 만행을 하다가 보허 스님은 고향집에서 멀지 않은 용문산 상원암이라는 작은 암자에 바랑을 내려놓았다. 상원암에서 보허 스님은 3년 동안 두문불출하면서 하루에 한 끼만 먹고 ‘만법귀일 일귀하처’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하였다.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잠도 자지 않았다. 사나흘씩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화두를 잡다 보면 해가 떠서 지는 일상과는 무관한 시간 밖의 시간,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은 물론이고 앉아 있는 자신마저도 사라진 공간 밖의 공간에 있을 수 있었다. 그 찰나 속에는 유구무한(悠久無限)한 시간과 선경(仙境)의 공간이 함께 있었다. 보허 스님이 경험한 시공간은 오경(悟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경 속에서는 시공을 초월해 무애(無碍)한 가운데 유유자적할 수 있었다.
행선을 하느라 암자 주변을 거닐 때는 의상대사의 법성게(法性偈)의 한 구절을 읊조리곤 했다.
일미진중함십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怯卽一念)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怯)
보허 스님은 그 구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한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포함되고, 모든 티끌 속에도 또한 그러하다. 한량없는 먼 겁이 곧 한 생각이요, 한 생각이 곧 한량없는 겁이니…… 공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작은 티끌이 시방을 머금는다는 것은 공간의 크고 작은 한정이 없다는 뜻이리라. 자성(自性)이 없는 까닭에 그 어느 것도 머무름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리라.
무량겁이 곧 일념이고, 일념이 곧 무량겁이라는 말은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시간과 동서남북, 상하좌우의 모든 공간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리라. 실로 화두를 들고 수행을 하다보면 일념이 곧 무량겁이고, 무량겁이 곧 일념이었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깨어 있다면 이미 영생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르겠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