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스님의 동화로 읽는 화엄경 이야기】 룸비니 동산에서 아기 부처님 옆구리로 낳아

㊸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

2025-05-20     민재 스님

 

선재 동자와 보리가 도리천으로 마야부인을 친견하러 가는 도중 한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바나나 세 개와 편지를 들고 있었는데 보리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누나, 지금 어디를 가는 중이에요?”
보리가 깜짝 놀라 잡힌 팔을 빼면서 물었다.
“으응, 우리는 마야부인을 만나러 도리천으로 가고 있어. 너는 누구니?”
아이가 대답했다.
“저는 짜라마노라고 해요. 저도 도리천에 계시는 마야 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싶은데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해요. 누나는 어떻게 하여 들어갈 수가 있나요?”
보리가 슬쩍 선재 동자를 쳐다보았다. 선재 동자는 미안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우리도 그냥은 못 들어가는데 선지식님들을 친견하러 다니는 중이라, 문수보살님께서 도와주셔서 들어갈 수가 있단다. 마야부인도 선지식님이시거든.”
짜라마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선지식님,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제가 마야 할머니께 편지를 썼는데 죄송하지만 전해줄 수 있을까요? 만나서 제 심정을 다 말하고 싶지만 몇 번이나 거절당해서 편지를 써왔어요.”
이번에는 보리가 짜라마노의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거니?”
짜라마노가 울지 않으려 애쓰지만, 눈물이 뺨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제 가족에게 마야 할머니의 도움이 필요해요. 편지와 바나나를 꼭 전해주시고 제가 답장을 기다린다고 전해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누나, 좀 도와주세요.”
짜라마노가 보리의 손을 꼭 잡고 기도하듯 말했다.

선재 동자와 보리가 도리천에 도착하여, 마야부인을 뵙고 엎드려 절한 뒤 합장하며 말했다.
“큰 성인이신 마야 선지식님! 부처님과 문수보살님께서 저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하고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친견하고, 그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도 이루는지 알아 오라 하셨나이다. 부처님의 어머니로서 말씀해 주십시오.”
마야부인은 얼굴에서 햇빛처럼 더없이 밝고 따스한 빛을 내며 말했다.
“나는 이미 보살들의 큰 원과 지혜로 해탈문을 성취하여 항상 여러 보살의 어머니가 되었다. 나의 이름 마야는 그지없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카필라성 정반왕의 부인이 되었지. 그리고 어느 날 여섯 개의 하얀 상아를 가진 코끼리가 내 옆구리로 쓱 들어오는 꿈을 꾸고, 열 달 만에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모니 아기 부처님을 낳았어. 내 꿈처럼 나의 옆구리로 아기가 태어났지.”

삽화=서연진 화백.

 

‘우와, 대단하다.’ 보리가 옆구리로 아기를 낳았다는 소리에 탄성을 질렀다.
마야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사실 나는 그 옛날에도 한량없는 부처님들의 어머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미래불의 어머니도 된단다.”
선재 동자가 두 손을 모아 합장한 뒤 물었다.
“어떻게 그 한량 없는 육신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이 태어나시는 차례를 알며 모든 여래의 공덕을 알 수 있나이까?”
마야부인은 선재 동자의 이마에 대고 수기를 내려주며 말했다.
“그것은 내가 과거 수많은 생을 거듭하면서 발원하고 선근 공덕을 쌓은 인연으로 기도했었지. 전륜성왕이 부처라 생각하고 여러 곳에 태어날 때마다, 내가 항상 그의 어머니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지. 그 후 십 나유타 부처님께 공양했어. 아기를 낳으려고 친정으로 가는 길에, 룸비니 동산 사라수 아래에서 나뭇가지를 의지하고 쉬는 동안, 오른쪽 허리에서 아기 부처가 태어났지. 7일이 지난 뒤, 모든 부처님 어머니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숨을 거두었으며 그 후 도리천에 다시 태어났단다. 이것은 마치 물레방아가 도는 것처럼 계속 과거와 현재, 미래로 돌고 있는 거지.”
선재 동자가 말했다.
“정말 상상이 안 될 정도로 꿈같은 이야기네요. 선지식 중에 최고의 선지식님이십니다.”
보리도 선재 동자의 말에 손뼉을 쳤다.
“맞아요. 진짜로 부처님 어머니가 맞네요. 대단하십니다. 전 세계의 어머님!”
마야부인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마음을 착하게 먹어. 부처님의 말씀대로 중생들을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며 욕심을 버리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자비를 베풀어서 선지식을 구하는 마음을 내면, 그게 바로 부처가 되는 길이란다. 그게 바로 성불이지….”
보리가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으며 “불쌍하고 가여운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아! 짜라마노, 바나나!” 하고 읊조리듯 말했다.
선재 동자가 보리의 손에서 바나나를 받아 얼른 마야부인에게 주었다.
“이게 뭐니?”
마야부인이 물었다.
보리가 봉투를 꺼내 마야부인에게 전했다.
“짜라마노라는 아이가 도리천에 들어올 수가 없다고 하면서 바나나와 편지를 저희에게 주었어요. 마야 할머니께 전해드리라고요.”
마야부인은 짜라마노의 편지를 읽고 나서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마야 할머니.
저는 짜라마노라고 해요. 저는 태어나서 십 년이 되도록 아빠한테 다정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제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 할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때부터 아빠는 저보고 ‘재수 없는 놈’이라고 하면서 한 번 안아 주지도, 놀아주지도 않았어요. 당연히 엄마도 저같은 아이를 낳아서 재수 없다고 하고요. 그래서 저의 소원은 엄마 아빠와 손잡고 놀이동산으로 소풍 가는 거예요. 또 아빠는 술에 취하면 ‘내가 왜 너희들을 먹여 살려야 되느냐’고 소리 질러요. 너희 둘만 없으면 편히 살겠다고요. 그런데 엄마는 그래도 아빠가 좋은가 봐요. 십 년 동안 따뜻한 말 한 번 해주지 않는 아빠지만, 절에 가서 늘 기도 하셔요. 서로 같이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는 화목한 가정이 되게 해달라고요. 하지만 부처님은 엄마가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를 하는 데 들어주지 않으세요. 그러다 보니 제가 엄마 옆에서 같이 기도하면 엄마는 저를 끌어안고 우시기도 해요. 제가 가끔 미운 아빠 버리고 도망가자고 하면 엄마는 ‘아빠도 불쌍한 사람이야.’ 하면서 우리가 아빠를 지켜줘야 한대요.

마야 할머니,
우리 엄마처럼 할머니도 부처님의 엄마니까 부처님 대신, 우리 가족이 화목하게 지낼 수 있게 제발 좀 도와주세요. 부처님은 모든 사람을 구제해 주시느라 바쁘신가 봐요. 엄마는 저녁 밥상을 차리면서도 웃지 않으세요, 왜냐하면 아빠는 혼자 따로 먹거든요. 당연히 밥을 맛있게 잘 먹었다는 소리도 안 해요. 그게 십 년이 지났어요. 정말 속상해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한테도 서로 눈 맞추며 이야기하고 안아 주는 데, 우리 집은 너무나 삭막해요.

마야 할머니.
저희 엄마랑 아빠랑 저랑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소원을 꼭 들어주세요. 그리고 이 바나나 세 개는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저희도 나중에 세 가족이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 먹었으면 좋겠어요. 이 편지가 꼭 할머니께 전해지기를, 또 저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도록 열심히 기도할게요. 저에게도 부처님을 사랑해 주신 엄마처럼, 마야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로 저희 가족을 크신 사랑으로 도와주세요. 부처님의 엄마니까 하실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싶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짜라마노 올림

-한국불교신문 2022년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