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축 초대석-학현 보경 스님】“마음의 등불 켜 진리· 자비· 평화의 세계 만들자”

-한국불교태고종 승정 학현(學鉉) 보경(普經)스님

2025-04-29     김종만 기자

학현 스님 약력

1944년 출생
1962년 백양사에서 인공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76년 봉원사에서 묵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1979년 태고종 불교전문교육원 졸업.
1980년 백양사 강원 대교과 수료.
1993년 동국대 불교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수료.
1986년 남양주 선덕사 창건 주지.
1994년 경기동부교구 종무원장.
2000년 태고종 중앙종회의원.
2003년 태고종 총무원 교무부장.
대륜화상문회 회장.
2004년 태고종 총무원 부원장.
법륜사 주지.
2005년 태고종 교육원장.
2007년 태고종 중앙승가전문강원장.
현 재 태고종 승정

학현 보경 스님은 지난 해 7월 10일 한국불교태고종 승정으로 추대됐다. 승정은 출가수행자로서 지(智)와 행(行)과 덕(德)을 겸비한 원로 가운데 선출된다. 한 마디로 종단의 사표(師表)다. 학현 스님은 80을 넘는 평생을 사는 동안 방송과 신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이 없다. 또 화려한 언변과 글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급 스님들과도 거리가 멀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스님이지만 스님을 아는 대중들은 경의와 존경을 표한다.
학현 스님은 종단의 대강백으로 평생 전법과 교육에 남다른 의지와 열정을 보여왔다. 편하게 갈 수 있는 샛길이 있어도 부처님의 길이 아니면 외면했다. 당신이 걸어야 할 길이 엄하고 혹독해도 마다하지 않고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기에 연륜을 더할수록 스님에게 기대는 종도들의 신뢰는 크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스님이지만
스님을 아는 대중들은 최고 존경과 경의 표현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우리 국민들은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엄중한 시기를 맞고 있다. 따라서 국민간 갈등과 분열, 대립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문제로 어느 어른에게 지혜의 말씀을 들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총무원장 상진 스님이 학현 스님을 추천했다. 기자는 미리 전화를 드리고 4월 21일 오전 10시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남양주 선덕사를 찾았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갔음에도 스님은 이미 상좌들과 함께 보살님이 차려 준 따뜻한 잣죽으로 대담을 준비하고 있었고 큰스님의 법문을 들을 기회가 또 언제 있겠냐는 듯 상좌들이 더 기대를 갖고 배석하는 모양에 스님의 평소 삶이 얼마나 주위에 신뢰를 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다음은 스님과의 일문일답을 간추린 내용이다.

△먼저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맞는 소회를 말씀해 주시죠.

-역사적으로도 전해오듯 을사년이 사람들을 참으로 어렵게 해요. 미얀마 지진발생을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는 영남권을 중심으로 대형산불이 발생했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경제정책으로 전 세계가 초긴장 상태에 빠졌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나뉘어져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죠. 국민이 안정을 찾지 못하면 나라가 흔들리고 경제 또한 불안해 집니다. 마침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우리 모두 지극한 마음으로 진리의 등불을 켰으면 합니다. 외형적 등불이 아니라 마음의 등불을 켬으로써 진리와 자비, 평화의 세계를 만들어가길 염원해 봅니다.

△스님에 대한 종도들의 신뢰가 깊은데 태고종도로 살아오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무엇인지요?

-과거 우리 태고종 스님들은 자긍심이 높고 단결력도 아주 좋았습니다. 태고종 출범 초기에 대륜 스님과 묵담 스님이 봉원사에서 처음 비구계와 보살계를 설하실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또 남허 스님이 태고종 8대 총무원장에 선출돼 장충체육관에서 불교도대회를 하는데 성황을 이뤘던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종단이 안팎의 존경 대상이 되려면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합니다. 신뢰가 없으면 큰 일을 해낼 수 없어요. 옛날에 대륜 노스님이 내가 선암사로 공부하러 떠나려 하는데 못가게 막아요. 법륜사 너에게 줄테니 가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짐을 꾸려서 선암사 강원 1기로 들어갔어요. 나중엔 내 학구열이 단순한 게 아니고 진심에서 나온 열의였다는 점을 알게 된 노스님이 학비와 용돈을 꼬박 챙겨줬어요. 또 “보경을 법륜사 재무를 맡기라”는 노스님의 유언장이 나중에 발견되기도 했어요. 재정에 관해서 보여준 신뢰 때문이겠지요. 법륜사 주지를 놓고 다투는 바람에 빚이 600만 원인 적이 있었어요. 당시 강남 아파트 3채 값이었어요. 그때 제가 덕암 스님을 조실로 모시는 조건으로 재무를 맡아 일백사위신장탱화조성불사를 전개하는 불사 등을 펼쳐 빚을 다 갚고도 1천만 원을 법륜사에 남겨놓고 다시 백양사로 공부하러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큰스님들과 대중들에게 신뢰의 씨앗을 놓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스님이 창건하신 선덕사는 어떤 사찰입니까?

-법륜사에 혜초 스님이 주지로 왔을 때 조실로 계신 덕암 스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구리 시장 앞 입구에 포교당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래도 오로지 관세음과 지장 기도에 주력하며 정진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예불을 올리고 있는데 옆에 누가 날카로운 흉기를 목에 들이댔습니다. 순간 겁이 난 나는 나를 자책했습니다. 천수경에 나오는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철, 아약향화탕 화탕자고갈’의 게송처럼 칼산 지옥을 무너뜨리고 불의 지옥을 말라 없어지게 하겠다는 서원이 무색했던 거죠. 화엄신장을 모시고 살면서 왜 내가? 순간 겁이 사라지고 태연자약해졌습니다. 대신에 이 사람과 원수는 짓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강도도 나의 태도에 흉기를 내려놓았습니다. 날카로운 이발소 가위였습니다. 그가 절에 아무 돈이 없다는 걸 눈치채고 “부처님 위에 올라가 담배나 한 대 태워도 되겠소?”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답했죠. “그래, 피워라. 그런데 벌은 당신이 받는 거다.”하니 감히 못하더라구요. 그런데 이 사건이 구리시 전체에 소문이 났습니다. 강도를 스님이 물리쳤다는 소문에 신도들이 가득 몰려왔어요. 그때는 부처님오신날 등 대신 촛불을 켰는데 임대 포교당 2층에 바람이 불면 초를 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제대로 된 법당을 갖춰야겠다 해서 지금 이곳에 터를 닦고 절을 만들었습니다. 절을 만들 당시에 여러 장애와 신고 등으로 행정적 처분을 받을 위기에서도 저의 심지를 알고 있던 군 고위 공무원 등이 많은 도움을 줘서 완공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학현 스님이 선닥사 법당 앞에서 상좌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후로 선덕사에 살면서 금곡 양평 등 인근 군부대에서 법문을 하는 등 포교활동을 벌였죠. 또 남양주경찰서 경승활동과 유치장 수감자 상대로 법문도 하고…. 신기한 건 이교도들이 처음에 내가 법문할 때 돌아앉아 있다가 어느 새 보면 제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하는 거예요. 부처님의 법은 누구에게나 걸림 없이 자재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편하게 갈 수 있는 샛길 있어도
부처님 길 아니면 단호히 외면
일상 삶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신뢰’ 꼽고 “꼭 지켜야” 강조 

△스님은 종단에서 교육부원장 겸 강백으로 활동하실 때 교육교재도 만드시고, 지난 해엔 법문집 《만법은 마음에서 세워지는 것》도 출간하셨습니다.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강 비결 방법은 무엇인가요?

-아마 2019년이죠. 법륜사 주지로 있으면서 교육부원장 소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교과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금강경》《대승기신론》《능엄경》《원각경》을 새로 역주했습니다. 선암사 강원 1기생이자 당대 대강백인 서병재 전덕옹 강사에게 대교를 마치고 백양사 전통 승가강원을 수료한 이력이 큰 힘이 됐습니다. 학인들이 한자를 익히고 새기는데 너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도와주기 위한 방편으로 번역에 힘썼죠.
지난 해엔 그간 신도들에게 행한 법문들을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냈습니다. 《만법은 마음에서 세워지는 것》이 그것입니다.
저는 아침 5시 종성과 예불, 능엄신주를 하고 또 참선삼매를 매일 합니다. 참선하면서 정에 들면 그렇게 마음이 편해질 수가 없어요. 이때 모든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걸 느낍니다. 또 아침공양 후 산에 올라갑니다. 이곳 산이름이 문안산(門案山)예요. 혼자 산을 오를 때 길없는 길로 올라갑니다. 길이 아닌 곳으로 가면 새로워지고 조심성이 생기죠. 내 건강은 같이 살고 있는 보살이 잘 챙겨줍니다. 끼니 때마다 거르지 않고 공양하는 것도 건강유지의 비결이라 할 수 있죠. 지난해까진 텃밭을 가꿨는데 올해부턴 안 해요. 절 아래 텃밭 4백평은 임대를 줬어요.

△향후 스님께서 꼭 해놓고 싶은 게 무엇이 있을까요?

-인재양성이 중요합니다. 종단에서 눈밝은 납자들을 많이 배출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넓은 것은 바다죠. 이보다 더 큰 것은 눈으로 봐도 측량이 되지 않는 허공입니다. 이보다 더 큰 것이 모든 나타나는 현상도 모두 담아놓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 공부를 통해 사람을 감화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동량들이 무수히 배출된다면 우리 종단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단에서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 제도와 시스템을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하는데 제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신뢰를 구축하는 사회를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믿고 자식은 부모를 믿으며, 남편은 부인을, 부인은 남편을 믿고, 이웃은 이웃을 믿어야 건강한 사회와 인간관계가 형성됩니다.
따라서 올해 부처님오신날에는 자비의 등불, 믿음의 등불, 화합의 등불을 켜서 평화와 행복한 사회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남양주 선덕사=김종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