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스님의 동화로 읽는 화엄경 이야기】마음을 내는 것이 우주를 강하게 만든다

㊶ 큰 자비심을 내는 대원정진력구호 주야신

2025-04-08     민재 스님

 

선재 동자와 보리는 나무에게도 스승이 되어 가르친 것에 감동하여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배롱나무 밑에 트롬이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보리가 가까이 다가가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나, 트롬이 많이 다쳤네! 누가 저랬어?”
배롱나무가 대답했다.
“지나가던 삵과 서로 싸우다가 삵이 허리를 물어버렸대.”
선재 동자도 놀라서 물었다.
“삵이? 삵이 왜? 같은 동족이잖아요.”
보리는 처음 듣는 말에 머리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삵? 그게 뭐예요? ”
선재 동자가 말했다.
“으응, 살쾡이라고도 하는 데 같은 고양잇과야. 근데 고양이보다 더 사납고 무서워.”
배롱나무가 트롬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만하기 천만다행이다. 좀 더 깊이 물었으면 죽었을 거야. 트롬! 이제부터 너도 그동안 물어 죽인 새들에게 용서를 빌고 참회하도록 해.”
트롬은 너무 아파 소리도 못 내는 대신, 힘없이 꼬리만 흔들었다.
그 후, 새들이 배롱나무 숲에 모여 앉자 신난다는 듯 떠들고 노래했다.
“얘들아, 전에는 배롱나무에서 놀다 가려고 해도 트롬에게 잡아먹힐까 봐 못 쉬었는데 이제는 트롬이 나무 위로 못 올라 온대. 우리 마음껏 쉬고 놀다 가자.”
그 소리에 트롬은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끙끙거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배롱나무는 짹짹거리는 새들에게 조용히 타일렀다.
“너희들, 트롬이 저렇게 돼서 쌤통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미워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용서하고, 다쳐서 허리를 못 움직이는 트롬에게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본 것들을 말해주면 안 되겠니? ”
새들이 화를 내며 이리 폴짝, 저리 폴짝 뛰어다니며 난리를 쳤다.
“어머, 어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 친구들을 얼마나 많이 물어 죽였는데. 트롬의 행동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배롱나무가 말했다.
“그래서 저렇게 벌을 받고 있잖아. 개부수화 주야신님께서 트롬을 살려놓으신 것은 그동안 지은 죄를 다 참회하라고 시간을 주신 거야. 그러니까 트롬도 허리가 끊어지듯 아파도 참고 견디며 반성하고 있고.”
배롱나무의 말에 새들은 모여서 서로 의논하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한 할미새가 대표로 배롱나무에게 말했다.
“듣고 보니 배롱나무 님의 말이 옳아요. 그동안 지은 죄의 대가로 허리를 못 쓰고 일어날 수도 없으니, 우리가 도와드릴게요. 하루에 한 번씩 날아와서 하늘 위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해 주고요, 트롬의 몸에 붙어 있는 진드기도 잡아줄게요. 비록 작은 새들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도 자비를 베풀 수 있게 기회를 주신 배롱나무와 개부수화 주야신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날부터 트롬의 등 위에는 작은 콩새와 참새, 멧새들이 올라앉아 트롬의 털 속에 숨어있는 진드기를 쪼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개부수화 주야신이 말했다.
“자, 저 모습에서 너희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볕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내는 것처럼, 서로 어렵고 힘들어도 무서운 밤이 지나면, 아침 햇살같이 밝고 따뜻한 사랑을 나누며 온기를 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단다. 이제 선재 동자와 보리는 중생을 위해 큰 보리심으로 정진 수행하는 대원정진역구호 주야신을 찾아가라.”
그리하여 선재 동자와 보리는 큰 서원 정진력으로 무든 중생을 구호하는 주야신을 찾아갔다. 그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한 뒤, 한참 동안 땅에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굳건한 뜻을 내어 위없는 깨달음을 얻고자 수십 명의 선지식을 찾아뵙고, 그지없이 깨끗한 법을 모으려 애쓰고, 무상 보리심과 보살도를 얻으려 했다. 다행히 거룩하신 나의 스승 선지식님들은 나를 거두어 이익하게 하고 온갖 지혜의 길도 보여주시고 공덕의 바다에서 헤아릴 수 없는 복을 많이 주셨다. 나도 이 가르침으로 어려운 중생들에게 다시 베풀어 스승들의 은혜에 보답해야겠다.’
그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사자좌에서 내려온 대원정진력구호 주야신이 선재 동자를 일으켰다.

삽화=서연진 화백

 

“선재야, 그것이 바로 ‘출리심’이라는 것이다. 출리심! 마음을 낸다는 것, 그것이 곧 우주를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되고. 열 가지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 무수히 많은 보살님들의 대원을 이루게 했다. 또 이것은 깊은 대자비심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선재 동자가 일어나면서 물었다.
“그럼 선지식께서는 대원을 세우고 발심한 지는 얼마나 오래되었으며, 어느 때에 무상 보리심을 얻었습니까?”
대원정진역구호 주야신이 말했다.
“그대가 묻기를 언제부터 원을 세우고 보리심을 내었으며, 보살행을 닦았느냐 하였는데 보살의 지혜는 모든 경계의 분별함이 없다. 비유하자면 해는 낮과 밤이 따로 없으나 해가 뜨면 낮이라 하고, 해가 지면 밤이라 한다. 그러니 하나의 해로 사람들이 낮과 밤으로 구분 지어 말하는 거지.”
그때 보리가 말했다.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좀 어렵지? 오빠?”
선재 동자가 웃으며 보리의 어깨에 팔을 둘러 준다.
“그러니까 주야신님의 말씀을 잘 들어봐.”
대덕원만역구호 주야신이 말을 이어갔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옛날에 햇빛 동산에 왕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목숨은 일만 살이라 아주 오래 살았지. 그러다 보니 서로 욕심을 내어 사람을 죽이고, 도둑질하며, 탐욕이 많고, 성내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등 나쁜 짓을 많이 하자, 왕은 그들을 모두 가두고, 참회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쇠고랑을 채우고 코를 베거나 불로 지지고, 두드려 맞아서 뼈가 드러난 고통을 겪고 있었지. 그들은 너무도 지독한 고통에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곳 왕궁에는 왕자가 살고 있었는데, 아주 착하고 정이 많아 죄수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감옥으로 달려가 진심으로 그들을 위로하며 말했다. '너희들은 걱정하지도 말고 괴로워 하지도 말라, 내가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리라.' 왕자가 임금에게 가서 물었지. ‘임금이시여! 옥에 갇힌 죄인들의 고통이 막심하오니 관대하게 용서하시어 은혜를 베푸십시오.’'”
그러자 보리가 주야신 앞으로 얼굴을 쑥 내밀며 물었다.
“그래서요?”
“하하하! 꽤나 궁금한 모양이구나.”
대원정진역구호 주야신이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왕궁의 오백 대신들이 죄인들은 궁전에도 침입하여 물품을 훔치고 왕위를 뺏으려 하여기 때문에 용서를 해줄 수 없다고 하면서, 도리어 왕자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했단다. 결국 임금은 왕자와 모든 죄인들을 사형에 처하기로 했지.”
보리가 말했다.
“어머나, 죄인들만 죽여야지. 왕자는 왜 사형인가요?”
주야신이 대답했다.
“왕자는 그 죄인들을 풀어주면 혼자 사형을 받겠다 하였고 이에 왕후가 나타나 왕자로 하여금 보시를 행하여 복을 받게 한 후 그를 살려 주었지. 그 왕자가 나중에 부처님이 되신거야. 그 부처님의 이름이 대자비이시고, 아무런 대가 없이 무상 보리심을 내어 중생을 제도 하셨지. 나 역시도 그를 본받아 중생들을 위해 대원을 세우고 수행 정진하고 있단다. 그러니 선재 동자와 보리도 지금부터 작은 꿈이라고 크게 가지고 수행하며 정진하도록 하여라. 다음은 룸비니 동산의 묘한 덕을 쌓아가는 묘덕신을 찾아 보살행을 물어라. 나보다 더 잘 가르쳐 주실 것이다."

-2022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