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스님의 동화로 읽는 화엄경 이야기】방편으로 어려움 겪는 중생 바다와 같이 품어

㊳ 고요한 음성 바다를 주관하는 적정음해주야신

2025-02-24     민재 스님

 

선재 동자와 보리가 마가다국의 보리도량에서 적정음해 주야신을 만나러 가는 중에 보리가 물었다.
“오빠, 여태 친견한 주야신들은 다 마가다국의 보리도량에 계시네.”
선재 동자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어?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네. 다 여기 계셨네. 그럼, 앞으로 만나 뵐 선지식인들도 여기 계실까?”
보리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
선재 동자는 해맑게 웃고 있는 보리를 보면서, 그동안 많이 자라고 많이 배운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해졌다.
“아이고, 보리가 이제 도사가 되었구나. 그간 오빠를 따라다닌 보람이 있네. 부처님께서 기특하다 하시겠어. 문수 보살님도 장하다 하시고... ”
둘은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적정음해 주야신의 처소에 가서 그의 발에 엎드려 절하고 수없이 돌고 앞에서 합장하고 말하였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습니다. 저는 선지식을 의지하여 보살의 행을 배우고, 보살의 행에 들어가고, 보살의 행을 닦고, 보상의 행에 머물고자 합니다. 오직 바라옵건대 자비하신 마음으로 가엾이 여기시고, 저를 위해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도를 닦는가를 말씀하여 주십시오.”
적정음해 주야신이 대답했다.
“나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 개울물이 모여서 강물이 되고, 강물들이 모여 큰 강물이 되고 마침내 바다에 들어가면 모두가 다 하나가 되듯, 자유자재한 방편으로 어려운 중생들을 바다와 같이 품어서 다 구제 해주고 있다.”
그때 보리가 선재 동자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오빠, 자유자재한 방편이 뭐야?”
선재 동자가 설명을 해주려 하자 적정음해 주야신이 말했다.
“나는 일체 부처님 바다를 보아 싫어함이 없는 마음을 내게 하고, 모든 보살의 청정한 서원의 힘을 구하는 마음을 내게 하며, 큰 지혜의 광명 바다에 머무는 마음을 내게 하지. 또 모든 중생이 사랑하는 이를 이별하는 괴로움과 원수를 만나는 괴로움을 여의게 하고, 나쁜 인연과 어리석음의 고통 따위를 여의게 하려는 마음을 내고 모든 험난한 일을 당하는 중생의 의지처가 되려고 한다.”
보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
“그러니까 그것을 쉽게 풀이 해주면 안 될까요?”
적정음해 주야신이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사이 선재 동자가 보리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리! 선지식인님께 무례하고 당돌하게 말하면 안 돼. 지금 하시는 말씀이 어렵더라도 나중에 네가 크면 다 알게 돼.”
그들 앞에 아주 조그만 절이 나타났다. 거기에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서 밥을 먹고 있었다. 작고 깡마른 남자가 말했다.
“스님 밥 좀 더 주세요. 여기는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린다 해서 찾아왔는데 밥이 좀 적네.”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밥을 많이 퍼 주었는데도 모자라나 보네. 며칠을 굶다가 온 거요?”
깡마른 남자가 밥을 우물거리더니 
“여기 찾아오는 데 사흘 걸렸습니다요. 이제 여름이 다 가고 가을이 오니까 옷도 다 해지고 돈도 떨어져 있을 데가 없구먼요.”
스님은, 윗도리는 너덜너덜하고, 반바지도 옆으로 찢어져 엉덩이가 보일락 말락 하니 살이 다 드러난 모습을 보고 새 옷을 내주었다.
“우선 이거라도 입고 계시우. 엉덩이까지 다 보이면 사람들이 웃고 놀려요.”
깡마른 남자가 옷을 받아 들면서 말했다.
“옷도 좋지만 돈을 좀 주시면 안 될까요?”
“돈은 왜?”
스님이 약간 화난 얼굴로 물었다.
“술을 못 사 먹은 지 오래돼서...”
“아니, 지금 그 형편에 술은 무슨 술이요? 빨리 기운 차려서 일자리를 찾아야지. 이제 곧 겨울이 올 텐데 그러고 다니면 얼어 죽어요.”
절을 도와주고 있는 공양주 보살이 스님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스님, 오늘 저녁까지 먹으면 내일 아침 먹을 쌀이 없는데요. 그러니 이제 거지들은 받지 맙시다.”
스님이 한참 동안 공양주 보살을 쳐다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밥을 주게 되어 있어요. 또 부처님께서 밥은 안 굶긴다 하셨으니 당신이나 나나 또 어려운 중생들이 밥 굶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 열심히 기도 합시다.”
공양주 보살이 물었다.
“기도하면 쌀이 생기나요?”
스님이 대답했다.
“그럼요. 우리가 부처님 공양 올릴 때 작은 공양이라도, 진언을 외우면 향기롭고 최상의 공양으로 바뀌어, 감로수와 같이 몸과 마음이 청청해지고 모든 물이 우유같이 유익하고 바닷물같이 많아지기를 기도하는 것을 변식 진언이라고 하는데 네 가지 다라니라서 사다라니 라고 해요.”
공양주 보살이 물었다.
“사다라니요?”
“네. 부처님과 불보살님들과 모든 배고픈 이들께 올린 공양물이 맛있게 변하라는 변식 진언, 그리고 마시는 물들도 달콤한 감로수로 변하라는 시감로수 진언, 대지를 받치고 있는 물, 이것을 수륜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많은 물이 팡팡 쏟아져 나오라는 뜻으로 일자수륜관 진언, 감로수들이 젖과 꿀로 변해 바다처럼 많이 나와서 굶주린 사람들의 배를 채우게 하는 유해 진언, 이렇게 네 가지 진언을 합하여 사다라니라고 해요.”
공양주의 눈이 순간 반짝거렸다.

삽화=서연진 화백.

 

“그럼 진언 기도는 어떻게 하나요?”
스님이 공양주 보살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었다.
“자 우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저를 따라 하세요. 변식진언은 ‘나 마흐 사르바 따타 가따 바로기테 옴 삼바라 삼바라 훔’(나막살바 다타 아타 바로기제 옴 삼바라 삼바라 훔) 시감로수 진언, ‘나모 소루빠야 따타 가따야 딴냐타 옴 수루 소루 빠라 소루 빠라소루 빠라소루 스바하’ (나무 소로 바야 다타 아다야 다냐타 옴 소로소로 바라소로 바라소로 사바하) 일자수륜관진언, ‘옴 밤 밤 밤 밤’ 유해진언은 ‘나모 사만따 무트바남 옴남’ (나무 사만타 못다남 옴남) 자 이렇게 진언은 각각 세 번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공양주 보살은 공양간에서 계속 진언을 외웠다. 자꾸 하다 하다 보니, 재미있고 흥에 겨워, 몸을 흔들흔들 하면서 진언을 외웠다. 순간, 쌀 걱정도 돈 걱정도 사라졌다. 공양주 보살의 노랫소리에 지나가던 신도가 공양간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돈도 쌀도 떨어졌다면서 노래가 나와?”
“응. 스님께서 이 진언들을 열심히 외우면 쌀이 물과 같이 땅에서 팡팡 솟는데!
옴 밤 밤 밤 밤.”
신도가 말했다.
“정말? 그럼 나도 해봐야겠다. 옴 밤 밤 밤.”
신도도 진언을 외우다 보니 신이 나서 몸을 흔들며 진언을 외웠다.
스님은 내일 먹을 쌀이 없다는 소리에 동네에서 제일 부자인 쌀가게로 갔다. 하지만 쌀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스님은 왜 맨날 쌀을 얻으러 오세요? 자꾸 그러시면 우리도 굶어 죽어요. 아무리 좋은 일을 하신다지만 시주를 다니면서 입만 벌리면 쌀 줘라, 돈 줘라... 이제 듣기도 지겹네요. 스님하고 돈 거래니 쌀 거래는 하기 싫어요.”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돌아섰다.
적정음해 주야신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자, 보리야. 자유자재한 방편은 지금부터야. 쌀가게 주인처럼 나쁜 인연과 어리석음의 고통 따위를 없애게 하여 참회하는 마음을 내게 하고, 모든 험난한 일을 당하는 중생들의 의지처를 마련해주려면, 쌀가게 주인에게 돈이나 쌀보다 더 귀한 게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어야 해. 더러운 강물이 큰 바다로 가면 증발하여 다 없어지듯 욕심을 버리게 하고, 스님도 진언을 열심히 한 공덕으로 쌀 걱정 돈 걱정 없이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어려운 중생들을 돌보는 의지처가 되게 할 것이다. 그것이 자재한 방편이란다. 또 명심할 것은 부자도 돈이 아까워 인색해서 쓰지 않으면 그는 거지처럼 살 것이고, 거지도 마음을 부자처럼 내어 서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그가 바로 부자이니라.”
선재 동자와 보리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주야신을 우러러보았다. 보리는 스님이 걱정 없이 편안히 살 수 있게 된다는 소리에 눈물을 흘렸다.
“나도 저 스님처럼 열심히 사다라니를 외워야겠어요. 그러면 우리집도 부자가 될 것 같아요.”
선재 동자가 웃으며 보리를 놀렸다.
“야, 너는 지금도 외워야 할 진언이 많은데, 언제 다 할래?”
보리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진다.
“뭐... 종이에 다 써서 외우면 되지. 항마진언, 법신진언, 신묘장구 대다라니 또 사다라니.”
선재 동자가 말했다.
“너는 하루 종일 진언만 외워도 배부르겠다.”
적정음해 주야신이 보리를 안아주면서 말했다
“그게 바로 생활 속에 진언이라는 거지. 불자로서 십 바라밀을 행하고 진언을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이 다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 삼매 바다에서 모든 부처님 뵙고, 낱낱이 부처님 뵙는 바다에서 모든 지혜 광명 바다를 다 얻을 수 있단다. 자, 잘 알아들었으면 너희들은 이제 수호일체 주야신을 만나러 가거라.”
선재 동자와 보리는 합장하고 물러났다.

-2022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