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스님의 동화로 읽는 화엄경 이야기】하나의 먼지 속에 시방세계 있는 도리 보여줘
㊲ 한 조각 먼지 속에서 시방세계 보시는 보구중생묘덕신
선재 동자와 보리는 다시 마가다국의 보리도량에서 희목관찰 중생신이 추천한 보구중생 묘덕신을 친견하고 그가 선재 동자를 위하여 신통력으로 모든 중생을 굴복시키는 보살의 해탈을 보여주자, 선재 동자는 매우 기뻐하며 예배를 올리고, 한 마음으로 우러러보며 말했다.
“여러 가지 거룩한 모습으로 아름답게 꾸미고 중생들을 보호하며 때와 시간에 맞추어 교화하시는 보구중생 묘덕 주야신이시여! 저에게 보살도를 일러주시옵소서.”
그러자 선지식이 선재 동자를 위하여, 다시 아름답게 장엄한 몸의 양미간으로부터 광명을 놓아, 그 광명이 일체 세간을 널리 비춘 뒤, 선재 동자의 정수리로 들어가서 그의 활약을 보게 해주며 말했다.
“나는 이름 그대로 보통 사람들을 구하는 데 있어 묘한 덕을 베푸는 보구중생 묘덕신이다. 내가 지금 너의 정수리로 들어가 밝은 빛으로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려 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그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는지를 잘 보아라.”
선재 동자가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그곳은 아주 오래되고 누추한 아파트 주차장이었다. 장애인 여자가 주차장을 개조해 칸칸이 방을 만들고 오갈 데 없는 할머니들에게 돈을 받고 살게 해주고 있었다. 그 중, 한 할머니는 하루 종일 똑같은 말만 하고 있었다.
“이보세요. 아무나 내 말 좀 들어주우, 나는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아들은 큰 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르고, 며느리는 아들 죽으면 언제 도망갈지 모른다우, 그리고 어릴 때부터 키웠던 손녀도 저 혼자 외국으로 도망갔다우. 나는 젊었을 때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키우며 사느라고 열심히 살았는데, 인제 보니 내 인생이 너무 고달프고 외로워서 죽고만 싶어요. 너무 서럽고 세월이 무서운데다가 언제 죽을지 몰라 두려워요.”
그때 지나가던 장애인 여자가 말을 걸었다.
“할머니, 듣고 보니 사정이 참 딱 하시네요. 저도 몇 년 전에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나무 둥치가 내 발에 떨어져 두 발이 부러졌지 뭐예요. 의사가 휠체어에 앉아서라도 운동은 하라고 해서 이 길로 계속 다니고 있는데, 할머니가 계속 똑같은 말만 하고 있으니까 내가 딱해서 도와주려고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세요. 제가 다 사드릴게요.”
할머니는 잘 걷지도 못하는 몸을 일으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시고 도와주신다니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며칠 동안 먹을 반찬이 없으니 시장 가서 좀 사다주세요. 그리고 나머지 돈은 당신이 가지세요.”
장애인 여자가 말했다.
“반찬 몇 가지 사는데 돈을 많이 주시네요. 돈이 많으신가 봐요.”
“아이고, 돈은 좀 있어요. 나라에서 연금도 주고 남편이 남겨놓은 재산도 좀 있어요.”
“네네…. 그렇군요. 제가 다리는 불편하지만, 정성껏 도와드릴게요. 저를 믿고 의지하며 사세요.”
그러나 사실, 그 여자는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을 등치고 다니는 전문 사기꾼이었다. 반찬값도 배를 불려서 말하고, 심부름 값으로 필요하지 않은 돈도 요구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녀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어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면서 말했다.
“나는 이제 아무도 없으니, 당신이 나를 끝까지 지켜 주고, 내 죽으면 이 방 보증금 빼서 장례 치러주고 남은 돈은 다 가지시우.”
여자는 잘 닦지 않아 누레진 이빨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아이고 아무 염려 마시고 편히 계세요. 제가 잘해드릴게요.”
할머니는 혼자 외롭게 죽을 생각에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도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선재 동자와 보리는 그 모습을 보고 분개했으나, 보구중생 묘덕신이 선재 동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 할머니를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이제 딴 곳으로 가보자.”
선재 동자가 눈을 돌려 보니 그곳에는 젊고 예쁜 보살이 기도하고 있었다.
“부처님. 저의 남편과 자식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지켜 주시고 도와주세요. 그리고 들리는 소문에, 저희 어머니가 나쁜 여자의 꾐에 빠져 돈을 탕진하고 있다 하니까, 어머니도 꼭꼭 지켜 주세요. 지금은 제가 돈이 많이 없어 가볼 수가 없으니, 아무쪼록 부처님께서 우리 가족을 지켜 주세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예쁜 보살이 너무나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걸 보고, 보구중생 묘덕신이 말했다.
“아마도 아까 그 할머니 며느리 같은데 돈이 없다고 하니 우리가 할머니 곁으로 데려다주자.”
선재 동자와 보리는 도와준다는 말에 기뻐서 눈을 꼭 감고 묘덕신의 손을 잡았다. 그리 잠시 눈을 떠 보니, 예쁜 보살이 할머니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아니, 어머니 이게 어떻게 된 일 이예요? 말 좀 해보세요.”
할머니가 반가워하면서도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네가 연락도 잘 안되고, 아들놈은 전화도 안 받고 손녀도 여기 없고….”
예쁜 보살이 말했다.
“연락이 왜 안 돼요? 어머니가 할 말 없다고 자꾸 끊으셨잖아요. 그리고 저 사람은 누구예요?”
휠체어에 탄 장애인 여자가 말했다.
“나는 할머니를 돌봐 드리고 있어요. 아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고 며느리도 언제 도망갈지 모르고, 손녀도 나가서 안 들어온다며 죽을 때까지 돌봐 달라고 하네요.”
예쁜 보살이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아니, 아들은 왜 죽고, 며느리는 왜 도망간다는 거예요?” 할머니가 손을 벌벌 떨면서 대답했다.
“대장암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그랬지.”
예쁜 보살이 양손을 허리에 딱 올리더니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다 필요 없고 이 방 당장 빼세요. 사람 사는 곳이 창문도 하나 없고, 어두컴컴하고 더럽기는 또 얼마나 더러운지. 이곳에 사시면 큰일 나요. 병에 걸려 죽는다고요. 어머니는 이렇게 살고 싶으세요?”
할머니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다 싫고 죽고만 싶다.”
“죽기는 왜 죽어요. 죽고 싶은 사람이 아들 병원비도 안 대준다고 하고, 죽을 놈은 빨리 죽게 내버려두라 하셨어요? 산 사람이나 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제가 당신 아들 살리려고, 삼 년 동안 밤낮으로 간호하면서, 먹고 살려고 얼마나 애썼는데요. 그러는 저를 못 믿고 저런 사기꾼 말을 믿고 의지하시나요? 그렇게도 제게는 돈 주기가 싫으신가요. 어머니, 정말 너무하시네요. 그동안 애썼다고 하지는 못할 망정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제정신이기는 하신가요?”
그리고 이틀 동안 장애인 여자와 싸움 끝에 방을 빼고, 할머니를 새로 지은 좋은 집으로 이사시켰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예쁜 보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이고,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세상 빛도 못 보고, 언제 죽을지 두려움에 떨다가 있는 돈 다 잃고 죽을 뻔했구나. 정말 미안하고 너무 고맙다. 그리고 죽어가는 내 아들 살려 줘서 감사해.”
보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고, 선재 동자는 보구중생 묘덕신의 지혜와 신통력을 보고 환희심과 존경심이 불타올랐다. 중생들의 공포라는 고통을 모두 떠나게 하고 구원하는 아름다운 덕을 갖추신 묘덕신에게 다시 한번 예를 갖추었다. 절을 받으며 묘덕신이 말했다.
“잘 보았느냐? 저 할머니처럼 고통이 심하면 분별력을 잃어 수행하거나, 선행을 하거나, 보살행을 하거나 하는 일들을 일체 할 수 없게 된다. 고통에 시달리느라고 그와 같은 일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게 되지. 그러므로 고통이 심한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우선하여 고통을 없애게 하는 일이 급한 일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이고득락이라 하지 그러나 이 모든 현상이 낱낱이 작은 먼지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란다. 단순하게 ‘하나의 먼지 속에 시방세계가 있다는 일미진중 함시방’ 정도가 아니라 한 먼지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세세하게 보게 되는 거지. 따지고 보면 다 티끌처럼 부질없는 없는 일들에 중생들은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있어서 어리석은 중생들이라 해. 하지만 우리 선지식들이 그러한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묘한 덕을 베풀고 있단다. 그러므로 다음은 고요한 바다의 음성으로 각각의 강물이 모여서 한바다가 되게 해주는 적정음해 주야신을 찾아가거라.”
선재 동자와 보리는 그에게 합장하며 말했다
“제가 묘덕신 선지식을 만나 원만한 광명을 만나게 되니, 마음에 대 환희심을 일으켰사옵니다. 저희도 보살도를 이루며 사람들에게 광명을 놓아 묘한 덕을 이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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