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스님의 동화로 읽는 화엄경 이야기】남을 위한 보시행이 가장 큰 덕목이자 수행
㊱ 기쁨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희목관찰 중생신
선재 동자는 마가다국 보리도량을 떠나지 않고 희목관찰 중생신을 친견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지식을 친견하면 이루지 못할 불법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불법을 성취하는 근본은 선지식을 친견함으로부터 시작한다. 35명의 선지식을 만나면서 나는 언제나 존중하고 인연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려는 마음이다.’ 그래도 혹시 소홀하게 대하지 않았나 싶어 저절로 이마를 딱 쳤다.
보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오빠, 왜 그래? 이마를 왜 때려?”
선재 동자가 멋쩍은 웃음을 날리며 말했다.
“으응…. 내가 혹시 선지식님들에게 소홀하게 대한 적이 있나 싶어서.”
보리가 그 말에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무슨 소리야, 오빠는 늘 예의를 갖추고 존경심을 담아 대했잖아. 내가 가끔 버릇없이 함부로 대했지, 근데 그건 버릇이 없다기보다 몰라서 그래. 창피하게도. 흐흐”
그때 희목관찰 중생신이 말하였다.
“나는 기쁜 눈으로 중생을 관찰하는 밤의 신이다.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십바라밀이 꼭 필요한데 첫 번째 보시바라밀, 두 번째 지계바라밀, 세 번째 인욕바라밀, 네 번째 정진바라밀, 다섯 번째 선정바라밀, 여섯 번째 지혜바라밀, 일곱 번째 방편 바라밀, 여덟 번째 원바라밀, 아홉 번째 역바라밀, 열 번째 지바라밀이다.”
선재 동자가 물었다.
“보시, 지계, 인욕바라밀 등은 알겠는데 원바라밀과 역바라밀, 지바라밀은 잘 모르겠어요.”
희목관찰 중생신이 대답하였다.
“말 그대로 원바라밀은 서원을 말하는 거야, 그 서원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거지. 역바라밀은 바르게 판단하고 수행하는 완전한 힘을 말하고, 지바라밀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완전한 지혜를 성취하는 거란다.”
그러자 보리가 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선재 동자가 웃으며 말했다.
“보리, 또 무슨 말인지 모르는구나. 오빠가 나중에 차근차근히 설명해 줄게.”
희목관찰 중생신이 그 모습을 보고 말하였다.
“두 남매 사이가 아주 좋구나. 배려하고 베푼다는 것, 그게 바로 보시바라밀이야. 특히 불교에서는 그 어떤 덕목보다도 우선 하는 것이 보시다. 베풀어주는 일이지. 십바라밀 중 보시바라밀이라는 수행법 하나만 잘 실천한다고 하면 구십 프로는 성공한 거지. 베푼다는 것이 사실은 힘든 거야. 남을 위해 보시행을 한다는 것은 기본 정신을 갖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거든.”
그러더니 희목관찰 중생신은 모공에서 한량없는 몸의 구름을 내어 선재 동자와 보리를 놀라게 하였다.
“자, 보아라. 나의 몸 구름 속에서 보시바라밀이 어떠한지를….”
그러자 수없이 많은 몸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마치 영화처럼 장면 장면이 떠올랐다.
그것은 어떤 노인이 미역이니 조기 두름을 팔러 다니는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돈을 모아서 젊은 청년에게 다 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노인의 가족들에게는 돈을 주지않고 청년에게만 주니까 노인의 아들과 딸들이 화를 내고 있었다. 급기야 큰딸은 울면서 소리쳤다.
“왜 우리는 공부를 안 시켜 주고 장손 오빠만 대학을 보내는 거예요? ”
노인이 말했다.
“너희들은 초등학교만 나오면 됐지, 장손이 대학을 가야 나중에 너희들을 잘 돌봐 줄 거야.”
“나중 일을 어떻게 알아요? ”
“시끄럽다. 종중 땅이나 선산도 다 장손 명의로 돌려놔 줄 거야.”
큰딸이 소리쳤다.
“아버지는 장손만 눈에 보여요? 우리는 다 아버지 자식이고 장손 오빠는 큰집 자식인데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큰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으니, 나라도 장손은 공부시켜야 해. 그래야 우리 집안이 잘 살 수 있지.”
장면이 바뀌어 노인은 돌아가시고 장손은 슬프게 울고 있었다. 노인의 가족들은 모두 다 장손을 손가락질하며 원망하고 있었다. 큰딸이 말했다.
“이제 아버지도 돌아가셨으니, 땅도 나눠 주세요. 그동안 받은 재산도 꽤 되잖아요.”
하지만 장손은 말이 없었다.
“정말 안 주실 거예요? 그렇게 파렴치하게 살면 나중에 죄받아요. 얼마나 잘 사나 두고 봅시다.”
다음 장면은 장손이 선산에다 조상들의 묘를 다 모시고 정갈하게 꾸며 놓아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하였다. 급기야 동네에서 명소가 되어 사람들이 구경하러 오고 있었다. 몸 구름이 또 보여준 것은 아주 잘 지은 삼층집 옆에 창고같이 허름한 집이 이었다.
장손이 말했다.
“고모, 갈 데가 없으면 당분간 여기 사세요. 텃밭도 있으니까 소일하기도 좋고요.”
고모가 대답했다.
“아이고, 그렇게 해주면 나는 너무 고맙지. 그러면 텃밭에서 나오는 농작물은 내가 다 가져도 되는 거야?”
“그럼요, 팔아서 용돈 쓰셔도 됩니다.”
“역시 장손이네. 고마워, 정말 고맙네.”
그리고 세월이 흐르자, 고모가 장손을 원망하였다.
“지만 저렇게 고대광실에 살면서 나는 여기다 처박아 두고…. 눈꼴시어서 못 보겠네.”
그 말을 들은 장손이 말했다.
“아이고,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십 년간 사셨으면 따로 선처를 해드려야 했는데…. 그간 고추도 팔고 배추랑 무 농사도 지어 팔고 하셔서 재미나게 사시는 줄만 알았죠. 죄송합니다. 저기 조그만 집 마련했으니까 거기로 이사 하세요.”
다음 장면은 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가족들이 다 모여 있었다. 큰딸이 말했다.
“나는 아버지가 공부도 안 시켜 줘서 평생 원망했지, 하지만 죽기 살기로 노력해서 이제는 장손 오빠만큼은 살아. 그래도 나를 고등학교까지 시켜 줬으면 더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작은딸이 말했다.
“언니도 인제 그만 아버지 원망해. 아버지 돌아가셨어도 귀가 따가울 거야. 이제는 편하게 보내드리자. 우리 공부 안 시켜 줬어도 시집가서 잘살고 있잖아”
큰딸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장손이 잘해야 우리 집안이 핀다고 했는데, 오빠는 자기들만 잘 살지 우리를 도와주는 건 없는 것 같아.”
큰아들이 대꾸했다.
“글쎄…. 그런 것 같아.”
평소에 잘 웃던 장손은 날이 갈수록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말수가 줄었다.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뜨게 되자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이에 둘째 딸이 문안 인사를 갔다.
“장손 오빠, 집안에만 있으면 건강에도 안 좋아요.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러 오시고 사촌 형제들하고도 사이좋게 지내시고요. 너무 왕래를 안 하시니까….”
장손이 한참 지나서야 대답했다.
“사촌이 아니라 팔촌들도 나한테 돈을 안 가져간 사람이 없다네. 심지어 너의 큰오빠는 나 몰래 종중 땅을 팔아먹은 걸 내가 다시 사 놓았어. 사람들은 내가 구두쇠고 인정머리 없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무척 속을 끓이며 살았어. 사촌들은 일이 생길 때마다, 나보고 돈 달라고 왔었거든. 마치 맡겨 둔 돈 있는 것처럼, 지난 십 년 동안 집도 사주고 빚도 갚아주고 했는데, 도와주면 뭐 하니 잘 살지도 못하는데 그러니 도와 주는 재미가 없어. 딱 두 사람만 내 돈 안 가져갔지. 큰애랑 둘째 너, 나머지는 죄다 도와줬는데 맨날 안 도와준다고 투정만 부리니까 이제는 너희들하고 말도 하기 싫다.”
둘째 딸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머나,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근데 왜 말하지 않았어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지. 돈을 가져간 사람들은 알고 있을 테니까. 나도 작은아버지가 돈 한푼 없는 나를, 친자식보다 더 위해 주시고 공부시켜 주고 재산도 있는 대로 다해주셔서 이만큼 살지만, 작은아버지가 내게 해주신 대로 베풀려고 무던히도 애썼지. 장손이라는 짐이 십 년동안 이렇게 무거울지 몰랐어. 그래도 내가 돈이 있는 한, 도와줘야 된다고 생각해.”
희목관찰 중생신이 한량없는 몸 구름을 거두며 말했다.
“자, 보았지? 장손은 그동안 남몰래 작은 집 가족은 물론이고, 이웃들에게도 많은 자선과 선행을 베풀었다.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 올리고 기도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어. 따라서 그가 베푼 선행과 공덕으로 나중에, 반드시 좋은 과보를 받을 것이다. 이것이 아무런 대가 없이 배려하고 베푼 것, 그게 보시바라밀이야. 작은아버지의 은혜를 잊지 않고 묵묵히 그들 가족과 어려운 이웃을 돌봐준 것, 그러나 한 번도 자랑하지 않았다는 것.”
선재 동자는 희목관찰 중생신의 십바라밀은 가르침에 좋은 스승을 만나면서부터 비로소 눈이 뜨이고, 무엇을 알게 되는 그것이 선지식의 역할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십바라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보시 바라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많이 배려하고 베푸는 것, 나도 보리에게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싶어, 저도 모르게 보리의 손을 꼭 잡았다. 보리가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자, 무안해져서 슬며시 웃어준다. 그에 희목관찰 중생신도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다음으로 밤 맡은 신은 이름이 중생을 널리 구호 하는 묘한 덕이 있는 보구중생묘덕신을 찾아가 그에게 보살도를 물으라.”
-2022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