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태고】회암사 가면서 들은 화엄경 입법계품에 감응

소설 태고 13 - ‘출가의 길’에서 ‘화엄의 길’을 깨닫다

2024-12-27     유응오

양일이 출가한 사찰은 경기도 양주시 천보산에 위치한 회암사(檜巖寺)였다. 회암사가 언제 창건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국여지승람》에 고려 명종 4년(1174)에 금나라 사신이 다녀갔다는 기록이 명시돼 있는 것으로 봐서 이전부터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양일이 출가했을 무렵(1313년) 회암사는 대웅전과 몇 개의 요사채가 있는 작은 암자였고, 대중도 1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고려 충숙왕 15년(1328)에 이르러서는 천축의 승려 지공(指空)이 인도의 나란타사(羅爛陀寺)를 본떠 266칸짜리 대가람으로 중창했다. 회암사는 충목왕 즉위년(1344)에 나옹(懶翁) 선사가 깨달음을 얻은 사찰이었다. 우왕 2년(1376) 나옹 선사는 회암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절을 중창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 이성계는 나옹 선사의 제자인 무학 대사를 회암사에 머무르게 하였다. 이성계는 회임사 불사가 있을 때마다 대신을 보내서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이성계는 왕위에서 물러난 뒤 회암사에서 수도했다. 그런 연유로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던 조선왕조 내내 회암사는 왕과 왕후들의 비호를 받았다.

회암사는 양일의 속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회암사로 가는 도중 길가에 진달래, 철쭉, 개나리 등 온갖 꽃들이 만발한 것을 보고서 광지 스님이 일양이 들으라고 말했다.
“저 꽃밭을 보아라. 꽃과 꽃이 어우러져서 꽃밭을 이루는 것이다. 꽃들은 제 각각 피어서 자태를 뽐내는 동시에 함께 어우러져서 조화를 이룬다. 저 꽃밭의 조화와 화엄(華嚴)의 가르침이 다르지 않다.”
일양이 울긋불긋한 꽃밭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일양의 얼굴에 꽃물이 스미어서 환해졌다.
“화엄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광지 스님이 입가에 미소를 짓다가 대답했다.
“화엄은 잡화엄식(雜華嚴飾)에서 나온 말이다.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한다는 의미다. 《화엄경(華嚴經)》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직후에 자신의 깨달음을 있는 그대로 설법한 경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드넓기가 끝이 없어서 이 세상의 두두물물(頭頭物物)을 아우르고 있다. 저 꽃밭을 보아라. 각기 다른 빛깔과 모양이 어우러져서 분별을 넘어선 하나의 이상적인 불국토를 만들고 있지 않느냐? 부처님께서는 지혜와 광명으로 중생들을 교화하셨다. 지혜와 광명이 가득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로 연화장장엄세계(蓮華藏莊嚴世界)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 현상이 서로 끊임없이 연관돼 있다고 설하셨다. 저 꽃밭에 각각의 불성(佛性)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각각의 꽃만 보면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하나의 꽃밭을 보면 무한한 연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느니라.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여서 세상 만물이 서로 원융(圓融)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한즉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부처의 성품을 지니고 있느니라.”

광지 스님과 일양이 저자거리에 이르렀을 때 게딱지처럼 붙어 있는 초가집들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광지 스님과 일양이 지나가는 것을 본 주막의 유녀가 뛰어나왔다. 얼굴에 꽃단장을 한 유녀에게서는 야릇한 냄새가 났다. 유녀가 광지 스님에게 합장반배한 뒤 말했다.
“스님 일행에게 공양을 대접하고자 합니다.”

삽화=유영수 화백.

 

광지 스님은 유녀를 따라서 주막으로 들어갔다. 어쩔 줄 몰라 하며 길 위에 서 있는 일양에게 광지 스님이 뒤를 돌아보면서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너른 마당에 화초들이 피어 있었다. 처마 아래에는 초롱들이 걸려 있었다. 대낮이어서 촛불을 밝히지 않았지만 내리쬐는 햇빛이 초롱을 투과하면서 붉고 푸른빛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광지 스님과 일양이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머지않아서 유녀가 소반을 들고 왔다. 소반에는 쌀밥과 된장국과 나물 몇 가지가 놓여 있었다. 정갈한 밥상이었다. 광지 스님이 수저를 드는 것을 보고서 일양도 따라서 수저를 들었다. 어린 일양으로서는 낯선 체험이었다. 주막 안으로 들어간 것도, 유녀를 본 것도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시장한데도 좀처럼 입맛이 없었다. 밥을 다 먹은 뒤 광지 스님과 유녀에게 “잘 먹었습니다. 성불하십시오.”라고 짧게 말했다. 광지 스님과 일양을 배웅하기 위해서 유녀는 대문 밖까지 따라 나와서 극진한 자세로 합장반배를 했다. 길을 걸으면서 광지 스님은 일양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떤 이는 가는 데마다 부처님께서 온 세계에 가득함을 뵈옵지만 어떤 이는 그 마음 깨끗하지 않아 무량겁에 부처님을 보지 못한다. 어떤 이는 가는 데마다 부처님 음성 그 소리 아름다워 기쁘게 하나 어떤 이는 백천만 겁을 지내도 마음이 부정해 듣지 못한다.”
광지 스님은 일양의 속내를 꿰뚫어보았다. 일양은 유녀가 차려준 밥상을 더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광지 스님이 말을 이었다.
“화엄경 입법계품의 한 구절이니라. 화엄경 입법계품은 선재 동자가 53선지식을 차례로 찾아가 그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구도기(求道記)다. 구도의 길에서는 신분 고하의 구분이 없다. 선재 동자가 만나는 53선지식 중에는 도량신, 주야신, 천(天) 등 신의 지위에 놓인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바라문, 비구, 비구니 등 수행자들도 있고 왕, 부자, 현자 등 사회의 상류층도 있고 뱃사공, 유녀 등 사회의 하류층도 있느니라.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의 여정에서는 누구나 스승이 될 수 있다. 선재 동자처럼 몸소 보리심을 발해 찾아 나설 때 선지식을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깨달음은 메아리와 같아서 내가 간절한 마음으로 부를 때 응답하는 것이니라.”
일양이 놀란 표정을 지은 뒤 물었다.
“뱃사공이나 유녀도 선지식이 될 수 있다고요?”
광지 스님은 일양에게 화엄경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바시라 뱃사공과 바수밀다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 상세히 알려줬다.

바수밀다 여인은 선재동자가 찾아왔을 때 “어떤 중생이 애욕에 얽매어 내게 오면, 나는 그에게 법을 말해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의 집착 없는 경계의 삼매를 얻게 한다. 어떤 중생이고 잠깐만 나를 보아도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의 환희삼매를 얻는다. 어떤 중생이고 잠깐만 나와 이야기해도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의 걸림 없는 음성삼매를 얻는다. 어떤 중생이고 잠깐만 내 손목을 잡아도 탐욕이 사라지고 보살의 모든 부처 세계에 두루 가는 삼매를 얻는다.”고 설했다. 광지 스님은 “누구에게나 분별없이 대하는 바수밀다 여인이기에 중생에게 삼매를 줄 수 있는 것이다. 바수밀다 여인의 해탈 법문은 중생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는 중생을 교화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광지 스님의 말을 듣고서 일양은 중생의 욕망에 따라 몸을 나타내는 바수밀다 여인이 관세음보살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청정한 마음을 지닌 바수밀다 여인이기에 오탁악세(五濁惡世)의 법으로써도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그런가 하면 선재 동자가 찾아왔을 때 바시라 뱃사공은 “나는 소용돌이치는 곳과 물이 얕고 깊은 곳, 파도가 멀고 가까운 것, 물빛이 좋고 나쁜 것을 잘 안다. 해와 달과 별이 운행하는 도수와 밤과 낮과 새벽 그 시각에 따라 조수가 늦고 빠름을 잘 안다. 배의 강하고 연함과 기관의 빡빡하고 연함, 물의 많고 적음, 바람의 순행과 역행에 대해 잘 안다. 이와 같이 안전하고 위태로운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갈 만하면 가고 가기 어려우면 가지 않는다. 나는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해 이롭게 한다.”고 말했다.
바수밀다 여인이 자비의 화현(化現)이라면, 바시라 뱃사공은 지혜의 화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광지 스님의 말을 듣고서 일양은 유녀를 보고서 속으로 더럽다고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일양은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내가 만나는 모든 것은 부처님이요, 보살님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깨워주는 법사, 선사뿐만 아니라 웃고 울고 까불고 싸우는 저자거리의 모든 사람이 선지식이요. 송아지, 강아지 같은 짐승새끼들도 선지식이요,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무명초들도 선지식이라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