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스님의 동화로 읽는 화엄경 이야기】“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㉟ 바산바연의 스승 보덕정광 주야신
보리와 선재 동자가 마가다국 멀지 않은 곳, 보리도량의 보덕정광 주야신을 친견하려 가는 동안 보리가 물었다.
“오빠, 주야신님은 무얼 하시는 분들이야?”
선재 동자가 답했다.
“아이고, 우리 보리도 이제 물어볼 줄도 알고 이제 다 컸네. 조금 있으면 보살도를 닦아 선지식이 되겠는걸, 하하하…. 주야신 같은 사람들은 밤을 맡아서 주관하는 신이라는 뜻이야. 밤에는 모든 사람, 짐승들과 식물까지도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면서, 낮을 위해 모든 기운을 모아두지. 그래서 우리가 밤에는 편안히 잘 자고 아침에는 씩씩하게 잘 살게 기도 하면서 자는 거야.”
이에 보리가 신이 나서 대답했다.
“맞아, 밤에 잠을 못 자면 아침에 눈도 안 떠져. 그리고 하루 종일 졸려.”
선재 동자가 보리를 쳐다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실은 밤이라는 그 자체가 곧 신이며 보살이며 부처님처럼 위대하지. 밤의 역할과 밤이 주는 기운을 생각해 봐. 밤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밤이 갖는 의미는 실로 무한하지,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힘을 모으며, 깊이 생각하면서 잠을 잘 수 있게 되는 기본이 되는 거야. 따라서 밤은 이러한 밤의 역할과 기운들이 낮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지. 그러므로 주야신 같은 사람들은 밤의 세계를 더욱 더 잘 되게 하려고 있는 거야.”
보리가 잘 알았다는 듯, 손뼉을 딱 쳤다.
“아, 그래서 바산바연 주야신이 밤에 왕따당해 벤치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돌봐 주셨구나.”
선재 동자도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주야신들이 그래서 선지식인이 된 거야. 이번에 만나는 보덕정광 주야신님도 고요한 선정의 즐거움을 지니신 착하고 좋은 복을 짓는 분이야.”
“우 ∼ 와, 빨리 만나보고 싶다.”
보리가 신이 나서 선재 동자를 앞지르며 뛰어갔다.
그들이 보덕정광 주야신을 보고 다가가 오른쪽으로 돌고 합장한 뒤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오오오, 너희들이 바산바연이 보낸 아이들이구나. 그는 내가 오랫동안 데리고 가르친 나의 제자야. 가끔 골치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 말고는 좋은 제자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산바연 주야신이 그 앞에 나타났다.
“아이고 스승님, 그새 제 말을 하고 계셨군요. 오늘도 예측 하신 대로 골치 아픈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요.”
“이번에는 또 누구냐?”
바산바연 주야신이 말했다.
“저 아이 말로는 자기가 공주라는 데 어느 나라 공주인 줄은 모르겠고, 또 공주라 하기에는 옷도 더럽고 품위가 없이 말과 행동이 얌전하지 않은 게 공주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것 같습니다요.”
보덕정광 주야신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따지면 너도 내 앞에서 품위가 없지 않으냐.”
바산바연 주야신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저야, 스승님 앞이 편하고 좋아 어리광을 부리는 거지요. 그리고 우리 사이는 오래됐잖아요.”
“아이고, 이 놈아! 오래될수록 예의는 지켜야지. 근데 저 아이는 행색이 왜 저러냐?”
아이가 주먹을 꽉 지며 대답했다.
“나는 마가다국의 공주다. 너희들은 나를 받들어 모시고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대령하도록 하여라.”
보덕정광 주야신이 말했다.
“너는 공주라면서 어째서 세수도 하지 않고, 이도 닦지 않아 구린내를 풍기고, 옷도 더럽게 입고 왔느냐?”
아이가 말했다.
“내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오빠가 한 분 있었는데 나를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가 버렸어. 그 뒤로 나는 세상이 싫고 미워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 다만 나를 버린 오빠를 원망하며 나를 버렸으니 빨리 죽기를 바라고 있지. 비록 공주라고 하지만 부모님 일찍 돌아가셔서, 공부를 하지도 못 해보고 들은 게 없어. 그래도 나는 공주야. 너무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너희들이 내게 해서 바치면 되잖아.”
바산바연 주야신이 말했다.
“얘가 도통 말을 듣지 않아요. 그래도 공주라고 사치스럽고 허황된 꿈만 꾸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보덕정광 주야신이 아이를 보고 정색을 하였다.“너는 진정 공주가 되고 싶고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먹으며 화려한 궁전에 살고 싶으냐?”
아이가 말했다.
“당연하지. 그리고 오빠도 찾아서 데려다줘야 해.”
보리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죽기를 바래 놓고 왜 찾는거야... 그러자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왔다.
“대책이 없구만. 무슨 공주가 이 모양이야? 어른한테 반말을 하지 않나. 좋은 거 달라고 당당하게 떼를 쓰면서 자기는 노력하는 게 없어. 너무 건방지고 가정교육이 안 돼 있네.”
선재 동자가 보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큭큭, 가정교육? 그게 뭔데?”
보리가 갑자기 무안해져 얼굴이 빨개지면서 말했다.
“왜? 엄마가 집에서 이거는 해라, 저거는 하지 마라, 잔소리하면서 우리를 가르치시잖아. 그게 가정교육이지.”
선재 동자가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보리는 가정교육을 잘 받았구나. 그래서 똑똑하고 예쁜 아이지?”
그때 보덕정광 주야신이 말했다.
“마가다 공주야. 내 말을 잘 들어라. 네가 진정한 공주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앞으로 부처님의 공덕 수행 열 가지 법을 배워야 한다. 첫째는, 맑은 정신으로 부처님을 항상 보고. 둘째는, 깨끗한 옷을 입고 부처님의 잘생긴 모습을 관찰하고. 셋째는, 부처님의 넓은 자비심을 배우고. 넷째는, 한량없는 복을 지어서 그 복을 아껴가며 쓰는 법을 배우고. 다섯째는, 부처님 법의 광명 바다를 알고. 여섯째는, 부처님의 모든 털구멍에서 나오는 보배와 빛, 불꽃을 볼 줄 알아야 하느니라. 일곱 번째는, 부처님의 변화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엎드려 그를 존경하는 법을 알고. 여덟 번째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에 따라 행동하고. 아홉 번째는, 부처님의 그지없는 이름 바다를 알고. 열 번째는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자재력을 아는 것이다. 할 수 있겠느냐?”
공주가 두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저는 싫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기도 싫고, 밥 먹기도 싫은 데 무슨 열 가지 부처님 법을 배우라는 거에요?”
보덕정광 주야신이 그 말에 화를 내지 않고 아주 조용하고 맑은 눈으로 공주의 손을 잡고 말했다.
“공주야, 나와 바산바연 주야신도 똑같이 부처님의 열 가지 법을 수행 하였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삼세의 부처님을 두루 살피며 관찰하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서 부처님처럼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게 성불이라는 거지. 열심히 기도하고 수행하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야. 그것이 네가 공주로 살아갈 수 있는 단 한가지 유일한 방법이다. 알겠느냐?”
공주가 갑자기 흐느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태까지 아무도 나를 공주로 대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화가 나서 늘 고집부리고 억지만 부렸어요. 누구도 나에게 다정한 말을 해주지도 않았고요. 오빠도 없고 정말 살기 싫어요.”
보리는 그 말을 듣자, 공주가 불쌍해졌다. 하지만 다 자기가 뿌린 씨앗이고 저질러 놓은 일이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보리가 망설이는 동안 선재 동자가 공주를 일으켜 앉아 주었다. 공주의 옷은 더럽고 냄새가 났지만, 선재 동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그러니까 공주야, 이제부터 우리가 도와줄게. 열심히 해봐. 그러면 사람들이 너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너를 공주님처럼 위해 줄 거야. 그때가 되면 네가 바라던 대로 좋은 옷과 좋은 음식들이 네 앞에 쌓이게 될 거야.”
보리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그냥 부처님 생각하고 섬기며 기도하면 되는 거지.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는 습관도 중요해. 그리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깨끗이 청소하고 정리 정돈도 잘하고….”
그 순간 보리는 엄마가 잔소리하던 걸, 자신이 똑같이 하는 것을 알았다. 혼자 슬며시 웃고 있는 것을 보고 선재 동자가 놀렸다.
“역시 가정교육을 잘 받아서 보리는 품위가 있네.”
바산바연 주야신이 보덕정광 주야신에게 합장하며 꾸벅 절하였다.
“역시 스승님 이십니다요. 스승님께서 늘 말씀하시던 대로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참고 견디라는 것이지요. 저 공주도 이제 느끼는 바가 있으니, 천방지축으로 날뛰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또 보리와 선재 동자가 지켜보고 도와준다고 했으니 우리 밤의 신들도 잘 돌보면 될 것 같습니다.”
“역시 잘 배웠구나. 이제 선재 동자와 보리는 공주를 데리고 더 남쪽에 있는 희목관찰 중생신에게 보살도를 물으라. 그는 기쁜 눈으로 중생을 보는 주야신이다."
-2022년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