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사바 이야기】백탁(白濁)

2024-11-11     손택수

신미나(1978~ )

한 톨의
히말라야 소금이 입안에서 녹듯이
천천히 자신을 느껴

깊이 아파본 신의 허파가
하얗게 말라가는
산 위에서   

                                     (《백장미의 창백》, 문학동네, 2024)

 

화학식 염화나트륨(NaCl)엔 기호만 있을 뿐 소금은 없다. 소금에 대한 감각적 경험이나 얽힌 이야기 혹은 이미지도 없다. 소금이란 언어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파키스탄 펀자브 지역의 알리쿠람 산맥에서 채굴된다는 히말라야의 암염은 소금이 잃어버린 시원을 향해 시인을 이끌어간다. 입안에서 소금이 녹는 과정은 모든 생명체의 기원을 행한 여정이기도 하고 소비되기에 급급한 일상을 정지시킨 뒤 ‘천천히 자신을 느끼는’ 여행이기도 하다. 속도를 성찰하는 ‘천천히’의 느림을 나는 느림도 빠름도 벗어난 ‘찬찬히’로 읽는다. 수억 년 지각변동의 역사를 되짚어가는 이 찬찬한 상상력의 운동 속에서 고산과 심해를 모두 품은 크리스탈 구조체가 돋아난다. ‘깊이 아파본’ 자의 ‘한 톨’은 해발로 측정할 수 없다.

-시인ㆍ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