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사바 이야기】상강 아침
2024-10-15 손택수
고두현( 1963~ )
발밑 어두운 줄 모르고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다
바삭,
서릿발
밟은 아침
아뿔싸,
지금
땅속으로
막 동면할 벌레들
숨어드는 때 아닌가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여우난골, 2024)
서리가 아니라 ‘서릿발’이다. 타자의 발을 밟는 낯선 느낌을 환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나열된 일상의 포도를 밟는 습관이 ‘바삭’하는 순간적 경험과 함께 ‘아뿔싸’하는 성찰을 부르면서 ‘빳빳이’ 쳐든 수직적 우월감으로부터 풀려나게 한다. 자연스럽게 동면에 드는 벌레들의 처지에 대한 근심이 따른다. 여기서 시인은 감정이입적으로 측은지심을 투사하지 않는데, 타자와 참으로 소통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참되게 마주하기 위한 신음으로서의 감탄사 ‘아뿔싸’가 선택된 이유이기도 하겠다. 그것은 언뜻 붓다의 유년 시절 풀이 뜯겨나가고 벌레들이 죽어 나가는 쟁기질을 본 뒤에 느낀 슬픔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피조물의 고통이 가슴을 뚫고 들어오게 하는 슬픔으로부터 붓다는 망아 상태의 환희를 경험했다고 한다.
-시인ㆍ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