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스님의 동화로 읽는 화엄경 이야기】매혹적인 눈매가 너무 예뻐,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고…

㉗ 탐욕과 집착을 없애는 바수밀다 여인 (1)

2024-09-10     민제 스님

 

바수밀다는 시장 뒷골목에서 선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기생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험난국의 보장엄성에서 작은 초등학교 동창회가 열렸는데 그들은 삼십 년 전,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이었다. 나모는 동창회 회장으로 바수밀다에게 어릴 적 친구들과 추억여행을 가려는데 같이 가 줄 수 있느냐 부탁하였고, 마침 선재 동자와 보리도 함께 떠나기로 하였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만타는 화구를 챙기고, 소를 키우며 술을 좋아하는 못다남은 ‘맛있다 소주’를 세 상자나 차에 실었으며, 시장에서 과일장사를 하는 아프라띠는 여행 다니면서 먹을 과일을 넉넉하게 바구니에 담았다. 떡장사를 하는 사다남은 뚱뚱한 체구답게 떡도 시루째로 차에 실었다.
“그럼, 나는 물과 음료수를 책임질게.”
보장엄성 시장 뒷골목의 파출소 소장을 맡고 있는 단냐타는 물과 얼음을 채운 음료수를 가득 실었다. 동창회의 총무인 즈바라는 차에 탄 동창들의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서 회비를 걷으며 바수밀다를 소개했다.
“자자…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어렵게 모신 바수밀다 선생님이십니다. 이 분은 오랫동안 여행 가이드를 하시면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시고 또한 사람들의 무리한 욕심과 집착을 없애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같이 박수로 환영합시다.”
바수밀다는 그들의 신나는 환영에 답하듯 고개 숙이며 인사하고 말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 같이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게 도와 드리도록 진심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검푸른 머리카락, 매혹적인 눈매가 정말 선녀같이 예뻐, 모두들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즈바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분위기를 깼다.
“자 자, 여러분! 정신 차리세요. 우리는 삼십 년 전, 작은 초등학교 일 학년부터 육 학년까지 쭉 같은 반을 했던 친구들의 추억 여행입니다. 2박 3일의 일정 중, 오늘은 바닷가를 돌면서 맨 끝에 있는 카브리 설산을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러니 여행 중, 술을 조금만 마시고 등산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못다남이 소주 병에 빨대를 꽂아 먹고 있다가 소리를 질렀다.
“야,야! 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지! 나는 이번 추억 여행이 너무 좋아서 일주일 전부터, 소 키우는 축사를 청소하고 텃밭도 다 정리하고, 집 안팎도 깨끗이 치워 놓고 왔어. 어젯밤에는 너무 설레서 잠도 안 오더라. 근데 이 좋은 날, 어떻게 술을 안 먹을 수 있냐? 나 죽고 나면 산소 앞에다 소주병에 빨대 탁, 꽂아서 놔 달라고 유언도 해 놨어.”
“너는 먹기만 하면 소주를 짝으로 먹잖아, 우리가 너를 삼십 년 동안 지켜봤으니까 잘 알지. 몸도 안 좋다면서 초반부터 작작 먹어.”
파출소장인 단냐타가 못다남을 슬쩍 째려보며 말했다. 화가인 사만타가 인자하게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삽화=서연진 화백

 

“ 오늘같이 좋은 날,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지내요. 못다남은 내가 옆에서 잘 돌보며 술을 많이 못 먹게 할게. 너무 걱정 마.”
사람들은 사만타의 말에 고맙다며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못다남은 술을 많이 먹지 않았는데도 몸이 많이 약해져서 그런 지, 이미 취해 있었다. 카브리 설산으로 가는 도중, 바닷가 해안도로는 굽이굽이 파도치는 물보라에, 백사장을 하얀 날개짓으로 수놓는 갈매기들의 군무로 환상 그 자체였다. 모두들 먹고 마시며 떠드는 동안, 못다남은 코를 드렁드렁 골면서 잠에 빠졌다.
“쟤, 오늘 이상하네. 술을 반도 안 마셨는데 취해서 잠을 자다니, 못다남 어디 아픈거 아니야?”
떡 장수 사다남이 떡을 잘라 친구들 앞에 놓아주며 말했다. 단냐타가 사다남의 말을 받았다.
“그러기는 하네, 오늘 너무 기분이 좋아 빨리 취했나? 술을 한 병도 채 마시지 않았는데….”
“아마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죠.”
갈수록 코를 심하게 골아 탱크가 지나가는 것처럼 콰르릉대는 못다남의 얼굴을 반대로 돌려주며 화가 사만타가 말했다. 한참 후, 차는 어느새 카브리 설산에 도착하고 못다남도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켠다.
“아하 암! 잘 잤다. 어제 밤 잠을 설쳤더니….”
“그래서 코를 골아 콰르릉, 콰르릉 하고 탱크를 밀었나?”
사다남의 말에 모두들 하하하 웃었다.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등산할 준비를 하는 데, 못다남이 오만상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옆에 있는 사만타에게 말했다.
“나는 못 올라갈 것 같아. 잠을 자고 났더니 힘이 없네.”
“내가 도와줄게. 같이 가, 어차피 설산 풍경을 스케치하면서 갈 거라 천천히 올라갈 거야.”
사만타가 못다남의 어깨를 툭툭 치며 용기를 북돋아 주자 총무 즈바라도 함께 거들었다.
“맞아, 우리가 도와줄게. 이래 봬도 삼십 년 우정이잖아, 다 같이 힘을 합하면 못할게 머가 있겠어.”
그 말에 못다남도 힘을 내어 겨우겨우 설산 중턱까지 올라갔다. 모두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고, 사만타는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그리고 단체 사진도 함께 찍었다.
다음 날 아침, 못다남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사만타가 그를 끌어안고 흔들며 깨웠지만 그는 눈을 뜨지 못했다. 바수밀다가 조용히 말했다.
“이번 추억 여행은 여기까지가 되겠어요. 못다남 거사님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네요. 얼른 가족들 품으로 가시는 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출소장 단냐타가 못다남 옆으로 와서 바닥에 눕힌 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였다. 숨을 쉬는지 확인하고, 두 손을 깍지 끼고 가슴뼈 흉골 아래쪽 절반 부위에 두 손바닥을 대고 양팔을 쭉 편 다음, 가슴을 압박하고 풀기를 반복하면서 1분에 100번 정도 가슴을 눌렀다 펴기를 반복했으나, 못다남은 숨을 쉬지 않았다. 인공호흡도 소용이 없자 바수밀다는 집으로 가지말고 근처의 작은 병원으로 급히 방향을 바꾸자고 말했다.
“제가 이런 일을 많이 겪어봐서 아는 데, 잘못하면 가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빨리 병원으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가족들한테도 빨리 연락하세요!”
단냐타는 파출소 비상 연락망을 통해 못다남 가족들에게 현재 상황을 급히 말했다.
“그러니까 사다남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장례식 준비를 해 두세요. 아니, 사다남이 아니고 못다남, 마음이 급하니까 말도 헷갈리네. 그리고 사다남 가족이랑 못다남 모든 친구에게도 연락하고….”
근처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못다남은 숨이 끊어졌다. 총무 즈바라가 바수밀다에게 돈뭉치를 건넸다.
“이건 어제 회비 걷을 때 못다남이 찬조금으로 주었어요. 여행 경비에 보태라고요. 찬조금이 어떻게 병원비로 바뀌었네요. 흑흑! 저승갈 때 노자라도 하게 해주세요.”
추억 여행을 하기로 한 친구들은 모두 슬퍼하며 우느라, 병원 응급실은 초상집으로 바뀌었고 단냐타는 다시 전화를 들었다. 단냐타의 아내에게 말했다.
“못다남이 결국 죽었네. 불쌍해서 어쩌지…. 이렇게 여행 와서 죽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뭐라고? 다시 말해봐, 머? 사다남? 아니, 사다남이 왜 죽어? 사다남 말고 못다남 이라니까….”
친구가 죽어 통곡하고 있던 떡 장수 사다남이 울음을 멈추고 벌떡 일어났다.
“난,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그 바람에 다 같이 울고 있던 친구들이, 갑자기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흐흐흐 웃고 있었다. 단냐타의 소리가 높아지면서 쩌렁쩌렁 울렸다.
“자! 헷갈리지 말고 똑바로 들어. 죽은 애는 못다남이니까 빨리 가족들에게 알리라고…. 머? 사다남 집에 위로하러 갔다고? 아이고…! 사다함이 아니고 못다남이 죽었다고. 못, 다, 남!”
사흘 뒤, 못다남의 장례식에 추억 여행을 간 친구들이 다시 모였다. 동창회장인 나모가 앞장서서 장례를 여법하게 치르고, 못다남의 축사 뒷산에 산소를 만들었다.
그의 묘지에는 함께 카브리 설산에서 찍은 단체 사진과, 빨대가 꽂힌 소주 한 병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묘비에 적힌 문구는 이러하다.
“못다남! 한바탕 잘 놀다 가다.” (다음 편 계속)

-2022년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