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사바 이야기】매우 중요한 참견
2024-08-26 손택수
박성우(1971~ )
호박 줄기가 길 안쪽으로 성킁성큼 들어와 있다
느릿느릿 길을 밀고 나온 송앵순 할매가
호박 줄기 머리를 들어 길 바깥으로 놓아주고는
짱짱한 초가을 볕 앞세우고 깐닥깐닥 가던 길 간다
(《남겨두고 싶은 순간들》, 창비, 2024)
호박은 넝쿨이 스프링처럼 감겨 어디로 튈 줄을 모른다. 여기에 길의 안쪽과 바깥 같은 질서를 주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이다. 자연의 문법은 인간의 일에 참견을 멈추지 않는 힘으로 가득차 있다. 인간의 관점에선 매우 성가실 법한데 애초의 참견은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세계를 위계화 하는 인간중심적인 시선이 극대화되면서 지구 생태계가 신열을 앓고 있는 여름이다.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호박 줄기가 밟히거나 다치지 않을까 염려하여 길 밖으로 방향을 틀어주는 저 사소한 행위 하나가 세계를 다정하게 한다. 호박의‘성킁성큼’과 할머니의‘느릿느릿’이 만나자 마침내 대립과 속도를 넘어선‘깐닥깐닥’의 여유로운 리듬감이 생겨난다. 호박과 앵순 할매의 만남엔 상호 보살핌이 있다. 그러나 여기엔 애착이 없다. 저마다 가던 길을 갈 뿐이다.‘짱짱한 초가을 볕을 앞세운’참으로 아름다운 참견이 아닌가. 인위가 이와 같다면 무위와 다른 것이 아니겠다.
-시인ㆍ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