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사바 이야기】경행

2024-08-12     손택수

안도현(1961~)

일용직 새들이 강으로 가는 소리 들린다 강변에 세숫물 떠다놓았다 고라니는 백사장에 벌써 발자국을 몇컬레나 벗어놓고 숲에 들었다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창비, 2020)

 

좌선이 침묵이라면 경행은 침묵을 통과한 말이다. 그 말이 번다할 수 없다. 단 세 개의 문장으로 이뤄진 트라이앵글. 트라이앵글은 세 변을 잇는 한쪽이 연결되지 않고 비어 있어 울림이 일어난다. 삼각형으로선 불완전하다고 할 조건이 공명을 가능케하는 것이다. 시인이 능수능란한 비유와 상징의 능력, 친절한 설명을 저버린 자리에서 독자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로서 시의 풍광 안으로 진입하게 된다.‘일용직’의 고단한 인간사와‘고라니 발자국 몇켤레’의 습관적인 의인 또한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숲으로 이어진 백사장의 여백을 걷고 싶어진다.‘들린다, 떠다놓다, 벗어놓다, 들다’ 같은 움직씨들로 경행케 하는 시의 참선이 참으로 아득하다.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는‘글로 씌어진 침묵의 오케스트라를 창조해내는 것’이 시라고 했다.

- 시인ㆍ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