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사바 이야기】기능
2024-07-22 손택수
박세미(1987~ )
그에게 스툴이 하나 있었는데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스툴을 거꾸로 세워 두고
스툴의 다리 끝에 올라서는 연습을 했다는 거야.
마치 나뭇가지 끝에 한쪽 발로 서 있는 새처럼.
그리고 마침내 날아갔다는 소문.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스툴의 다리 하나 위에 균형을 잡고 올라섰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고,
그에게 날개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만 왈가왈부했다는 뭐 그런 얘기,
쓸데없는.
《오늘 사회 발코니》, 문학과지성사, 2023
의자는 기능의 노예가 아니다. 인간이 쓸모의 노예가 아닌 것과 같다. 기능과 쓸모가 다하면 버려도 좋다는 생각 때문에 온 세계가 쓰레기 몸살을 앓는다. 사물을 함부로 하는 습관은 인간을 함부로 하는 질병으로 이어진다. 시는 여기에 대한 가장 오래된 항의다. 시인들에게 사물은 놀이를 할 줄 아는 심미적인 세계의 벗들이다. 의자에 지나지 않는 스툴을 새로 바꾸는 저 지난한 노고를 찬미하는 자는 새와 날개의 자동적이고도 습관적인 인식까지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기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물이 인간을 기능적 사유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내게는 선친이 손수 만들어준 유아용 목제 의자가 있는데, 육친의 숨결이 베어있는 의자는 내겐 추억이고 가족사이며 성소이기도 하다.
-시인ㆍ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