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斷時論】전북종무원 ‘불교무형문화유산’ 자료집 발간의 의미
올해 3월, 한국불교태고종 전북특별자치도 종무원에서 주관한 ‘불교무형문화유산 목록화 조사보고서’가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이 사업은 몇 년 전부터 기획되었던 것으로, 본격적인 조사는 작년 초부터 12월까지 꼬박 이루어졌다. 조사자와 집필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게 된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 전주를 비롯하여 군산, 익산, 정읍, 남원, 김제, 완주, 진안, 장수, 순창, 고창 등 14개 시군의 주요 사찰과 암자를 직접 방문하였고 사찰 관련 스님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각 사찰의 내력과 의례의 특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실사를 통해 전라북도 사찰의 현황과 불교의례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기회였으니, 이번 작업은 나로서도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
여느 사찰이 그러하듯이 전라북도 역시 시내와 도심지 및 명승지에 위치한 사찰도 있지만, 직접 발품을 팔아 찾지 않으면 쉬이 가보기 어려운 절도 꽤 있었다. 또 과거에는 이름난 사찰이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 명맥만 유지하거나,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사찰, 집안 대대로 전승되어 온 사찰, 황무지에 기도 터를 닦아 새롭게 도량을 건립한 사찰 등 사찰마다 건립 역사와 배경이 매우 다양했다.
그런데 조사를 하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각 사찰에서 보유하고 있는 조왕단과 조왕탱화, 후불탱화, 중단탱화, 하단탱화, 석불입상, 관음보살상, 불연, 번과 개, 일산 등의 유형유산과 장엄물, 그리고 사찰별 특징이 담긴 다양한 불교의례를 종단이나 종무원 차원에서 조사하고 정리하여 체계화한 경우를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문화재나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찰별 문화유산과 의례 조사를 위해서는 종단과 종무원뿐 아니라 지자체와의 협조가 있을 때 기동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전에 불교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북특별자치도 종무원에서 발간한 ‘불교무형문화유산 목록화 사업 조사보고서’는 전북의 불교의례의 현황을 점검하고, 사찰별로 보유하고 있는 유물과 유산 및 대표 의례를 악보화하였다. 이러한 작업은 점점 축소되고 위축되고 있는 불교의례를 기록하고 체계화한 것이므로, 한국의 불교무형문화유산의 보존ㆍ전승ㆍ발전을 위해서도 큰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조사사업은 전주를 기점으로 전승하고 있는 ‘전북영산작법보존회’의 역할이 컸다. 1998년 1월 9일에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북영산작법보존회는 전승자와 이수자들 대부분이 불교의식의 전문가로서, 전북 지역에서 크고 작은 불교의례를 전승하고 지도하고 있는 의례승들이다. 지역의 불교의례를 이끌어가고 있는 주역들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불교의례집은 조선시대에 발행된 1496년 진언권공, 1661년 오종법음집, 1713년 산보범음집, 1827년 작법귀감, 1931년에 발행된 석문의범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지속적으로 발간되어왔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발행된 목판본 의례집은 발간될 때마다 그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있거나 변화되어왔다.
예를 들어 육법공양은 1496년에는 향, 등, 화, 과, 다, 미의 6법을 공양하기 전에 각 법의 휼륭함을 드높이는 찬(讚)을 각각 올린 뒤에 공양이 이루어졌지만, 현대에는 대부분 찬은 생략하고 공양만 올린다. 또 삼귀의작법은 1496년 진언권공에는 대직찬ㆍ중직찬ㆍ소직찬이 없었지만, 1634년 영산대회작법절차에서는 불보찬ㆍ법보찬ㆍ승보찬이 더해졌고, 1713년 산보범음집에서는 찬(讚) 앞에 불찬게ㆍ법찬게ㆍ승찬게가 별도로 추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서는 게(偈)는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 찬으로만 이루어지는 추세이다. 이처럼 불교의례는 시대적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과거보다 더 빠르고 격하게 변화되고 있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올해 전북특별자치도와 전북종무원에서 발간한 ‘불교무형문화유산 목록화사업 조사보고서’는 전라북도 불교의례의 현황을 목록화ㆍ체계화하였기에 앞으로 변화되거나 축소ㆍ생략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에서도 불교의식을 굳건히 지탱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