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스님의 동화로 읽는 화엄경 이야기】무아의 지혜로 악업을 순화 시키는 푸른 연꽃이 만발
㉓ 우바라화 향기가 하늘을 날게 하다.
광대국의 우바라화 장자를 만나러 가면서 선재 동자는 깊이 생각했다.
‘나는 그간 선지식들의 가르침으로 내 몸과 목숨도 돌보지 않고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하기를 원하고 오로지 부처님 나라가 청정하게 되기를 발원했었다. 또한 보살도를 이루기 위해 모든 부처님 대중 법회 도량에 들어가기를 원하고, 모든 삼매 문에서 마음대로 한 신통력을 나타내기를 원하였다. 지난 시간 동안 22명의 선지식을 만나 뵙고 나니 이제 좀 자신감이 생기는 듯하네…. 이제 남은 31명의 선지식인을 뵙고 나서 보리를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나의 마지막 주어진 임무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보살행을 찾아 구도의 길을 떠나자!’
“아자, 아자, 아자!”
별안간 선재 동자가 보리의 손을 번쩍 들고 아자를 외쳤다.
“어맛! 깜짝이야! 갑자기 웬 아자! 래?”
보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히히…. 내가 너무 신이 나서 그만!”
선재 동자가 약간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이유도 모르는 채 보리도 오빠를 따라 웃는다. 순간, 선재는 보리가 정말 착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바로 문수 보살님이 마음으로 보라고 한 것이구나 싶자, 보리가 더욱더 귀엽고 예쁘게 보였다. 보리도 정신적으로 많이 자라서 이젠 제법 의젓해지고 질문도 많아졌다.
“오빠, 근데 우발라화가 뭐야?”
“음…. 그것은 꽃 이름으로 우바라화라고도 하는데 청연화라고도 해.”
“엥? 청연화는 또 뭐지?”
“청연화는 푸른 연꽃이지롱!”
“진짜 푸른 연꽃? 나는 본 적이 없는데.”
보리와 계속 조잘조잘 이야기 하면서 광대국에 다다를 즈음, 커다란 호수 같은 연못이 나왔다.
“우와아! 연꽃이다. 진짜 푸른 연꽃이 천지야!”
보리가 환호성을 지르며 팔짝 뛰었다.
선재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어? 연꽃들이 정말 푸른 색이네, 보통은 붉거나, 희거나, 분홍색인데….”
보리도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맞아! 내가 본 것들도 다 핑크색이거나 흰색이었는데….”
“청연화는 무아의 지혜로 악업을 순화시키지.”
그때, 은은한 향기를 뿜으며 나타난 우바라화 장자가 말했다. 선재는 그가 바로 육향 장자 즉, 우바라화 장자인 것을 알고 발 앞에 엎드려 예배를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돈 뒤 합장한 후 말했다.
“거룩하신 성자시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서 모든 부처님의 평등한 지혜를 구하고자 하오나 아직도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고, 어떻게 보살도를 닦아 능히 일체 지혜를 출생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장자가 말했다.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선남자여! 그대가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구나. 여기 청연화 연못 속의 청연화는 부처님 눈의 미묘함과 깨끗한 법문의 향기에 비유된다. 이 연은 속을 비우고 곧은 모습으로 꼿꼿이 서서 잎 한 줄기에 꽃 한 송이만 피우며 멀리까지 향기를 피운단다. 그리고 진흙에 있어도 오염 되지 않고 꽃이 필 때 열매도 함께 맺히지.”
“정말 꽃이 한 줄기에 하나만 피나요?”
보리가 처음 알았다며 물었다.
우바라화 장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단다. 연꽃 중에서도 청연화, 즉 우바라화의 향기는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무아의 지혜로 악업을 순화시키는 법을 알게 하지.”
선재 동자가 우러러보며 물었다.
“그러면 장자님께서는 청연화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하십니까?”
“나는 조향사로서 모든 향을 잘 분별하여 향을 조합하는 방법을 알고 이를 파는 일을 하지. 다시 말하면, 향을 태우며 바르는 향, 가루 향, 이와 같이 향의 모든 것을 조합하여 판단다.”
“어디에, 누구에게 팔아요?”
선재가 묻고 싶은 말을 보리가 물었다.
“모든 향을 잘 분별하여 아픈 사람에게는 질병을 치료하는 향,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악행을 끊게 하는 향, 슬퍼하는 사람들에게는 환희심을 일으키는 향,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는 번뇌를 없게 하는 향, 또 부처님을 생각하여 발심하게 하는 향, 법문을 이해하고 깨달아 얻게 하는 향을 파는데 이러한 향들의 근본 이치, 이와 같은 특징들을 내가 모두 통달하였단다. 그래서 육법 장자라고도 하지”
선재 동자는 우바라화 장자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하였다. 비록 평범한 장자이지만 하는 일은 정말 대단하구나. 역시 선지식이구나. 싶으니 저절로 두 손이 모여졌다.
이에 존경하는 마음을 알고 있는 듯, 장자는 한껏 소리를 높여 말했다
“선남자여! 인간 세계에도 향이 있는데, 만약 한 개만 태울지라도 커다란 향 구름을 일으켜 왕도를 덮는다…. 이틀 동안 향기로운 비를 내리면, 몸에 닿는 이들은 즉시 몸이 금색이 되고. 만약 의복이나 궁전이나 누각에 닿아도 또한 모두 금색이 된단다. 만약, 바람에 날려 궁전 가운데 들어가면 그 향기를 맡은 중생들은 칠 일 동안 밤낮으로 환희가 충만하고, 몸과 마음이 즐거워져 모든 병이 없어지게 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게 되는 거야. 내가 이러한 방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게 되었지.”
“우에! 거짓말…. 그런 건 만화에서나 나오는데…. 독가스, 화생방 경보….”
보리가 장자를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이마를 향해 돌렸다. 선재가 보리를 끌어안다시피 하며 입을 막았다.
“보리얏! 그만, 그만해.”
그때, 어디선가 미묘하고도 그윽한 향기가 선재 동자와 보리의 코를 간지럽혔다.
“흠흠! 오빠, 이 향기를 맡으니, 몸이 둥둥 뜨는 것 같아. 마치 솜사탕처럼 가벼워져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아. 오빠도 날아 봐!”
보리가 잠에 취한 듯 눈을 슬그머니 감고 선재 동자 품에서 그만 잠들어 버렸다.
선재 동자도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면서 몸이 나른해지더니 같이 눈을 감고 잠들었다.
우바라화 장자는 그들 남매를 그늘진 곳의 나무 침대로 옮겨 주면서 말했다.
“그동안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느라 아이들이 힘들었나 보네. 여기서 좋은 향기 맡으며 잠깐이나마 몸과 마음을 편히 쉬렴….”
장자는 향로에 연향을 넣어 그들 남매 주변으로 향기가 스며들게 하였다.
보리는 꿈속에서 푸른 연꽃밭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선재 오빠는 보리를 잡으러 쫓아다니고 보리는 연꽃과 연잎을 따서 우산처럼 쓰고 다니며 장난을 치고, 선재는 연꽃을 따지 못하게 막느라 이를 말리고 다녔다. 두 아이 때문에 놀란 개구리들이 이리 팔짝, 저리 팔짝, 뛰어다니자, 이번에는 개구리를 잡으러 보리는 연잎을 헤집고 다녔다. 하늘에는 고추잠자리가 날고 하하하, 하하하! 오랜만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상쾌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번에는 약간 차가운 박하 향이 그들의 눈을 뜨게 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몸은 가볍고 머리는 맑아졌다. 보리는 이제야 장자님께 버릇없이 말한 게 생각났다. 보리는 무릎을 꿇어 세 번 절을 하고 다시 한번 합장을 하고 반배를 올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거짓말이라고 한 거 용서해 주세요. 사람들이 향기를 맡으면 금빛으로 몸이 변한다고 해서…. 순간적으로 놀랐어요.”
덩달아 선재 동자도 무릎을 꿇었다.
“정말 선지식인을 몰라뵙고 제 동생이 한 짓 용서해 주세요. 제가 책임지고 잘 가르치겠습니다.”
장자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우바라화 장자이지만 육법 장자라고도 해. 육은 무엇을 판다는 거고, 법은 향을 조제하여 조화향 법문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거지. 향기들은 너무나 오묘해서 보리처럼 안 믿는 사람들도 많아. 하지만 우리 인간 세계 말고도 마라야 산의 전단향이나, 바닷속의 무능승 향, 설산의 아로나니 향, 그 외에 수야마 천의 정장향, 도솔천의 선타바향, 선변화천의 향까지 열 곳에 특별한 향들이 있지. 이들 향기는 감히 우리가 다 말할 수 없이 비범하고 특별해서 나도 그 경지까지는 이룰 수가 없어. 단지 향을 조향해서 모든 일체 중생들에게 불국토를 장엄하게 할 뿐이란다. 따라서 보리를 용서하고 말고는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그건 너희들 마음 작용에 있는 것으로 그런 의구심을 결코 나쁘다고 할 수가 없어.”
보리는 오빠까지 무릎을 꿇려 너무 미안한 데다가 장자님의 너그러운 마음씨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흐음, 저 어린 나이에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것도 기특한 일이야. 요즘 아이들은 고맙다거나, 죄송하다거나, 미안하다는 인사를 잘 안 하는 데 보리는 부모님께 잘 배웠구나. 학교 공부보다도 마음 쓰는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세상이 되어 버렸어. 부처님의 향기가 얼마나 그윽하고 달콤한지 몰라.”
선재와 보리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절을 하였다.
“예, 우바라화 장자님! 명심하겠습니다.”
장자가 손을 흔들며 그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너희들은 남쪽 누각성의 뱃사공 바시라 선사를 찾아가 내가 이루지 못했던 보살도와 보살행에 관해서 물어 보거라.”
선재 동자와 보리는 우바라화 장자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누각성을 향해 걸어갔다.
“근데. 오빠!”
보리가 선재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아까 광대국 나무 침대에서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오빠랑 연잎 위에서 놀고 있었거든? 개구리랑….”
“뭐? 연잎 위에서? 너 혹시 연꽃 따고 연밥 따고 돌아다녔니?”
“응”
선재가 가던 길을 멈추고 우뚝 섰다. 보리와 눈이 딱 마주치자, 둘은 손을 잡고 웃었다.
“우리 둘이 똑같은 꿈을 꾸었네. 하하하”
그들의 웃음소리는 밝고 상쾌한 연꽃 향기처럼 하늘에 번져 갔다.
-2022년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