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斷時論】휴대전화와 국어사전
지난 봄 학술대회를 마치고 식당에서 정성스럽게 만든 정갈한 음식을 먹을 때의 일이다. 어느 한 참석자가 밝은 눈으로 벽지에 인쇄된 <청산별곡>에서 오자(誤字)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우리들에게 오자를 찾아보라고 했다. 자세히 보니 <청산별곡>의 한 구절인 “청산에 살어리랏다”의 ‘靑山’이 ‘淸算’으로 인쇄된 것이었다. 참석자들은 ‘푸른 산’의 의미가 ‘서로 간에 채무·채권 관계를 셈하여 깨끗이 해결함’이라는 뜻을 지닌 ‘淸算’으로 바뀌어 인쇄된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고려시대에 불렸다고 전해지는 <청산별곡>의 주제인 청산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오자로 인해 퇴색되었다고나 할까. 우리나라의 옛 문학작품을 벽지에 옮길 때에는 좀 더 세심한 작업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국어를 잘못 사용한 경우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목도할 수 있다. ‘실용한자’ 과목을 가르칠 때로 기억된다. 당시 학생들에게 흥미를 돋우기 위해 우리가 쓰는 말 중 잘 모르고 쓰는 한자말과 한자인지 한글인지 헷갈리는 단어를 주로 예를 들어 가르쳤다. 그 중 대표적으로 ‘삼우제’와 ‘사십구재’를 꼽을 수 있다. ‘삼우제’를 ‘삼오제’로, ‘사십구재’를 ‘사십구제’로 알고 있는 학생들이 제법 많았다. ‘삼우제(三虞祭)’는 장례를 치른 후 세 번째 지내는 제사로, 초우(初虞), 재우(再虞) 다음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유교식으로 치러지는 제사의례라 할 수 있다. 반면 ‘사십구재(四十九齋)’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이다. ‘사십구재’의 ‘재’는 삼우제에서 말하는 제사의 의미인 ‘祭(제사 제)’가 아닌, 죽은 이의 명복을 빌고자 예불을 올린다는 의미를 지닌 ‘齋(재계할 재)’이다. 지금도 ‘사십구재’를 ‘사십구제’로 혼동하여 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사각지대’의 한자도 마찬가지이다. ‘사각지대’의 ‘사각’의 한자가 ‘四角’인지 ‘死角’인지를 헷갈린 것이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전자로 알고 있었다. 후자라는 것을 알면, 사각지대가 ‘어느 위치에 섬으로써 사물이 눈으로 보이지 아니하게 되는 각도 또는 어느 위치에서 거울이 사물을 비출 수 없는 각도’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아가 ‘관심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복지 사각지대’, ‘범죄 사각지대’라는 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학생들이 헷갈려하는 단어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24절기 중 하나인 ‘입하(立夏)’와 물건이 들어왔다는 ‘입하(入荷)’, 어떤 사람 또는 단체의 처사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논평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물의(物議)’, 일이 잘되지 아니하게 헤살을 부리는 요사스러운 장애물을 뜻하는 ‘마(魔)’, 마음에 점을 찍듯 조금 먹는 음식을 의미하는 ‘점심(點心)’ 등.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의 한자를 알면 뜻이 명쾌해지는 경우가 많다.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아는, 한자를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을 키우는 데 ‘국어사전’만큼 좋은 것이 없다. 지난해 작고하신 오탁번 시인은 평생 국어사전을 가까이 하며 우리의 아름다운 국어를 시에 오롯이 담아냈다. 지금은 시인처럼 굳이 국어사전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이 휴대전화 속에 담겨 있으니 말이다. 생소한 단어를 만났을 때 그 단어를 바로 휴대전화 검색창에서 정확히 확인하는 일, 이는 국어를 사랑하고 아끼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세명대학교 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