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스님의 동화로 읽는 화엄경 이야기】“지옥으로 데려 가 오랜 시간 걸리더라도 참회하게 만들 것”

㉒ 변행 외도, 소녀를 구하다

2024-06-24     민재 스님

 

부동 우바이와 선주성에 돌아와서도 선재 동자는 부처님의 원력과 가피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보리는 처음에는 가만히 있다가 선재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같이 울기 시작했다. 부동 우바이가 두 아이의 들썩이는 어깨를 안아주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이제 기쁨의 광명을 주겠다. 그리고 나의 향기로움을 너희에게 나눠줄 테니, 즐거운 마음으로 도살라성의 변행 외도를 찾아가거라. 가서 내가 찾지 못하는 보살도를 물어보아라.”
선재 동자는 부동 우바이의 향기롭고 따뜻한 포옹에 울음을 그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합장한 채 선주성을 떠났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보리가 선재에게 물었다.
“오빠, 변행 외도는 어떤 분이야? 왜 외도라고 해?”
“으응, 변행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행동을 바꾸는 것인데, 외도는 우리처럼 불교를 믿지 않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말해. 엉뚱하고 괴팍하고 이상한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외도라 하지.”
보리가 말했다.
“그럼, 무서운 사람들이야?”“무섭기도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믿는 불교의 자비로움이나 따스한 배려가 없어.”
“그럼, 변행 외도는 무서운 사람이야?”
선재가 대답했다.
“아니, 부동 우바이님이 찾아가라 했으니 선지식일 텐데, 그분들은 다 깨우치신 분들이라, 본받을 점이 많고 훌륭하신 분들이니 변행 외도도 중생 제도를 위해 헌신하는 분일 거야.”“불교를 믿지 않는 데도 좋은 사람이야?”
“그렇다니까, 아마도 삿되고 나쁜 악행을 저지르는 외도들을 잘 타일러서 발 아래 꿀리는 일을 하는 사람인가 봐.”
보리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얼른 가서 만나보자고 선재 동자의 손을 잡아끈다.
도살라성은 ‘수많은 기쁨을 만들어 낸다’ 뜻을 가진 성이었다. 그들이 성에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이 되었으나 산꼭대기를 올려다보니 나무들과 풀, 그리고 바위에 광명이 환하게 비추어 마치 해가 뜨는 것 같았다. 그 밝은 빛을 보고, 선재는 아주 기뻐하면서 ‘여기에 틀림없이 선지식인 변행 외도가 살고 있다’라는 확신이 생겼다. 선재와 보리는 성에서 나와 산으로 올라갔다. 밤중이었으나 길은 밝았고, 변행 외도는 산 위 평탄한 곳에서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잘생긴 얼굴에 위엄과 광채가 찬란하여 대범천왕 같았으며, 십 천의 범중이 모시고 있었다. 선재는 그 앞에 엎드려 삼배를 올렸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위없는 보리심을 발했으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도를 닦는지 알지 못합니다. 부디 보살도를 가르쳐 주소서.”
변행 외도가 인자한 얼굴로 선재에게 말했다.
“나는 이 도살라성 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 있는 중생들에게 그들과 똑같은 몸으로 변해서 그들을 제압하고 가르치고 있다. 그들이 악행을 저지를 때에는 지옥 중생의 몸으로 변해서 지옥을 다스리고, 신들을 제도 할 때는 신의 몸을 나타내어 그들과 고락을 같이하며 진리의 법문을 몸소 느끼게 하여 그들을 구제한다. 그러니 착하고 착한 선재 동자여! 부처님의 자유자재한 보살도를 나 또한 구할 것이니라.”
그때 보리가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외도들은 부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던데….”
변행 외도가 손뼉을 딱 치며 말했다.
“그렇지! 우리 외도들은 96종류의 외도들이 있는데 부처님을 믿지 않고 다들 자기가 옳다고 이상한 고집과 만행을 부리고 있단다. 특히 ‘부란나가섭’의 외도들은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고, ‘산사야 비라자라’ 외도들은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주장하면서 모든 것을 귀찮아하고 회의적이고 부정적으로 보는 종파란다.”
“엥! 그게 무슨 말씀인지…. 너무 어려워요.”

삽화=서연진 화백

 

변행 외도는 보리의 약간 엉뚱하고 귀여운 질문에 하하하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자, 오늘은 찾아오느라 힘들었으니까 성안에 들어가 쉬고, 내일 우리 다시 만나자.”
다음날. 보리와 선재는 다시 변행 외도를 만나러 도살라성을 나서는데 얼굴은 동그랗고 하얀데, 눈가는 시퍼렇게 멍이 들고 목덜미는 시뻘건 손자국으로 목 졸린 흔적이 있어 보이는 소녀가, 나무 계단에 앉아 정원의 꽃들과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리가 그 모습을 보고, 선재 동자 뒤로 숨었다.
“아이고, 깜짝이야! 나는 눈이 너무 시퍼래서 귀신인 줄 알았네.”
선재가 서둘러 보리의 입을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보리의 말에 소녀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말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 어젯밤에 아빠가 내 목을 조르고, 눈은 주먹으로 쳐서 이렇게 됐어. 정말 귀신같지?”
선재가 당황하여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 귀신이라기보다. 얼굴은 하얀데 눈이 시퍼래서 그런 거지…. 근데 엄마는 왜 말리지 않았을까?”
소녀가 말했다.
“엄마는 아빠 말만 들어. 어제도 내가 맞아서 울고 있는데 아빠가 운다고 밥 주지 말라고 하니까 엄마가 밥을 주지 않았어.”
“뭐라고? 때리니까 울었는데 엄마가 밥을 안 줘? 나쁜 엄마네.”
보리가 화가 나서 허공에다 주먹질하면서 말했다.
“우리 엄마는 맨날 이상한 말만 해, 눈에서 피가 질질 나니까 더럽다고 집을 나가라고 했어. 다시는 들어오지 말라고…. 흑흑”
선재 동자가 소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를 달랬다.
“울지 마, 변행님이 구해주실 거야. 근데 이름은 뭐니?”
“나는 바지히라고 해.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나 봐, 흑흑.”
그때 변행 외도가 천천히 걸어 들어와 바지히를 안아 푹신한 소파에 앉혔다.
“며칠 전에도 눈을 때려서 꿰매주었더니 때린 데를 또 때렸네! 툭하면 목을 조르고….
‘부란나 부도’는 정말 나쁜 놈이야. 선과 악을 구별 못해. 정말 ‘부란나 가섭’ 외도들은 이해가 안 돼! 그 종파는 없어져야 해. 그리고 산사야 수혜도 나쁜 엄마야! 인정머리가 하나도 없어, 자기 자식 밥을 굶기고 왜 내쫓는지 이해가 안 가….”
이에 선재 동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제 ‘부란나 가섭’ 외도는 선과 악을 부정하고 ‘산사야 비라지라’ 외도들은 궤변론자라고 했는데 어떻게 만났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다만 확실한 것은 바지히가 부모에게 늘 구박 받는다는 것이야. ‘부란나 부도’는 화가 나거나 성질이 났다가 하면 딸의 목을 조르고 아이를 집어 던지는데 엄마인 산사야 수혜는 말리지도 않고, 머리가 돌았나 봐.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같이 구박하니까.”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보리가 측은한 눈빛으로 애원하듯 물었다. 변행 외도가 답했다.
“이제 그 둘을 지옥으로 데려가서 사랑하는 자식을 구박하면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 보여주고….”
“지옥에서 어떤 벌을 받는데요?”
“부란나 부도는 불이 펄펄 끓는 화탕지옥으로, 산사야 수혜는 밥을 굶겼으니 아귀 지옥으로 보내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게 해야지. 그런 다음에 진실을 말해주고 다시는 그러지 않게 오랜 시간이 걸려서라도 참회하게 할 것이다.”
선재 동자가 존경스런 눈빛으로 변행 외도에게 물었다.
“진실을 어떻게 말해주실 건가요?”
“진실이란 사실 간단한 거지. 내 마음에 있는 탐진치, 즉 욕심으로 인한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진심을 다해 내 가족과 이웃을 섬길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진실인 게야.” 바지히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나는 아직도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고 있는데, 도망을 가고 싶어도 내가 도망가면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목 졸라 죽이기라도 할까봐 못가겠는데, 엄마는 그걸 모르나 봐요. 또 아빠도 자식이라 나한테 화풀이 하지, 다른 사람 때려서 감옥 가는 것 보다는 내가 맞는 게 나아요.”
그 소리에 보리는 ‘딸도 엄마를 닮아 이상한 소리를 하네’ 싶었으나 가슴에서 뭉클 슬픔이 올라왔다. 변행 외도가 차가운 수건으로 비지히 눈을 살살 닦아 주며 눈가의 피 딱지를 떼어 주었다.
“당분간 도살라 성에 있거라. 눈도 다친데 또 다치면 아물지 않아... 그리고 앞을 못 볼 수도 있으니까, 네 몸은 네가 지켜야지...”
바치히가 고개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변행 외도는 선재 동자에게 더 남쪽으로 내려가 광대국의 우발라화 장자를 만나라고 일러준다.
선재 동자는 비록 외도이기는 하나 진정한 보살도를 실행하는 선지식, 변행에게 한없는 존경심으로 오른쪽으로 세 바퀴를 돌고 합장하며 큰 절을 올렸다.  

-한국불교신문 2023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