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칼럼】‘죽음명상’의 공덕

깨진 시루는 다시 붙여 쓸 수 없어 깨지기 전에 조심스럽게 지고 가야 해 지금의 기후 위기가 바로 그런 상황 ‘죽음명상’을 하면 이를 잘 극복할 수 있어

2024-06-10     주간 승한

 

맹하(孟夏)다. 한여름도 아닌데, 벌써부터 연일 30도를 오르내린다. 기후 위기 탓이다. 불교계에서도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하기 위한 실천운동을 펼치고 있다. ‘불교기후행동’이 그것이다.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불교기후행동은 ‘녹색불자 실천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일회용품 삼가기, 소비 줄이기, 빈 그릇 운동 하기, 채식 위주 식생활 하기, 물건 나눠 쓰기 등의 구체적 목표를 설정하기도 했다. 이제 지구 기후 위기는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전 세계, 전 우주의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도 지구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깊이, 인식하고 사는 이는 드문 게 현실이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사자성어가 하나 있다. '파증불고(破甑不顧)'다.

옛날 중국 후한말 산동 지역 거록 지방에 맹민(孟敏)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생계를 위해 맹민은 태원이라는 곳에서 타향살이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지게에 시루[증(甑)]를 지고 가던 그가 그만 시루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시루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맹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마침 태원 지방의 유지이자 대학자(사상가)인 곽태(郭泰)가 그 모습을 지켜봤다. 곽태는 맹민을 불러세우고 말했다. 맹민의 모습이 하도 기이했기 때문이었다.

“이보게, 자네 시루가 다 깨졌네.”
맹민이 대답했다.
“네, 다 알고 있습니다.”
곽태가 다시 물었다.
“그럼 자네 전 재산이 다 날아갔는데 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계속 가는가? 아쉽지도 않은가?”
맹민이 다시 대답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루는 이미 깨졌는데, 뒤돌아보면 뭣합니까?'’
이 말에 놀란 곽태는 맹민에게 학문에 힘쓸 것을 권유했다. 이에 10여 년 동안 학문 닦기에 힘쓴 맹민은 천하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삼공(三公)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 고사를 계기로 ‘파증불고’, 즉 ‘깨진 시루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의 사자성어가 생겨나게 됐다. ‘지나간 일은 아무리 아쉬워해도 소용이 없으므로 깨끗이 단념하라’는 의미다.
기후 위기 얘기를 하면서 뜬금없이 ‘파증불고’라는 고사성어를 가져온 것은 작금의 세태가 그만큼도 못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 깨진 시루는 다시는 고쳐 쓸 수 없다. 기후 위기도 그렇다. 지구도 그렇고 우주도 그렇고, 더욱이는 사람과 사람의 삶도 그렇다. 한 번 깨진 시루는 다시 되 붙여 쓸 수 없다는 걸 모르고 인간들은 ‘기후 위기’라는 깨진 시루를 계속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시대에 맹민이 있다면 이 같은 기후 위기 상태를 보고 뭐라고 할까? 했을까?

물론 깨진 시루를 다시 쓸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깨지기 전에, 조심스럽게 잘 지고 가야 한다. 맹민의 말처럼 깨진 시루는 다시 쓸 수 없지 않은가. 지금의 기후 위기가 그렇다. 지금의 기후 위기는 깨진 시루가 되기 직전의 상태다. 느닷없는 폭우와 폭염으로 수백,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이상 기온으로 해수면이 높아져 지구가 언제 가라앉을 줄 모른다. 이렇게 가다가는 언젠가는 지구도 우주도 인간도 깨진 시루가 될 수밖에 없다.

원인은 모든 것이 다 인간의 탐욕(貪慾) 때문이다. 만족할 줄 모르고 편하고 쾌락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위해 자연과 문명을 정복하려는 인간들의 탐욕이 지금의 기후 위기를 불러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럼, 탐욕을 없애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확언하건대, ‘죽음명상’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바로 죽는다는 생각으로 죽음명상을 실감 나게 하다 보면, 자신의 탐심(탐욕)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 곧 죽을 목숨인데, 무엇을 더 탐하며, 무엇을 더 욕망하며, 어디서 더 큰 쾌락을 찾는단 말인가. 지구를, 우주를, 자연을 더 이상 깨진 시루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죽음명상’을 통해 더 이상 지구를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한다. 지구를 아프게 하지 않는 공덕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가 가장 먼저 닦아야 할 일이다. 그 공덕으로 지구를 더 이상 깨진 시루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