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칼럼】진정성 있는 삶을 살자
늘 무언가를 추구하며 사는 게 우리들의 삶 바른 삶을 위해선 삶의 진정성이 중요 불가에서 진정성 가장 잘 보여준 이는 혜가와 혜가단비
신록이 짙다. 산과 들도 초록으로 무성하고, 동식물도 겨울을 위해 새 삶을 부지런히 꾸리고 있다. 삶은 늘 그렇게 무언가를 추구하며 산다. 그것이 나의 삶에 유익한 것이 됐든 무익한 것이 됐든, 선이 됐든 악이 됐든, 무언가를 항상 추구하며 살도록 삶은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도둑놈도 도둑놈으로서의 무언가를 반드시 추구하기 위해 도둑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게 되는데, 그 추구를 위해선 반드시 동기가 필요하다. 내가 왜 그것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그 동기가 없으면 그 삶은 추동력을 잃고 만다. 그 힘, 그 동기, 그 추동력이 없이는 인간도, 동식물도 삶의 그 어떠한 성취도 이뤄낼 수 없다. 마약쟁이도 그 동기, 그 추동력, 그 목적 때문에 수없이 감옥을 드나들면서도 마약을 계속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선이 됐든 악이 됐든, 우리가 추구하는 동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동기에 대한 진정성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선(善)을 추구하는 삶의 동기에 대한 진정성에 초점을 맞춰보자.
지금까지 우리 인간 중에서, 좀 더 좁혀 불가(佛家)에서 동기의 진정성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은 누굴까. 단연코 혜가(慧可)다. ‘혜가단비(慧可斷臂)’다.
혜가는 중국 선종의 2대조로서 달마의 제자다. 중국 낙양 향신사로 출가한 혜가는 여덟 해 동안 좌선에 몰두했다. 어느 날 혜가가 좌선하고 있는데 홀연히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더니, “머잖아 과위(果位; 깨달음을 얻는 지위)를 얻을 그대가 어찌하여 여기에 막혀 있는가? 남쪽으로 가라”고 일러 주었다.
스승인 보정 선사의 허락을 받은 혜가는 소림굴의 달마 대사를 찾아갔다. 그때 달마 대사는 아홉 해째 면벽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 달마 대사에게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혜가는 아침 저녁으로 법을 물었다. 그러면서 더욱 정진하며 속으로 말했다.
“옛사람들은 도를 구하고자 뼈를 깨뜨려 골수를 빼내고, 피를 뽑아 주린 이를 구제하고, 머리카락을 진흙땅에 펴고, 벼랑에 떨어져서 굶주린 호랑이의 먹이가 되기도 하였다. 옛사람들은 무릇 도를 구함에 있어 그토록 정성을 다했는데,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하는가?”
그해 동짓달 초 아흐렛날이었다. 밤새 큰 눈이 내렸다. 그날도 역시 혜가는 달마 대사가 면벽하고 있는 굴 밖에 서서 밤을 지샜다. 새벽이 되자 눈이 무릎 넘게 쌓였다. 하지만 달마 대사는 눈 속에 파묻혀 있는 혜가를 바라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마디 툭 던졌다.
“네가 눈 속에서 그토록 오래 서 있으니, 무엇을 구하고자 함이냐?”
“바라건대 스님께서 감로의 법문을 여시어 어리석은 중생을 제도해 주소서.”
“부처님의 위 없는 도리는 오랜 겁 동안을 부지런히 정진하며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능히 참아야 얻을 수 있다. 그러거늘 너는 아주 작은 공덕과 하잘 것 없는 지혜와 경솔하고 교만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서 참다운 법을 얻고자 하는가? 모두 헛수고일 뿐이니라."
달마 대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혜가는 칼을 뽑아 자신의 왼쪽 팔을 싹뚝 잘랐다. 그리곤 그 팔뚝을 달마 대사에게 바쳤다. 구도(求道)에 대한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혜가는 달마 대사로부터 법을 이어받아 중국 선종의 2대 조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도(道)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진정성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혜가 스님처럼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팔뚝을 잘라낼 만큼 진정성 있고, 용기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진정성은 결코 불도(佛道)뿐만 아니다. 우리 일상의 삶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이제부터라도 좀 더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