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斷時論】'새로운 길'
일요일 낮 햇살이 화사했다. 독서모임 회원들과 날을 잡아 안산(鞍山, 서울 서대문구) 자락길을 걸었다. 홍제천을 건너 꽃구경 하면서 가파른 고갯마루를 오르니 초입이었다. '맨발 황토길'은 눈으로만 스치고, 휠체어 타고도 돌수 있다는 목재데크 길을 걸었다. 두어 시간 걷다가 '봉원사 길'로 내려가자며 앞장을 섰다. 야트막하고 둘레가 긴, 폭이 넓은 산이었다. 오르는 길과 내려가는 길도 여러군데이고, 오르막이든 자락이든 걷는 길이 여러 갈래로 뻗어 있었다. 운동 삼아 가파르고 좁은 흙길로만 다닐 수도 있었다.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길이었다. 운동을 할지, 구경이나 할지 고르는 맛까지 있었다. 이제 막 걸어보자, 하는 차에 너나 할 것 없이 발길이 살짝 머문 곳은 시비(詩碑) 앞이었다. '책을 소리 내어 돌려 읽는 낭독독서 모임'에서 만난 사이라 별난 짓이라 눈총받을 일은 아니었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새로운 길, 윤동주'라고 쓰여 있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 /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 오늘도…… 내일도…… / 내를 건너서 숲으로 /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풋풋했다. 시인이 스물 두 살, 연희전문학교에 갓 입학한 1938년 봄에 쓴 시로 알려져 있다. 동주가 입학한 날이 4월 9일. '새로운 길'은 그 한달 뒤인 5월 10일에 썼다고 한다. 경성 유학의 꿈에 부풀어 두근두근 쓴 시이다. 그래서인지 풋풋하다못해 풋내마저 날 정도다. ('이등병의 편지'의 싱어송라이터 김현성은 이 풋내의 맛을 잘 살려 노래로 만들었다.)
'새로운 길' 앞에 풋풋하게 선 동주도 걷기를 즐겼나보다. "산책길은 여러 갈래였다. 아직 해가 한참 남아 있다면 기숙사 뒤편 솔숲을 지나 연희궁을 거쳐 백련사로 향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면 초가지붕이 옹기종기 엎드린 마을이 나오고, 마을을 지나면 또다시 숲이 이어지는 길이 나왔다. (중략) 동주는 솔숲 샛길을 걸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 개울이 있었다. 작은 개울 속에 징검돌 몇 개가 놓여 있고, 물봉숭아와 돌미나리 줄기가 제법 파릇했다." (소설 '시인, 동주', 안소영, 창비, 2015)
당시 안산은 숲이 울창하기만 해 걷기 좋은 길은 나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다닐 수 있는 길은 천년고찰인 백련사로 향하는 길이었을 테다. 우리는 '새로운 길' 앞에서부터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가는 길을 걸었다. 나무와 꽃이 풍기는 아찔한 내음새, 싱싱한 잎사귀에 깃든 푸른 빛깔, 시끄러운 수다, 느릿한 발걸음이 어우러졌다. 그동안 좀 아팠다는 일행과 짝이 되어 서로 걱정을 해 주다가 정신이 팔려 얼레벌레 내려오는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봉원사 경내에서, '한국불교 태고종의 총본산인 이곳에서 1908년 <국어 연구학회>의 첫 모임이 있었다'며 아는 척을 할 참이었다. 내친김에 '새절'이라 불렸던 사연까지. 실은 늦깎이로 올해 갓 소설가가 되어 하필 이번 달에 문예지에 작품이 처음 실린 '나의 새로운 길'에 대해서 슬그머니 끼워 말하고픈 속내였다. 그런데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