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스님의 동화로 읽는 화엄경 이야기】향이 춤추며 올라가는 향연 뚫어져라 쳐다봐
⑱ 몸과 마음의 병을 낫게 하는 보안 장자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둥근 국 보문성에 이르렀다.
보리와 선재 동자는 모든 병을 낫게 해준다는 보안 장자는 어떤 사람일까 무척 궁금했다.
“오빠, 모든 병을 도대체 어떻게 해서 다 낫게 해준다는 거야? 나는 상상이 안 되네.”
“글쎄... 선지식이니까 다양한 방편이 있는 게 아닐까? ”
“다양한 방편? 그게 뭔데?”
“음... 설명하기 힘드니까 자세한 것은 이따가 만나서 물어보자.”
“그래.”
보문성의 담은 높고, 도로는 넓으며 백천 마을이 주위에 있었다.
선재 동자와 보리가 백천 마을에 들어서자, 흐느끼며 울고 있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은 울음소리는 가까이 갈수록 보리와 선재를 긴장하게 했다.
“저 울음소리는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되는 소리 같아.”
“맞아, 아주 조심조심 숨을 죽여 가며 울고 있는걸...”
그들이 울음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대문 대신 드리워진 발1)을 걷어 올리자, 울고 있던 아이가 깜짝 놀라 보리를 쳐다보았다. 보리가 당황해서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난 보리라고 해. 길을 가다가 우는 소리가 들려서 와 봤어.”
선재도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나는 선재 오빠야, 근데 너는 왜 울고 있니?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데...”
아이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돌려 저쪽을 가리킨다.
거기에는 죽은 듯이 누워있는 여자가 있었다. 머리맡에 놓아 둔 하얗고 조그만 향로에서 은은한 캐모마일 향기가 나오고 있었고, 여자의 옷은 남루하지만 깨끗하고 정결했다. 대신 머리에는 하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저분은 누구시니?”
“우리... 엄마예요.”
아이는 또다시 흐느꼈다.
“머리를 다치셨구나.”
“네.”
보리는 어쩌다가 그랬는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왠지 무서워져 입을 가리고 있었다. 선재는 아이의 곁으로 가서 달래주기 시작했다.
“괜찮아, 부처님께서 돌봐 주실 거야. 엄마는 곧 일어나실 수 있어.”
“아니에요, 아니예요... 엄마는 사흘 동안 일어나지 않았어요. 아마도 조금 있으면 죽을 거 같아요. 너무 슬퍼 크게 울고 싶어도 엄마가 놀랄까 봐 소리도 못 내고, 보안 장자님이 살려주신다고 걱정 말라고 하셨는데 엄마는 눈도 뜨지 않아요. 나는 엄마 죽을까 봐 오줌 누러도 못가요.”
아이는 흐느끼며 쓰러지듯 선재 동자에게 안겼다. 선재가 아이를 일으켜 세운 뒤,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내보냈다.
“엄마, 안 돌아가시니까 오줌 누고 와. 우리가 지키고 있을게.”
누렇게 뜬 얼굴로 아이가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나가는 사이에 보안 장자가 발을 밀치고 들어왔다. 선재는 먼저 찾아뵙지 못한 민망함에 엎드려 절을 하고 합장한 뒤 그에게 말했다.
“거룩하신 이여, 저에게 보살행을 가르쳐 주옵소서.”
“좋다. 그대는 이미 무상 보리심을 내었도다. 나는 모든 중생들의 병을 낫게 하는 의사인 동시에 약사란다. 지금 여기 분다리카 엄마도 아직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
“엣! 눈도 안 뜨고, 말도 안 하고, 움직이지도 않는데요?”
“하하하! 너는 또 누구냐?”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 동생인데 분별력이 없어 정말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보리야, 얼른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예, 예. 정말 죄송하기는 한데... 아이가 엄마 때문에 오줌도 못 누러 간다고 해서 급한 마음에 말대답을 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응,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분타리카2)는 여기에 와서 엄마 걱정에,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 그 사이에 엄마가 돌아가실까 봐 그냥 옆에 붙어서 지키고 있지.”
“다른 가족은 없나요.”
선재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분타리카 언니가 있었는데, 아빠가 식탁의자로 엄마 머리를 내리치는 모습을 보고 도망가 버리고, 아이 혼자 날 찾아와서 엄마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지.”
“아빠는 어디 갔어요?”
“술이 깨자 도망갔지.”
그때 분타리카가 오줌을 누고 들어왔다. 보리는 아이를 데리고 가 얼굴을 씻긴 후, 머리도 깨끗하게 빗겨 양 갈래로 묶어 주었다.
“엄마가 깨어나시면 예쁘게 하고 있어야 바로 알아보시지. 또 환하게 웃어드려야 되니까 웃는 연습도 해봐. 그만 울고...”
“맞아. 울면 자꾸 울일 만 생긴대.”
선재 동자도 보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아이를 웃게 했다.
보안 장자가 환3)으로 만든 약을 아이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분타리카! 엄마는 이제 깨어나실 테니, 깨어나시면 이 약을 드려.”
“엣! 정말요. 엄마가 깨워나셔요? 정말이지요? 그러면 언니도, 아빠도 돌아올까요?”
보안 장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의 아빠는 술김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 엄마의 머리를 식탁의자로 내리쳤다. 그놈에게 나쁜 술버릇을 고치고, 자비로운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많은 참회와 수행을 통해 자비관4)을 익히게 할 것이다. 또 너의 언니는 엄마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는데도, 무섭다는 핑계로 도망가는 어리석음을 저질렀으니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고, 효도하는 법을 배우게 하고, 이기심을 버리는 법 등, 갖가지 모양의 법을 공부하게 하여 언니 역시도 참회와 수행을 통해 엄마와 너의 아픔과 슬픔을 맛보게 할 것이다.”
그 말에 선재와 보리, 분타리카는 다 같이 합장한 채 보안 장자에게 절을 올렸다. 보안 장자는 그제야 만면5)에 웃음을 띄고 손을 들어 화답하며 말했다.
“자, 이제 옆집으로 가서 마나스6)의 상태를 지켜보자.”
분타리카는 엄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뽀뽀를 한 뒤, 보안 장자를 따라나섰다.
“너, 이제 괜찮아?”
“응, 곧 깨어나신다니까 마나스 아줌마 집에 가 볼래. 그 아줌마도 항상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울어 주셨어. 자기도 동생 따라가고 싶다고 하시면서...”
“그럼 내가 대신 있어 줄게.”
선재가 선뜻 주저앉으며 말했다. 보리는 오빠 없이 가는 게 섭섭했지만, 아이 앞에서 내색할 수가 없어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보안 장자를 따라갔다. 마나스는 창가에 앉아 은은한 향기가 나는 향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지냈니?”
마나스는 보안 장자의 인기척에도 꼼짝하지 않고 향이 춤추며 올라가고 있는 향연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보안 장자가 창문을 탁, 탁, 쳤다. 그제야 마나스가 돌아보며 허리를 굽혔다.
“아이고, 보안 장자님. 오셨어요?”
“응, 오늘은 기분이 좀 어때? 동생 생각은?”
“장자님 덕분에 조금씩 잊혀 가고 있어요. 이제 꽃들도 많이 지고요. 물론 꽃잎이 떨어져 길가가 온통 분홍색으로 뒤덮여있지만요.”
보안 장자는 그 말에 기분이 좋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 향은 치유의 은사7)가 확실히 있나 보구먼.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중생들의 몸은 약으로 낫게 하고 마음은 향으로 치유한 뒤 그들에게 맞는 갖가지 방법으로 부처님 법을 가르치고 있단다. 처음 마나스가 올 때 꽃이 피어 있는 것을 아주 싫어했지. 동생이 꽃들이 만개8)한 사월에 죽었거든...”
마나스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내 동생은 죽었는데 꽃들은 왜 저렇게 활짝 피어있는지... 할 수만 있다면 나무들을 다 베어 버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봄도 싫고, 꽃도 싫었어요.”
“그건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생각이야. 동생이 꽃피는 사월에 갔으니 극락 가는 길은 온통 꽃 대궐이지 않겠어? 지금 맡고 있는 향기로운 향냄새처럼...”
마나스가 살며시 웃더니 두 손을 합장하며 허리를 굽혔다.
“장자님이 피워주신 향냄새를 맡으며, 마음이 많이 치유되고 있어요. 생각을 바꾸니까 마음도 달라졌어요. 죽은 동생의 처지에선 꽃 잔치가 될 수도 있겠네요. 저는 꽃잎이 떨어지는 걸 보면, 서로 예쁘다고 싸우다가 떨어지는 줄 알고 잘 됐다! 쌤통이다! 했는데, 꽃잎들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즐거움을 주고 다음 생을 기약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꽃들도 참 불쌍해요. 제가 잘못 했지요”
“흐음, 이제야 깨달았구먼.”
그때, 저 멀리서 선재 동자가 뛰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보안 장자가 뛰기 시작했다. 보리도 분타리카도 덩달아 함께 뛰었다. 숨찬 목소리로 선재가 말했다.
“엄마가! 분타리카 엄마가 깨어났어요!”
“알고 있어! 빨리 가 보자.”
보안 장자가 재빠르게 뛰어가고 그 뒤를 보리와 아이가 뛰는데, 이번에는 분타리카가 큰소리로 울면서 뛰어간다.
“엄마! 엄마 ! 약, 약 먹어.”
-한국불교신문 2022년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
【각주】
1) 갈대나 볏짚으로 촘촘하게 엮어 커튼 대신 문 앞에 치는 것.
2) 산스크리트어로 흰 연꽃.
3) 가루약을 둥글게 빚어 만든 알약.
4)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게 하는 법.
5) 온 얼굴.
6) 산스크리트어로 두루 생각하는 마음. 의(意).
7) 몸을 낫게 하는 일.
8) 활짝 핀 꽃.